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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Dec 21. 2018

8. 전 서울 중독자의 소회  

- 지방 신도시 거주 4년차 이야기

처음 지방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한 건 2014년쯤이었다. 그때부터 6개월간 그렇다면 무엇을 할까를 계획하고 조사하고 한 끝에 이듬해 여름, 나는 전격적으로 중부 지역에 있는 한 자치시로 이사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살아본 적도 없는 곳으로 삶터를 옮기려고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통역/번역가로 일했던 10여 년간 일한 결과 좋아했던 것이 밥벌이 수단으로 바뀌었을 때의 괴로움과, 경쟁이 내 성격에 맞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다가 서울이라는 곳 자체가 경쟁이 일상화되어있는 곳이기에 회사원이 아닌 프리랜서를 지향하는 나로서는 잠시라도 정지해 있으면 뒤쳐지는 것만 같아 정신적으로 압박을 많이 받았다. 이곳으로 내려오고 나서야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또한, 통역이라는 일은 서울을 중심으로 가장 일이 많은데, 이 일을 줄인다면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자연히 사는 곳의 선택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두 번째로는 나에게 좀 더 집중하고 싶었다. 나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최종의 목표는 어렸을 때 좋아했던 글을 다시 쓰고 싶었다. 중학생 때까지만 스스로 독서를 했지 그 이후에는 전혀 독서를 하지 않았으며, 통역대학원 준비를 시작한 이후로는 특히 국내 시사, 외신 기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랐기 때문에 나의 인문학 머리는 말 그대로 텅텅 비어있었다. 유명하다는 베스트셀러들도 읽지 않았기 때문에 통역/번역가 동기들 이외의 사람들과 만나면 종종 그들이 하는 책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두 가지 이유로 나는 지방행을 결심했다. 물론 고양이 한 마리와 사는 싱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에 더 빨리 실행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예  남쪽으로 내려가려고 했으니 너무 내려가면 많이 답답할 거라는 설득에 무조건 지방이면 된다는 생각에 중부 지역으로 타협했다. 일을 줄이니 정기적인 수입을 위해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처음 한 달은 복잡하고 매연에 익숙한 서울이 그리워 주말마다 서촌을 헤메 다녔다. 내려왔을 때가 7월이었는데 신도시였기에 나뭇가지들이 모두 뼈가 앙상해서 그늘이 없었다.  운동삼아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내 피부는 동남아시아 여행을 갔다 온 것처럼 타버렸다. 그즈음 서울에는 폭우가 왔고 겨울이 오자 폭설이 와 기사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다. 지방에 있으니 이제 그런 기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지금은 서울역에 내리면 끝없이 높은 빌딩들을 보고 절로 고개가 들려진다. 왜 옛날 영화에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는지 이해가 간다. 우리 동네에는 버스가 2-30분에 한 대씩 오니-지금도 그리 나아진 것 같지 않다- 걷는 게 편하고 또 1시간 안쪽으로는 인근 동네까지 모두 걸어 다닐 수 있다. 그러다 서울에서 버스나 택시를 타면 속이 메슥거린다. 어떤 사람들은 이 현상을 '촌년병'이라고 부른다.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정규 뉴스가 끝나고 하는 지역별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가게나 식당의 서비스 마인드도 서울과는 매우 달라 기분 나쁠 때가 많았고,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점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데 미안한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랄까. 그렇지만 나도 가끔 그렇게 될까 봐 두렵기는 하다.


그러다 서서히 이 곳이 서울보다 점점 편해지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점은 마음의 평화가 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서비스업이니 까다로운 부모님과 상대해야 될 때도 있고 시험 기간에는 날카로워진다. 그렇지만 내력을 어느 정도 쌓아서 그런지 짜증이 나도 잠깐 미칠 듯이 괴롭지 마인드 컨트롤하면 물리칠 수 있다- 결코 쉽게 되지는 않는다-. 심심하지 않냐고? 프리랜서이지만 나름 계획적으로 사는 인간이기에 괜찮다. 또 독립 이후 쭉 동거하고 있는 12살짜리 고양이가 있어서 외로움을 덜 느끼는 걸 수도 있다. 가끔 하는 통역도 좀 더 즐기면서 하게 되었고, 번역할 때도 깊이가  좀 더 깊어진 듯하다. 정 말할 사람이 필요하다 싶으면 먼 동네에 사는 친구와 만나거나 전화로 수다를 떨면 괜찮아진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빼고는 나는 지금 매우 행복한 상태이다.



마음의 평화가 오니 독서가 가능해졌다. 서울에서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런 걸 수도 있고 일에 치여 소설책을 읽을 수도,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한마디로 감성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 와서 막상 읽으려고 하니 뭐부터 읽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얘기했던 책들을 먼저 읽었고, 이후에는 한 친구가 소개해준 블로거님의 서평을 참고해서 읽었다. 그렇게 되자 장르도 조금 다양해졌다. 또한, 매달 나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독서 앱을 이용했더니 한 달 평균 두 권으로 시작해서 1년이 지난 지금은 평균적으로 3-4권을 읽을 수 있게 되어 매우 뿌듯하다. 뭐든지 시각화하면 더 동기부여가 된다. 이렇게 1년 넘게 책을 읽게 되면서 나의 마지막 목표인 글쓰기가 가능해졌다.


독서 앱 "산책"


통역/번역은 타인의 말과 글을 전달하는 직업이다. 나의 주관이 들어가는 순간 타인의 말과 글이 왜곡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그 결과 나의 감성을 제대로 된 글로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쓰기만 하면 번역체가 나와버려 나 스스로가 답답할 지경이었으니 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쓰기는 포기하고, 책만 읽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 보는 단어나 표현들을 적어두기도 하고, 인문학이나 과학 서적 등을 볼 때는 모르는 개념들을 찾아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정말 아주 조금씩 나만의 글이 나오고 있다. 물론, 남이 보면 웃을 수도 있겠지만 예전과 비교해본다면 나의 생각을 쓰는 게 죽을 맛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서울 살던 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우울한 날엔 전철이나 버스 타고 조금만 나가면 내가 살던 서촌 한 바퀴를 들고 와도 되고, 백화점에 가서 구경이라도 할 수 있고, 원하는 곳에 아무 데나 내려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마음을 풀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아무 때나 친구와 약속을 잡아 신나게 수다를 떨다가 집에 와도 된다. 그렇지만, 여기 살아도 일이 없는 날 시간을 내서 한 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다 - 집에서 집까지 치면 거의 두 시간이지만-. 그래도 조용한 이 곳에 사는 장점이 월등하게 많으니 내려온 걸 후회한 적은 아직까지는 없다. 앞으로 다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까지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았기 때문에 내려올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건지도 모른다. 만약 시골에서 태어났다면 이글이글 타오르는 20대에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로 기어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니 서울에 가고 싶어 하는 이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하지만, 서울에서 숨 막혀한다면, 반드시 살아도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서울을 떠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한 번쯤은 생각해볼 용기를 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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