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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Dec 04. 2018

13. 묘연

대학원을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자 가장 먼저 한 건 집에서의 독립이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보증금을 모으자마자 경기도 산본에서 서울 합정동의 아주 작은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혼자 살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게 고양이를 갖는 거였다. 우리 집에는 어릴 때부터 고양이가 ‘있었다'. 옛날에는 고양이나 개를 실내에서 키우지 않고 밖에서 키웠다. 우리 집에 살던 고양이들은 항상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유가 고양이들은 연애를 하면 가출한다는 것을 나중에 커서 알았다. 그런데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 남자 친구네가 더 좋았나? 무튼, 그래서 ‘키운다’는 단어보다는 ‘있었다’가 훨씬 더 적절한 기억이다.  




말로만 듣던 묘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운전면허 학원을 두 달 다녔는데 그곳에는 광활한 공터가 있었다. 공터에는 그 동네 고양이란 고양이는 전부 모여있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로 많았다. 었다. 임신한 고양이들도 꽤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매점에 들렀는데, 한쪽 구석에 있는 종이박스 안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 고양이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을 실현할 기회가 온 것을 직감했다. 주인아주머니께 고등어(태비) 한 마리를 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아주머니는 젖을 떼야하니 두 달 후에 오라고 했다. 나는 반드시 오겠다며 눈도장을 확실히 찍어뒀다.


약속대로 두 달 후, 나는 운전면허 학원 버스를 타고 도착해 매점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고등어는 못 준다고 했다. 소유권을 주장할 만한 어떤 문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그 아주머니 마음대로인 게 사실이니 할 말이 없었다. 그 대신, 치즈(황갈색) 한 마리를 받았다. 그분의 남편은 고등어를 주라고 한 마디를 했지만, 아주머니는 아들이 고등어를 좋아한다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아들이 먼저지, 한 번 밖에 보지 않은 나와의 약속이 중하겠나. 우리 집에 있던 고양이는 다 고등어였기에 치즈는 낯설었지만, 내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학원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치즈 냥이는 내 품에서 세상이 궁금해 미칠 지경인 표정을 그 조막만 한 역삼각형 얼굴에 가득 담고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는 풍경들에 초점을 맞추려고 애썼다. 모험을 좋아하는 나의 모습과 어딘 지 닮은 거 같아서 정말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틀 잠깐 얌전한 척하더니 새끼 고양이는 똥꼬 발랄해졌고 화장실도 바로 가렸으며 먹기도 엄청나게 먹었다. 또 걸어 다닐 줄 모르는 것처럼 항상 뛰어다녀 당시 유행하던 일본 드라마 여주인공의 이름인 ‘노다메’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노다메와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2개월령의 고양이를 흔히 아깽이라고 부른다. 이 시절의 아깽이는 인간 아기와 비슷하다. 엄마에게 사회성을 길러야 할 때 데리고 왔기에 노다메는 나를 엄마로 생각했을 것이다 -후에 깨달았다. 나를 이미 집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노다메는 혼자 못 잤다. 안아줘야 잠이 들었다. 더 웃긴 건 인간 아기처럼 안고 선채로 돌아다녀야 잔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힘들어 침대에 누울라 치면 “에에엥~”거리며 깼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했지만 입에서 튀어나오는 욕은 어쩔 수 없다. 아깽이를 키워본 적이 없던 나는 거의 두 달간 눈이 퀭해져 외출도 거의 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만나고 있으면 눈에 밟혔다. 또, 자꾸 휴대폰에 눈이 갔다. 노다메가 전화할까 봐. 그때는 정말 그럴 것만 같았다.  


한 뼘 겨우 넘던 시절들


노다메가 4개월째 접어든 어느 날 드디어 신호가 왔다. 새벽까지 번역 작업을 하다 잠이 든 나의 귓가에 노다메가 '나도 여자랍니다~'하고 목청껏 노래를 불러댔다. 노다메를 데려오기 전부터 이미 이 아이가 새끼들을 낳아도 키울 자신이 없었고 그렇다고 입양 보내 행복할 보장도 없는 선택을 하기도 싫었기에 중성화 수술을 시키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내가 결혼 안 한다고 노다메의 혼사길까지 막는 게 뻔뻔한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당시 나는 그날 오후까지 번역을 제출해야 했는데, 이 아이의 울음은 하루라도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곧바로 동물병원에 데려가 중성화 수술을 부탁했고, 아이가 수술을 받는 동안 집에서 번역을 마감했다.

광녀였던 시절



2019년 1월 현재, 노다메는 12년 4개월이다. 새끼를 낳아본 적이 없는 혼자 사는 고양이는 자신이 계속 새끼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 나이로 70세가 넘었는데도 노다메는 자신을 아기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지금도 여전히 한밤중에 뛰어다니고 자꾸 놀아달라는 통에 내 성질을 건드리며 나 잡아봐라 하며 도망다니다가 불리해지면 아깽이 시절 울음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린다.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왜냐면, 여러모로 엉망진창인 나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입은 또 얼마나 짧으신지. 습식 간식은 뚜껑을 따자마자 주면 잘 먹는다. 좋아하는구나 싶어 다음 날도 주면 냄새만 맡고 가 버린다. 욕이 절로 나온다. 아마 우리 엄마가 내가 학교 가기 전에 요란하게 패션쇼를 한 후 그나마 나은 옷을 입고 나가면 내 뒤통수에 했던 말이 들리는 것만 같다. “아주 뱀처럼 허물만 벗고 나가!" 노다메가 간식을 준비해왔을 때 고개를 90도로 저으며 가버릴 때의 내 심정이 딱 그렇다!  


노다메는  제 기분이 좋을 때만 와서 몸을 비빈다. 거기에 속아서 안으려고 하면 얼른 도망간다. 응가하자마자 치우라고 코앞에 와서 소리를 지르며, 밥 달라는 데 안 주고 있으면 밥그릇을 쳐서 엎어버리기도 하고, 겨울에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놓으면 춥다고 소리를 지른다. 새벽에 놀자고 짜증 날 만큼 울어대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목청이 아주 좋은 아이이다. 이것도 나와 닮은 듯하다.


고양이와 싸우는 게 도대체 말이 안 될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나 나나 감정이 있는 생물이니 진짜 그런 일이 생긴다. 한 번은 노다메가 며칠 연속해서 새벽에 놀아달라고 운 적이 있다. 잠을 못자서 예민해져있던 나는 욱한 나머지 볼펜을 던져버리고 말았다. 물론, 맞으라고 던진 건 아니었지만 노다메는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나를 보더니 제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과 그 다음날, 노다메는 나와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고 제 집에서도 안 나왔는데, 그 모습에 나도 충격을 받고 말았다. 말 못 하는 짐승도 감정이 있는 건데 자꾸 잊어버리니 나는 똥멍청이다. 노다메가 기분을 풀 때까지, 나는 아이의 삼각형 집 앞에 무릎 꿇고 미안하다고, 기분 풀라고, 잠을 못 자서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사과를 하고 하고 또 했다. 그제야 만족했는지 노다메는 집에서 나와 엉덩이를 쳐들고 기지개를 켠다. 그러고는 사과를 받아들이겠다는 표시로 내 종아리에 몸을 쓰윽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나에게 밥을 내놓으라고 야옹 거린다.



가끔 사고도 치지만, 대부분 행복해 보인다.


요사이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TV나 노트북에 집중해 있다가 노다메가 근처에 없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화장실에 있는 아이를 발견한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번 정도는 꼭 혼자 명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등을 보이고 앉아있다. 어떨때는 그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서글퍼진다. 내가 볼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본 거 같아서인 걸까.  


저러고 있다가 이름을 부르면 돌아본다.



여전히 노다메는 나에게 말을 걸지만, 몇 가지 명확한 의사표현을 제외하고는 못 알아듣겠다. 그래도 지금까지 도망 안 가고 살고 있는 거 보면 내가 그리 싫지는 않은 거겠지라며 나만의 착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까지 내 곁에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부모의 심정으로 전하고 싶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주렴.


우린 천생연분이야.


네가 무지개를 건너갈 때를 상상만 해도 눈물이 차오르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은 안 하려고 해.


그냥, 최선을 다해서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


나는 너랑 있으면 참 행복하거든.


나랑 있는 동안 편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볼게, 노다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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