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굿바이, 크리미날 마인드!
처음 밤새면서 본 미드가 CSI LV (라스베이거스, 2000년)였다. 이후 스핀오프로 마이애미와 뉴욕이 나왔는데 오리지널 못지않게 아주 재미있다. 한국에서 얼마나 인기가 있던지 케이블 채널에서 그리썸 반장이 한국말로 '캄사합니다'라고 광고까지 했었다. 푸른 눈의 흑인 혼혈인 워릭이 출연료 협상 불발로 죽는 걸로 끝나는 것까지는 버텼지만 (내용은 너무 슬펐다), 다른 역할을 해 보고 싶다며 그리썸 반장님이 떠난 후에는 더 이상 의미가 의미가 없어 보지 않는다.
이후 나에게 찾아온 드라마는 NCIS (2003년 시작)이다.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로만 사건을 풀어가는 CSI와는 달리, NCIS는 나이가 들었는데도 데이트하고 싶은, 적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외로운 깁스 반장을 필두로, 일생이 여자 꼬시는 게 목표인 듯 굴지만 중요한 순간에 냉철한 사고를 발휘하는 디노조, 천재 프로그래머로 디노조에게 매일 놀림당하는 맥기, 만능 법의학 전문가 아비, 디노조와 사귈까 말까 했던 이스라엘 출신 지바, 검시관 덕키는 논리와 직감이 혼재하는 액션 해군 범죄 수사물이다. 현재 시즌 15까지 이어지고 있으면 바뀐 캐릭터들도 매력있다. 현실적인 죽음과 암투가 섞여있고 수사관들도 죽을 수 있는 상황을 재치 있는 대사와 장면들로 가감 없이 보여줘 보고 또 봐도 재미있다.
NICS를 보는 와중에 내 눈에 들어온 미드가 바로 크리미널 마인드 (Criminal Minds 2005년 시작)이다. 범죄자의 심리를 프로파일링 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이 미드는 CSI와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범죄자가 남긴 흔적을 바탕으로 그/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행동을 예측하면서 중간에 뛰어드는 타인들의 감정들을 물리치고 사건을 해결한다. 타인들 앞에서는 절대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FBI 행동심리팀 (BAU) 요원들의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사정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렇게도 필요한 말만 할 수 있나 싶고, 절대 웃지 않지만 아내와 아들 앞에서는 풍부한 감정을 보이는 애런 하치너 반장. 하지만, 감옥에 보내는 데 성공한 연쇄 살인범이 탈옥해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자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고 분노한다. 그 외에도 치매를 앓는 엄마를 걱정하는 천재 최연소 박사인 스펜서 리드, 귀여운 프로그래머 페넬로피, 하치너 못지않은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 에밀리, 실제로 임신한 상태에서도 출연한 적도 있는 가장 인간적인 언론담당에서 실전으로 뛰어든 JJ, 가장 뜨거운 피를 가진 모건, 고령자이면서도 난 척하지 않는 기디언과 로시. 이들이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며, 이후 몇 명의 캐릭터들이 바뀌었고 다니엘 헤니는 시즌 13부터 합류했다.
오리지널 멤버들이 떠났지만 CSI와는 달리 나는 여전히 이들의 시리즈를 보고 있다. 크리미널 마인드가 좋은 이유는 요원들의 배경이 각 에피소드에서 사건의 해결을 푸는 열쇠 역할을 하고, 모든 캐릭터들이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전체적으로 역동성이 느껴 지기 때문이다. 냉정할 줄만 알았던 요원들이 감정적으로 바뀌는 지점에 같이 흔들리는 나를 보며 와, 진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미널 마인드 에피소드는 재방송을 할 때에도 예약해서 본다. 분명히 드라마인데, 소설처럼 읽힐 때가 많다. 아마도 첫 장면에 유명인이 한 말이 화면 정중앙에 깔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크리미널 마인드가 시즌 15를 끝으로 종영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범죄사건을 보면서 이들의 심리를 알고 싶었던 나에게 상당한 영감을 주었고, 나의 창의력과 추리력을 끊임없이 자극했으며, 어떤 에피소드는 보는 내내 감탄사를 뱉게 했던, 하치너가 아내를 죽인 연쇄 살인범을 죽일 듯이 팰 때는 같이 눈물이 맺혔던 그 드라마를 이제는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재방송은 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범죄유형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이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괴롭다. 마지막으로 45명의 작가 군단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잘 가요, 크리미널 마인드.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