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Fly Dec 17. 2018

5. 가끔 내릴 역에 내리지 않아도 된다.

졸음과 헛웃음의 상관관계

버스, 기차, 전철에서 졸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는 모습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첫 번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쉴 새 없이 끄덕거리는 유형이다. 절대 옆으로 기우는 법이 없다. 옆에 앉은 이에게 절대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장점은 침을 흘려도 잘 티가 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누군지도 모르는 옆사람의 어깨에 자꾸 기대는 유형이다. 물론, 전조 증상이 있다. 고개가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쪽으로만 기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뚝이처럼 양쪽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있다. 참을성이 있는 옆 사람을 만났다면 그나마 기대게 해 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잔뜩 인상을 쓰며 어깨를 튕겨 조는 사람의 고개를 반대로 넘겨 버린다. 여기서 잠이 깨면 다행이지만, 망할 놈의 잠은 또 금방 찾아와 이제껏 하던 행동을 반복한다.  


30대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제1, 2 유형에만 머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개 들고 입 벌리고 자는 사람들을 보면 못 볼 건 본 양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절대 저러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세 번째 유형이다. 뭐가 그렇게 떳떳한 지 고개가 천장을 향해 있다. 눈은 곧 뜨겠다는 의지가 강해 반쯤만 감는다. 고개가 위로 올라가니 목 근육도 따라 올라가다 한계를 느껴 못 올라간 만큼 입이 벌어진다. 때로는 코도 곤다.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는가? 내가 자는 모습이 보인다는 거! 영혼이 분리되어 보인다는 게 아니라, 자고 있는 상태에서 ‘아, 내가 고개를 들고 있네. 그러면 안 되는데. 근데... 아우, 너무 졸려서 움직이기 싫다. 입을 다물어야 하는 데 안 다물어지네. 어머머! 나 코 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이 확 떠진다. 내가 내려야 할 역이다. 귀신같은 귀가 본능.


그러나, 여기서 또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버전을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에게서 볼 수 있다. 이건 '내력'이 빌드업되어야 가능하다.


가끔 어르신들이 졸다가 내려야 할 역에서 못 내리는 모습을 본다. 특히나 기차에서 그러면 더 난감하다. 그 상황에서 어르신들은 난리를 치기보다는 만날 사람에게 전화를 해 자신이 못 내렸다는 사실을 알리며 깔깔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이게 웃을 일인가? 동대구에서 내려야 할 사람이 부산에서 내렸는데?


하지만, 그런 일이 40대의 어느 날 나에게도 일어나고 말았다. 어느 저녁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기차를 탔다. 이틀간 숨도 못 쉬고 한 통역으로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얌전한 정장 차림에 힐까지 신고 자리에 앉자마자 잠에 빠져드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앞서 말했던 천장을 향해 입을 벌리고 코를 고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는데도 깨지 못했다. 대전 역을 지나면서 잠깐 눈을 떴는데, 내려야 할 다음 오송역까지는 꽤 갔던 게 잠결에 기억났다. 안내방송도 나오는데 도착하면 일어날 수 있을 거야 하는 쓰레기 같은 생각을 하며 눈만 감고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또다시 무의식에 빠져들고 말았다.  


마침 눈을 떴을 때에는 기차는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 방송도 나오지 않았기에 아직 대전이구나 싶으면서도 오늘따라 좀 오래 가나 싶었다. 내가 자는 동안 정차를 오래 했었나 하는 이상한 합리화를 하면서 정신을 차리고 있던 그때, 내 옆에 서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왜 그러냐는 듯 쳐다보자, 그가 티켓을 내밀며 조심스럽게 말한다. “이 자리 맞으세요?” 나도 당당히 티켓을 재빨리 내밀었다. 그랬더니 그분 왈. “오송역 지났는데요.” 내 입에서는 다행히 “아…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빨리 나왔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상황을 눈치챘지만, 예의 바르게도 아무 말도, 웃음도 내비치지 않으셨다. 이 자리를 빌려 매우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조용히 일어나 캐리어를 들고 기차와 기차를 연결하는 부분으로 나오니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최고 단계라고 생각하는 현상이 나에게 발생하려고 하고 있었다. 삐질삐질 웃음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깔깔대던 어르신이 생각나 지금은 안 된다 되뇌이며 입을 꽉 다물었다. 오송역 다음은 동대구역이다. 그 말은 앞으로 한 시간을 더 가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편안한 바지와 운동화로 갈아 신고 나왔다.   


그 와중에 티켓을 또 끊어야 한다는 생각에 지나가던 직원을 붙잡고 상황을 설명했다. 직원은 몇 천 원만 내면 다시 오송역으로 돌아오는 티켓을 끊어줬다. 그 말은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러니,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 부끄럽다. 동대구 역에서 한 40분 정도를 기다린 것 같다. 주전부리를 챙겨 먹고 화장실도 가고 여유롭게 오송역 행 기차에 올랐다. 분명 서울역에서 저녁 6시 기차를 탔건만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였다.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고 집에 돌아와 우리 집 고양이 노다메를 붙잡고 얼마나 깔깔거렸는지 모른다. 이제 그 어르신들을 이해할 것 같다. 그 역에 안 내리면 어때? 인생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삶을 살아내면서 점점 '절대'라고 했던 일들이 '그럴 수도 있다'라고 바뀌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나에게는 절대, 네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 입을 쥐어뜯게 되는 날이 분명 온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를 희망해본다. 결국엔 내 실수로 그리 된 일이니 남 탓을 하려야 할 수가 없다. 그러니, 그냥 웃을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4. 색연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