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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Dec 18. 2018

6. 버티지 맙시다

몇 해 전, 방송인 이 경규와 김 구라가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하면서 공황장애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두 사람을 필두로 이제까지 숨어있던, 혹은 앓고 있는 증상이 무엇인지 모르던 사람들도 자신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연예인이 고백하니 부정적인 댓글이 엄청나게 많이 달린다. 숨이 어떻게 안 쉬어지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제가 겪어봤습니다. 정말 숨이 안 쉬어집니다.   


유교주의 사상이 팽배한 한국에서 질병을 앓고 있다고 쉬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신이 아프다는 얘기는 매우 터부시 되어 왔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정신과 상담만 받은 이력이 있어도 보험가입이 안 되었다. 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정신과 상담을 받을 때에도 보험적용을 거부하고 비싼 비용을 지불한다. 그러던 분위기가 몇 명의 고백으로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이들을 자유롭게 해 주었다. 그건 아마도 고도화되어가는 사회에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원인에 대해 모두가 공감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의 힘이 아주 크다.


예전에는 신경정신과가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양지바른 곳이 아닌 뒷골목이던지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위치했다. 하지만, 지금은 작은 우리 동네에만 하더라도 큰 상가빌딩에 두 곳이나 들어와 있다. 또, ‘신경정신과’ 대신에 매우 다양한 상호명으로 바뀌었다. 책을 내거나 방송을 타서 유명해진 신경정신과 의사들도 있는데, 그런 곳은 예약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이다. 그러니 방송 한 번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살리고 있는 것인가.


나는 미디어에 ‘공황장애’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그 증상을 처음 겪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증상에 따라 경도가 있는데, 운 좋게도 나는 초기 증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초기 증상도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처음 증상을 깨닫게 된 것은 5-6년 전에 있었던 프로젝트에 통역/번역가로 일하게 됐을 때였다.  


웬만하면 웃으면서 일하는 편인 나는 갈등 상황을 못 이기는 편이다. 회의는 항상 두 사람이 싸우거나 논쟁을 하는데 나는 두 사람 사이에 껴서 양쪽의 스트레스를 다 받았다. 객관화시켜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프로젝트를 오래 하다 보면 객관적일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양쪽 모두 이해가 되니까.


그 당시에는 엄마가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해 있는 상태여서 스트레스가 이중이었던 것 같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숨이 안 쉬어져 불편할 때가 자주 있었는데,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다. 그렇게 한 달 넘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회의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과 호흡과 현기증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과 호흡은 가장 전형적인 공황장애의 특징인데 이 증상이 시작되면 들숨 기능을 잃어버린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고 이대로 죽을 것만 같다. 동시에 어지러워 바닥이 팽팽 돈다. 눈을 감아도 현기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나는 나를 고용한 외국인 보스에게 면담 신청을 하고야 말았다. 영어로 말하면서 펑펑 울었다. 얼마나 웃기겠는가. 나는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아프다고, 숨을 쉴 수 없다고 아이처럼 울었다. 손수건까지 내어주며 끝까지 내 말을 들은 보스는 우선 며칠 쉬라고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도 여전히 힘들면 그만둬도 좋다고 덧붙였다. 일터에서 운다는 건 내 약점을 최대치로 드러낸 것과 같다. 그런 나를 이용하려 하지 않고 최대한의 기회를 준 것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일주일을 쉬고 나니 괜찮은 것 같아서 계속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겁은 났다. 내 표정을 눈치챈 보스는 다시 출근한 나를 반드시 해야 하는 통역을 빼고는 무려 일주일간 나를 통역에 배정하지 않았다. 보스는 한국 파트너들 몰래 회의 바로 직전 나에게 메신저를 보내 나가서 30분 후에 들어오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이번 회의가 내 차례인데 너를 빼려고 그러는 거란다. 이렇게 훌륭한 보스가 있다니! 나는 그렇게 며칠을 더 쉬면서 – 물론 번역은 계속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은혜로운 보스를 만나는 건 흔치 않다. 나는 지금도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친한 친구의 소개로 간 곳은 낙성대역 근처에 있는 신경정신과였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신세계를 보았다. 엄숙하고 진지하고 클래식 음악이라도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그곳에는 엄마와 같이 온 아이들이 꽤 많았다. 장사가 안 되는 신경정신과들이 이제 아동심리라는 이름으로 학습능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심리요법과 놀이를 개발한 것이다. 무조건 나쁘다고만 했던 ADHD (주의력 결핍장애)가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호전시킬 수 있는 블루오션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양성화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애초에 신경정신과는 아무 잘못도 없지 않은가!


의사와 대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친한 사람 이외의 타인에게 내 마음을 쉽게 털어놓는 것은 모두가 그렇듯이 쉽지 않았다. 나는 내 증상을 객관적인 단어들을 써가면서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고 약을 달라고 요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사는 내 마음을 열려고 무던히 애썼던 거 같은데, 나는 열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야기했다가는 실성한 사람처럼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또 울까 봐 입을 꾹 다물고 듣는 척만 했다. ‘제발 그만 하시고 약 좀 주세요!’ 하는 심정으로.


처방전 약은 신경정신과에서 바로 받을 수 있었다. 보험처리를 안 하겠다고 하니 가격은 매우 비싸다. 알약은 실수로 떨어뜨리면 찾기 힘들 정도로 작고 얇았다. 의사는 심할 때 한 알씩 먹으라며 중독성은 없으니 시간만 조절해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이렇게 조그만데 먹으면 다 해결된다니 얼마나 센 약일까. 회사에서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정신을 붙잡고 있어서 그런가, 약을 먹어서 그런가 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증상이 자주 오지는 않았다. 보통은 새벽에 찾아왔다. 무의식인 상태에서 공황장애 증상이 발현되면 숨을 쉴 수 없어 눈을 뜨게 된다. 약이 없었을 때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아 막힌 공간을 만들어 조금씩 호흡을 했다. 이렇게 30분 이상해야 정상호흡으로 돌아온다. 처음 이 약을 먹었을 때를 기억하고 있다.


심정적으로는 먹은 지 1분도 안 되어 괜찮아지는 것 같다.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까지 나는 약을 신줏단지 모시듯 백 깊숙이 작은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외출을 할 때면 항상 약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나갈 수 있었고, 아닌 경우에는 약속을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집에 돌아와 약을 가져가야 마음이 놓였다.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 그만두게 되자 그 증상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2년 전 엄마가 떠나고, 얼마 안가 아프다 돌아가신 아빠까지 떠나자 공황장애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스트레스 원인을 제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지금도 자다가 가끔 공황장애가 오기는 한다. 일상 스트레스는 누구나 있다. 그러니 이 정도는 약을 먹지 않고도 참을 만하다. 물론, 호흡이 목까지 차올라 숨이 막힐때가 있지만 그동안의 내력 키우기 덕분에 약까지는 먹지 않아도 된다. 대신, 호흡을 조절하려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가만히 앉아있으면 증상은 물러간다.  


내 중심이 흔들리면 어쩔 수 없이 누구나 마음의 병이 생기기 마련이다. 말할 상대를 찾지 못한다면, 말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망설이지 말고 주변에 있는 신경정신과를 찾아보기 바란다. 좋은 비밀은 괜찮지만 반대의 경우는 빨리 터는 게 좋다. 살아내 보니까 그러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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