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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Fly Jan 09. 2019

16. 나의 최애 여행지

변해도 좋아

내가 모은 돈으로 처음 해외여행을 간 곳은 홍콩이다. 2005년인가 2006년쯤에 처음 갔던 홍콩은 슬픈 역사적 배경을 가진 나라이지만, 서양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한 탓에 중국 본토와는 차별화되어있었다. 그리고, 홍콩인들은 그 사실에 대해 상당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마치 중국 본토와 자신들을 분리해서 봐주길 원하는 것처럼.


그런 자부심의 최고 걸작이 바로 영화이다. 그들은 첩혈쌍웅으로 대표되는 누아르 영화로 권선징악을 예고했으며, 장만옥의 화양연화, 장국영의 천년 유혼, 패왕별희, 해피투게더 등으로 곧 중국으로 반환되는 홍콩의 운명을 예감했다. 하필이면 만우절에 자살한 장국영때문에 라디오에서는 하루종일 그를 추모하는 노래들이 나왔던 것을 기억하는지. 그가 뛰어내린 호텔과 식당을 기어코 가본 적이 있다. 이런 기억이 쌓이고 쌓여 홍콩은 내가 제일 먼저 가보고 싶었던 해외여행지였다.


내가 홍콩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매우 더운데 비해 홍콩은 습도는 있지만 온화한 날씨였고, 기반 시설 등이 서구화되어 있고, 영어가 통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대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우리네 70년대 정도의 속살이 보이는, 애써 개발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울 갖고 있어서 좋다. 특히 카오룽 섬을 가면 그 느낌이 아주 강렬하다. 물론 향신료 때문에 그곳에서도 홍콩 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마트에 들러 초밥을 사 먹거나-제일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 맥도널드에 가지만, 나의 여행에서 음식은 그다지 중요한 편은 아니다.


이후 해외 출장과 여행 등 다 합해서 여섯 번 이상 갔는데 카우롱 섬에서도 가장 변하지 않는 한 곳이 있다. 바로 구룡 공원과 그 밑에 있는 넒은 골목이다. 쓰레기 하치장과 전통시장이 있는 곳으로 낮에도 밤에도 아무리 조명을 밝혀도 밝아지지 않는다. 이 거리는 대형 쇼핑몰인 하버시티와 빅토리아 하버로 이어진다. 대로에 위치한 건물에 있는 브랜드 간판이 아무리 바뀌어도 이 거리는 언제 가도 똑같다. 마치, 이게 진짜 홍콩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새벽에도 오후에도, 그리고 밤에도 같은 냄새가 난다. 냄새가 심한 날에는 코를 잡고 지나가야 하지만, 한 번도 돌아간 적은 없다. 당시 '도시인'이었던 나는 외곽으로 나가지 않고 시내에서 주로 머물렀다. 이 곳에 와야 꼭 홍콩을 왔다 간 느낌이다. 그래서 항상 숙소도 이 섬에 잡았다. 3년 전 갔을 때는 모험을 조금 해볼 량으로 외곽으로 나가 2시간 코스의 둘레길을 돌았고, 해변도 들렀다. 이렇게 1-2년에 한 번 홍콩을 들를 때마다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안타깝지만 좋은 쪽이 아닌 그 반대이다. 몇 개 안 되는 경험이긴 하지만 여전히 생생하다.  


홍콩의 어느 둘레길 


홍콩에서는 더 이상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다. 가난한 본토의 중국인들이 이 곳으로 넘어와 영어를 못해도 되는 소위 3D 직종을 모두 잠식했다. 물론 다르긴 해도 중국어는 통하니 다른 직군에도 종사하기는 하지만. 처음 홍콩에 갔을 때만 하더라도 홍콩의 빨간색 택시기사들은 아무리 못 해도 짧은 영어 정도는 알아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호텔에서 택시를 타야 하는 경우 손님이 가는 곳을 중국어로 적어준 주소를 기사에게 건네주는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 한 번은 마지막 날 새벽 공항으로 갈 때 호텔 직원이 깜박 잊고 게이트 번호를 알려주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택시기사는 영어의 one, two도 알아듣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제2 외국어가 중국어였는데 항상 5교시여서 점심 먹고 한참 놀다 들어오니 졸기 일쑤여서 '양'이나 '가'만 맞는 실력이었다. 계속 올라가는 택시비에 조급해진 나는 뇌를 행주처럼 짜내어 '쓰(3)'라고 얘기해 겨우 도착한 전설이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도착한 2년 전에는 버스를 탔는데 중국어로 말하는 기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느 터미널에 내팽겨졌을 때의 황당함은 지금 생각해도 기가 찰 일이다.


그리고 홍콩인들에게 한국인과 일본인은 더 이상 최고의 고객이 아니다. 돈 많은 중국인들이 본토와 홍콩을 연결하는 다리를 통해 건너와 진공청소기처럼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사 간다. 한 번은 40분이나 택시를 타고 간 아웃렛에서 내가 원하는 구두뿐만 아니라 매대 전체가 텅텅 비어있어 허망했던 적이 있다. 돈을 쓰는 곳이면 이들은 언제라도 존재감을 뿜어낸다.  


또, 3년 전에는 묵고 있는 호텔 앞에 A라는 편의점이 있었다. 대각선에는 아침 일찍 나이 드신 분들이 하는 약방 - 달리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경동시장처럼 말린 약초를 파는 곳이다-이 있는데 잡지나 생수 등을 문 앞에 놓고 판다. 편의점보다 나이 드신 분의 물을 팔아드리고 싶어 갔는데 편의점보다 생수 값이 싼 거다. 웬 떡이냐 싶어 샀는 데, 돌아오는 길에 또다른 약방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은 더 싼 거다. 아주 작은 걸로 경쟁하는구나 싶으면서도 그 전에는 못 보던 상황이라 이상했다.


내가 익숙해있던 여유 있던 홍콩인들의 표정은 이제 쉽게 볼 수 없다. 그곳으로 이주한 중국인들은 신경질적이면서 거친 말투를 가지고 있으며,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표정을 하고 쳐다보는 매우 고생한 얼굴들 뿐이다. 유럽도 그렇긴 하지만, 홍콩 길거리에서 흡연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흡연을 해도 담배를 바닥 쪽으로 내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는데, 이젠 그냥 공중에 뿜어댄다. 1국 2 체제를 50년 동안 보장하라고 했지만, 홍콩이 이양되자마자 중국은 억누르고 있던 치욕을 없애기라도 하듯 홍콩을 중국화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사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와 외침이 전 세계적으로 보도되는 그즈음에 내가 그 곳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움직임을 비웃듯 쳐들어와 마음대로 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은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진다.  


마지막 여행 후, 나의 호흡기를 위해 더 이상 홍콩은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하버시티로 가는 쾌쾌한 냄새가 나는 그 거리가 그립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버스도 전철도 막아놓아 한겨울에 등에 땀나도록 캐리어를 끌고 시내를 활보했는데도 또 가고 싶다. 구룡 공원의 녹음이 짙은 오래된 나무들과 물 빠진 수영장, 그리고 점심시간에 몰려와 도시락을 먹는 히잡을 쓴 여인네들이 보고 싶다. 저녁시간 무렵 할인해서 파는 두툼한 초밥을 사 와 호텔룸에 앉아 먹고 싶고, 아침에는 지하에 있는 24시간 맥도널드 매장에서 파는 홍콩 맥도널드 제품도 먹고 싶다.


나는 또 홍콩 병에 걸린 거다. 3년 전 홍콩 저가항공사의 카운터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을 때, 나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곧 오픈하니 기다려 주세요' 대신에 '한 시간 반후에 오픈합니다'라고 쿨하게 쓰여 있는 안내문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게 홍콩이다. 속아도 또 가고 싶다. 가고 또 가도 질리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낸 서촌처럼, 나에겐 홍콩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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