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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Dec 25. 2018

10. Because You're Worth It.

요즘 저의 관심사는 저의 나이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알차게 보내는 데 있습니다. 기존에 하던 일을 줄이고 새로운 일을 찾아 다양한 걸 해보고 싶은 게 꿈입니다. 로또에 당첨만 되면 제가 살던 서촌으로 돌아가 2-3층짜리 건물을 매입해 아래층은 서점과 카페를, 위층은 개인만 받는 게스트 하우스를 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물론 로또가 된다면 말이죠.


전에 '나 혼자 산다'에서 전현무가 요즈음은 나이 계산을 현재 나이의 0.6을 곱해야 옛날 사람들의 나이와 같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숫자로 판단되는 30대와 40대는 확실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 있던 머리숱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정수리 부분이 예전처럼 붕 하고 솟아있지 않다는 겁니다. 왜 홈쇼핑에서 40-50대를 위해 머리를 부풀리는 스킬을 시전 하는 고데기를 파는지 알겠고, 아빠에게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면서도 우리 엄마가 중요한 행사에 갈 때 오랜 시간 거울 앞에서 돌돌말이 빗으로 머리를 말아 드라이어기에 뜨거운 바람을 쏘이고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 스프레이를 푸 아악 거리며 뿌리는 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깔세'를 놓고 파는 가게에서 왜 대용량 스프레이를 주력상품으로 내놓는지도 이제는 압니다. 또 다른 점은 신경 쓰이지 않던 흰머리가 늘어나면서 뿌리 염색을 시작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원래 새치가 있는 분은 해당이 안됩니다-. 이런 것들은 어떻게든 감출 수 있긴 한데 가장 숨길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체력입니다. 그리고, 그 체력의 중심이 바로 '허리'입니다. 제 허리는 30대 초반까지 군소리도 하지 않고 아낌없이 쓰라고 허락해줬답니다. 구겨져 앉아있어도, 허리를 꺾고 누워도, 엄청나게 무거운 백팩을 메고 다녀도 잘 참더니, 어느 날 갑자기 경고도 없이 파업을 선언해버린 겁니다.  


허리가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모릅니다. 살면서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옴팡지게 당하게 난 후에야 몸의 중심인 허리가 나를 걷게 해 주고, 서 있게 해주고, 심지어 편하게 숨쉴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죠. 닮을 게 없어서 허리가 안 좋은 엄마의 성향을 빼박은 저는 오른쪽 허리가 안 좋습니다. 손에 들면 하도 잘 잃어버려 무조건 백팩에 넣었는데 그 무거운 것을 20년 이상 짊어지고 다닌 겁니다. 허리 통증은 백팩을 졸업한 지 5년 후에 찾아왔습니다. 그때가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주 잠시 알베르 카뮈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처럼 나도 벌레로 변했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죠. 일어나려 하는 데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전혀. 조금만 힘을 줘도 고통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이 아니라 퍽퍽 나옵니다. 처음에는 고통의 진앙지가 어디인지 몰라 혼란스러웠습니다. 여기저기를 손으로 더듬어 보다가 허리 근처에서 악 소리가 나오면서 아이처럼 엉엉하고 울었습니다.


겨우겨우 일어나 정형외과에 도착할 때까지 평소라면 넉넉잡아 30분 만에 주파할 거리를 두 시간은 족히 넘게 걸렸습니다. 얼마나 아프냐고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횡단보도가 있는 보도블록 앞에 서 있으면 눈치챘을지 모르겠는데 가운데가 낮게 평평하고 양쪽이 높거나, 그 반대의 경우입니다. 높은 턱에 서 있다가 길을 건너려고 한쪽 다리를 내리고 다른 다리를 내딛는 순간 허리가 대엥 하고 울리는 느낌입니다. 다음 횡단보도에서는 평평한 곳을 택했더니 그나마 낫습디다. 적게는 5센티미터에서 10센티미터도 안 되는 높이의 차이는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또, 길을 걸을 때 보이는 과속 방지턱도 올라갈 용기가 안 나 돌아서 갑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왜 굳이 얼마 높지도 않은 데 낮은 쪽으로 가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건 진리인 듯합니다.


이렇게 죽나 하는 두려움에 오늘 처음 본 의사 앞에서 아주 서럽게 울었습니다. 제가 영어를 보통 사람보다 좀 더 많이 알기에 질문에 여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것처럼, 저 같은 환자를 많이 겪은 의사는 미리 찍은 엑스레이를 보더니 증상을 설명해줬습니다. 허리 디스크의 전 단계인 추간판이 탈출했다는 겁니다. 탈출해봤자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일 테니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의사는 엎드려 누우라고 했습니다. 겨우겨우 엎드리니 지금 놓을 주사는 지금 아픈 것보다 더 아플 예정인데 - 여기서 숨을 들이켰습니다- 고통은 확실히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요? 그의 말대로 약물이 들어오는 10초 정도 내내 고통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모든 진료과를 막론하고 저는 병원만 가면 쫄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0분이 지났습니다.


어머머. 언제 아팠는지 기억도 안 날만큼 고통이 사라져 버린 겁니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척추에 바로 약물을 넣었을 겁니다. 그렇게 아팠는데 초기라니, 평생 허리가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산 엄마는 어떻다는 것인지...... 그렇게 몇 번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았더니 정상인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쫄보입니다. 그때부터 허리가 조금이라도 전쟁 선포를 할 기미만 보이면, 정형외과 물리치료실을 찾거나 한의원에서 침을 맞습니다. 그 후부터 전 제 허리에게 잘해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걷거나 앉을 때 의식적으로 허리를 곧게 펴려고 합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신경주사를 다시 맞지는 않았습니다.


요새도 허리가 가끔 아픕니다. 다행인 건 전조증상을 느낄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지각하지 못하는 습관들이 있는데, 바닥에 주저앉기, 의자에 앉을 때 다리 꼬고 장시간 있기, 오래 걸을 때면 며칠 후에는 바로 약한 허리 부위의 근육이 아픕니다. 그러면 제깍 허리를 곧게 폅니다. 허리와 제가 쌍방으로 대화를 하는 거죠. 허리가 아프면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앉아서 번역도, 통역도 못 하며, 제일 좋아하는 글도 못 쓰고, 나가서 돌아다닐 수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는 허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허리에게 잘해줍시다. 갑자기 옛날에 나왔던 샴푸 광고가 생각납니다. 외국 여자 모델이 풍부한 머릿결을 휘날리며 마지막으로 정면으로 보고 말합니다. Because you're worth it (당신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이 광고 이후, 그 제품의 매출이 수직 상승한 바 있습니다. 저 여자처럼 윤기 있고 풍성한 머리를 가질 수 있을뿐더러 자존감도 높아지는 데 안 살 이유가 있을까요? 저도 그때 샀습니다.


그 문구를 제 허리에게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잘해 줄게요, 허리님.  Because you're worth it.


그런 의미에서 가쿠다 마쓰요의 "무심하게 산다"는 책을 추천합니다. 나이 드는 것이 서글퍼질락 말락 할 때 얼른 읽으면 아주 좋습니다. 단 40대 이상인 분들에게만 권합니다. 30대 이하는 읽어도 뭔지 모르는 내용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아하하하. 하아. 제 한숨 소리를 이해하는 당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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