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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Dec 30. 2018

12. 떨리는 시작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온 2015년 이후로 나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일주일에 삼일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머지 이틀은 가끔 들어오는 번역 작업을 하거나 글쓰기를 한다. 중간중간 비는 시간에는 독서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마음이 안 좋은 날에는 서울 나들이를 하고 익숙한 매연을 맡고 돌아온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번역도, 그리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것도 모두 다 혼자 오래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다. 물론, 친구 말대로 가르치는 건 아이들과 상호작용이 필요하지만 성인들끼리의 상호작용과는 매우 다르다. 하지만, 같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는 할 수 있겠다. 


한 가지를 오래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들처럼, 나도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기를 좋아한다. 그중에 하나가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한 포털 사이트에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로서는 새로운 시도일 뿐만 아니라 매우 커다란 모험이었다. 웹소설을 쓰기로 한 배경은 따로 있다. 


물론 그 전에도 막연히 작가를 꿈꾸면서 시나리오 학원도 다녀보고 드라마 아카데미도 다녀봤다.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몇 편 제출해봤고, 단편 드라마 대본도 써봤지만 그렇게 오래 나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나마 백업 작업을 하지 않아 컴퓨터가 망가지면서 애써 쓴 작품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없다. 그때에는 시각적으로 표출되는 미디어가 나에게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상상력이 글로 표현이 다 되지 않았기에 - 얼마나 서툴렀을 것인가-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연출이나 촬영감독의 몫까지 나의 글에 다 집어넣으려고 했으니 남이 봤으면 얼마나 알아보기 힘들었을까. 물론, 초보자는 대부분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고비를 넘기면서 점점 대본이 담백해진다고 하던데, 나는 그 고비를 넘지 못한 것이다. 


그 실패로 깨달은 점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나리오 학원이나 드라마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건 한 가지였다. 글을 쓰기 전 준비와 기획 과정을 거쳐야 하며, 무작정 쓰기부터 하면 결국 다시 시작해야 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남은 건 한 가지였다. 무언가를 강제적이고 정기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 나는 일단 어떤 일을 주면 제시간에 마치려고 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자발적으로 꾸준히 하는 건 결고 쉬운 일이 아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선택한 것이 바로 누구나 써서 올릴 수 있는 웹소설이었다.  


대단한 웹소설 작가들도 있지만, 나는 크게 목표를 잡지 않았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획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게 웹소설이 된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걸 시작하려면 우선 패턴과 규칙을 찾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밤을 새워가면 포털사이트의 로맨스 소설만 100편을 읽었다.  어떤 작품은 눈이 빨개지다 못해 따가워지면서도 읽기도 하고, 도저히 나랑 안 맞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규칙을 찾아내었고 그것을 적용하여 나의 작품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익명 아니, 가명으로 올리는 나의 작품을 얼굴도 모르는 다수가 읽어주고 댓글을 남기고, 조회수가 늘어나는 일련의 과정은 아주 짜릿한 경험이었다. 또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는 묘한 기분에 항상 흥분상태였던 것 같다. 


일주일에 2회를 쓰기 위해서는 일주일 내내 조금씩이라도 써야 한다. 죽어도 안 써지는 날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쓰기도 하는데 의외로 반응이 괜찮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갇혀있는 사람인지를 깨닫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형편없는 작품이지만 달리는 댓글에 행복해하기도 했고, 몇 개 안 되는 악플에 우울한 적도 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진리를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은 일주일 내내 쓰는대신 아이디어만 생각해 메모하면서 줄거리를 짜 이틀에 몰아서 쓰니 나름대로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 편은 직접 포털 사이트에 발간하고, 두 편은 출판사를 통해 전자책으로 발간했다. 현재 네 번째 작품을 쓰고 있다. 쓰면 쓸수록 힘들다. 같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글인데 뻔했으면 뻔했지 얼마나 다를 수 있겠는가. 그래도 위로가 되는 부분은 이전에 썼던 것들보다는 조금은 낫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물론, 담백하면서도 감정이 풍부하게 쓰인 웹소설을 보면 감탄을 금할 수가 없는 동시에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럴 때마다 내가 애초에 잡았던 목표, 계속 쓰기를 하고 있으니 만족하고 있다. 이렇게 하니 쓰고 싶었던 단편소설의 주제가 조금씩 구체화되어가고 있다. 웹소설을 통해 연습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허황된 꿈만 꾸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다. 본격적으로 쓰기를 하고, 독서를 하면 할수록 캐릭터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고, 현재의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닫는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의 삶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지금은 나의 직업, 주변 인물들, 특이하지 않은 직업군을 중심으로 캐릭터를 만들게 되는데,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그러니 새로운 직업이나 인물들을 접해보고 싶은데, 혼자 일하는 나로서는 쉽지 않다. 간접적인 경험은 매우 피상적이어서 캐릭터를 만드는 데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그래서 내년에는 새로운 걸 하기로 결정했다. 장래에 내가 할 수도 있고, 급하면 아르바이트로도 할 수 있으며 - 누가 써주겠냐마는-, 작품에 캐릭터로 넣을 수도 있는 그런 것. 이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이 바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였다. 전문적인 바리스타가 되려는 꿈은 없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수강료가 높아 좀처럼 시도하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지난주 동네를 지나가다 우연히 카페 밖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8주간의 바리스타 과정. 들어가서 물으니 알고 있던 금액의 절반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3명이 이미 등록을 한 상태라고 하니 폐강될 가능성은 없다. 이후 다시 카페를 방문해 등록한 후, 수강료를 송금했다. 이 행위 자체만으로 또 흥분된다. 역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가슴 떨리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긴장되는 일이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한다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일이 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열심히 해보련다. 시험에 떨어지면 의연한 척하면서도 속상해하겠지. 하지만, 그게 뭐? 무언가를 시도해봤다는 게 중요한 거지. 아... 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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