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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Dec 28. 2018

11. 엄마의 유전자

생각해보면 나의 세대는 여러모로 시험하는 세대였던  같다. 언론은 우리 앞에 'X세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X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많이 달랐는데, 좋게는 개인주의자,  반대로는 이기주의자였다. 아마도 타인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실제적인 성공을  신경 쓰기 시작한  세대일 수도 있다.   또한 전형적인 X세대였다.  물을 사서 마신  세대였는데  팔릴  알았던 생수가 엄청나게 팔리자 어른들은 세상이 말세라고 혀를 찼다.


교복도 바로 윗선 배까지 입었다가 획일화 이슈가 커지면서 우리는  교복을 입지 않아서 매일 교문 앞에서 날라리처럼 입지 않았는지 검사받았다. 그러다 2 정도의 후배들부터 너무 자유를 줬다면서 다시 교복을 입혔기에,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 , 우리 학교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배한테 반항한 것도 우리 세대가 처음이었을 거다. 엎드려뻗쳐하라니까 못하겠다고 논리적으로 대드는 후배를 보며 기막혀하던 선배들의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니 하고 싶은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였다. 그 많고 많은 하고 싶은 건 중에 꽤 오랜 시간 동안 TV 사수가 가장 1순위였다. 초등학생 때에는 TV 프로그램 방영 순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꼭 아침 신문을 봐야 했다. 나는 학교 가기 전 배달된 신문을 찾아 오늘의 프로그램을 정독한 후 보고 싶은 것을 눈으로 스캔을 떠 저장했으며, 학교에서 돌아오면 무조건 그 날 보기로 한 건 다 봤다. 말하고 나니 엄청 늙은 느낌이다.


그중에 지금도 생각하면 웃긴 에피소드가 있다.  시절의 나는 ‘미녀 첩보원이라는 미드에 꽂혀 있었다. 이혼녀에 아이까지 있는 아만다 (Amanda) FBI 요원인  (Lee) 썸을 타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시리즈였는데 당시에 한국 드라마에는 없는 소재였기에 매우 흥미로웠으며, 무엇보다 한국에 사는 여성과 비교했을  매우 당당해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뛰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엉뚱한 매력을 지닌 아만다와 리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나 어쩌다 부딪힐뻔해서  사람이 얼굴을 가까이하고 마주 보는 장면에서는 심장이 콩닥콩닥거렸다.


어쨌든 나는  드라마에 꽂혀 일주일에  번하는 일요일 저녁에는 무슨 일이든 봐야 했다. 같은 시간대에  밥을 차리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밥도  먹고 TV 봤다. 반면에 엄마는 다른 채널에서 하는 주말드라마를 즐겨봤다. 보통 나와 엄마가 주말 시청권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보는 미드가 끝나면, 엄마가 보는 드라마를  시간이 되니 바통터치를 하면 되었다.  


미녀첩보원 (The Scarecrow and Mrs. King)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TV를 꽤 좋아했던 거 같다. 직장생활을 했으니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원하는 TV 드라마를 보는 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루틴이 깨지는 날이 있다. 바로 스포츠 중계를 해줄 때이다. 아주 옛날 어느 일요일 저녁. 나는 이미 토요일 신문에서 ‘미녀 첩보원’이 끝나고 엄마가 보는 주말 드라마 시간에 권투 중계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말은, 아빠와 오빠가 반드시 봐야 하는 ‘머스트 아이템’이란 뜻이다. 보통 권투 방송은 메인 게임 전에 아마추어 선수들의 대결이 있었는데 아빠와 오빠는 그것부터 보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 날은 나도 ‘미녀 첩보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주말 드라마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한 따까리(?)’하는 엄마의 성격에 난투전이 발생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켜보기로 했다. 단, 이 모든 과정에서 나의 발언권은 허용되지 않았다.


엄마는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부엌에 있었고 나는 음식을 날랐다. 아빠와 오빠는 차려지는 밥상 앞에서 TV에 집중하고 있었다. 식사를 먹기 시작할 때 즈음이 드라마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엄마도 그걸 계산에 넣고 준비했을 것이고. 엄마는 아빠와 오빠가 권투를 보고 있는 것을 내내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 반찬을 들고 들어오면서 드라마를 틀라고 했다.


찰나의 눈치작전도 벌이지 않고 오빠는 너무 쉽게 게임을 끝내버렸다. 권투 때문에 일찍 했다고. 엄마는 무척이나 아쉬워하면서 주인공이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오빠는 거짓말하는 표정을 들킬까  , 웃음을 참기 위한   해서 TV 시선을   내뱉었다. “죽었어.”


 말에 엄마는 눈이 커다래질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죽었어? 우야꼬, 우야꼬.” 나와 아빠는 웃음이 터져 정신을  차렸지만, 엄마는 심각했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얘기를 다시  적이 있었는데, 엄마도 기억이 나는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보고야 마는 오빠,  옆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는 아빠, 엄마, 그리고 .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를 닮아서 TV 좋아하나 보다. 그래놓고 나보고 "티비보다 망할년"이라고 하더니. 저도  망했으면서. !




포스터 출처: https://www.google.com/search?q=scarecrow+and+mrs+king&safe=active&tbm=isch&source=iu&ictx=1&fir=_44Sf0VDYOnJWM%253A%252CMTuevGdLyTQA-M%252C_&usg=AI4_-kRsJkdXgETLmFf1CvBJlMczWT_t0A&sa=X&ved=2ahUKEwjMw_-UoKbfAhWEw7wKHZQvA3AQ_h0wFnoECAYQDg#imgrc=XPuuK1OQ-uta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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