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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Jan 04. 2019

14. 나와 다른 친구가 있다는 건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평생 다이어트 기간 동안 살아남은 옷들, 그 시절에는 너무 감동받아서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으면서도 다시는 펴보지 않은 책들, 뿌리째 뽑을 수 없는 흰머리, 몇 년 단위로 체력이 뚝뚝 떨어지는 나의 몸뚱이, 그리고 나의 동거묘 등등. 하지만, 이것들과 쌍방으로 소통할 수는 없다.  유일하게 나와 비슷한 시간을 겪고 느끼면서 함께 좌절하고 괴로워했다가 어느 날은 구름 밖으로 잠깐 외출 나온 해님처럼 웃기도 하는 오랜 친구들은 소통이 가능하다.


나에게는 세 부류의 친구들이 있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처음 취업했던 회사 동기들, 그리고 통역/번역가를 하면서 만난 동기와 후배들이다. 물론, 다른 친구들도 있지만 소수이므로이 부류에 넣지 않으련다. 그중에 여전히 맞춰가고 있는 중인, 머리가 살짝 아픈,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명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A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초등 동창 모임의 일원이다. 두 명은 결혼을 해서 곧 중 1이 되는 아들과 딸이 있다. 반면에 나를 포함한 두 명은 미혼이다. 각자의 삶이 있으니 자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자주 보면 6개월에 한 번이고, 보통 1년에  한 번 보면 잘 보는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 카톡도 주고받고, 둘씩 만나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 만나기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잘 맞을 리가 있겠는가. 좋은 이야기만 하던 초반에는 마냥 좋았지만, 나만의 위기가 찾아왔다. 사람들 중에는 타인에게 자신의 사고방식을 '복붙'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A는 자신의 사고방식에 나를 끼워 맞추려 들 때가 있어 거부감이 들 때가 있었다. 정해진 틀에 갇히는 게 싫어 프리랜서를 하는 나는 - 프리랜서도 하나의 틀이긴 하지만- 갈등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중간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시도를 여러 번 해도 실패하면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 아예 그 사람을 보지 않는다. 네 명 중 하고 싶은 말은 꼭 해야 하는 성격을 가진 이는 나와 A이다. 무언가를 같이 정하자고 해놓고 항상 자신의 선택을 관철시키는 A에게 처음엔 맞춰줬지만 어느 시점부터 대놓고 싫은 티를 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나도 폭발하고 말았다. 제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질러버린 것이다. 그때 A가 나를 치고받았다면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집으로 갈 계획이었다. 나에게, 화를 낸다는 의미는 더 이상 안 볼 거라는 아주 강한 의사표현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A가 화를 내는 대신 깔깔대며 웃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도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왜 그녀가 웃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웃음은 비웃음이라기보다는 미안하다는 사과의 마음과 이해를 넌지시 구하는 웃음이었다. 나의 웃음의 의미도 A에게 전달되었을 거라고 믿는다. 이후 A를 포함한 우리들은 좀 더 속마음을 터놓게 된 거 같다. 서로의 말에 눈물이 맺히기도 했으며, 힘든 여건에 같이 한숨을 쉬어줄 수 있었으니까. 말하지 않으면 마음을 알아줄 수는 없지만, 웃음의 차이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의 친구가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나중에 A는 내가 무섭다고 고백해서 나를 놀라게 했고, 어느 밤에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역시 A는 즐거운 연구대상이다.




두 번째 친구는 회사 동기이다. 나를 포함한 세 명 중 B는 제일 오래 그 회사를 다녔는데 학구열이 대단했다. 전문대를 나와 4년 제로 편입하더니 지금은 박사 과정의 막바지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녀의 열정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하니, 대단하다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만나면 B가 주로 얘기를 많이 하며, 나는 혼란스러운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설명을 요구하거나 나의 의견을 전달한다. B는 자신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강하다. 다른 생각도 있을 수 있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일쑤이다. A에게 했던 것처럼 몇 번 대화를 시도했지만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후부터는  솔직히 듣는 척만 할 때가 있다. 쌍방소통이 안 되니 흥미를 잃는 것이다. 나의 행동이 가능한 이유는 중간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C가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계속 붙어 다녔던 2주간의 여행은 여러모로 도전이었다. 나의 성격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시험하는 바람에 따로 다니자고 말하기 일보직전이었다. C 덕분에 잘 넘기긴 했으나, 쫌스러운 내 성격 탓에 인천공항에 도착해 커피 한 잔도 마시지 않고 헤어지고 말았다.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니 B가 했던 행동과 말들이 떠오르면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왜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냥 B가 매우 재미있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경질 났던 일은 모두 잊어버렸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항상 모든 일에 자신 있어하던 B가 몇 년 전 처음으로 약한 소리를 했다. 본인이 계획하고 예상했던 것들이 틀어지자 힘들다는 거다.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어서 많이 속상했다. 옆에서 일부러 강하게 조언했지만 돌아오는 건 자신 없다였다. 너무 자신 있어하지 말았으면 했는데 막상 그런 모습을 보니 당황을 넘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그랬던 B는 한동안 방황하다 복잡한 주변을 정리하고 얼마 안 가 예전의 그녀로 돌아왔다. 너무 빨리 돌아와 또 당황스럽지만... 그래! B에게는 이런 태도가 어울린다.




나와 다른 친구가 있다는 건 비슷한 성향의 친구가 있는 것만큼이나 좋은 일이다. 처음에는 소화가 안 되는 것처럼 힘들지만 몸에 좋은 약은 쓰다 하지 않던가. 옴싹 옴싹 나와 다른 사람들이 있어야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의 고지식한 생각을 흔들어줄 것이고 안전지대에서 잠깐 나오게도 해준다.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것인가.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포기에 가까운 말을 하기엔 내 허물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입장을 바꾸어본다면 그들에게는 내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일 테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에 도달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커다란 돌이 풍화와 침식을 겪으며 동글동글한 조약돌로 변하듯이, 사람도 조금씩 둥글둥글해지기 마련이다. 어렸을 때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가능해졌다. 그 말은 친구도, 나 자신도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둥글둥글해졌다는 뜻일 게다. 물론, A와 B 같은 사람들을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만큼 새로운 이들을 조건 없이 품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와 다른, 아주 오래된 친구가 있다는 건 아주 아주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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