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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ug 20. 2023

'난 울고 싶어요.'

그림책을 읽어 본다 26: <Doll Face Has a Party!>

<Doll Face Has a Party!>(돌 페이스가 파티를 열어요!)   Pam Conrad      Brian Selznick (Illustrations)      1994       A  Laura  Geringer  Book


인형에 대해서 이야기하자고 시작하고 보니 요즘 매스컴에 언급되고 있는 바비인형 영화, <바비>(Barbie)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이들이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모습은 매우 단순하다. 가지고 있는 바비 옷을 다 꺼내 놓고 둘러앉아 자기 손에 든 바비 인형에 옷을 차려 입히는 것이다. 이게 바비인형 놀이의 거의 전부다.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옷 중에 이것저것을 맞추어 차려입듯 바비의 옷가지를 모양, 색깔을 맞춰 열심히 입힌다.


옷 입히기가 별로 쉽지 않다. 바비의 약간 구부러진 팔과 기다란 다리를 타이트한 옷에다 집어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행에 맞게 멋진 부츠 차림을 해보려고 우선 무릎까지 오는 양말을 신긴다. 그리고 그 위에 긴 부츠를 신겨야 하는데, 얼핏 보면 안 들어갈 것 같지만 애써 밀어 넣으면 "딱" 맞게 들어가긴 하는 그런 식이다.

바비의 옷 종류나 색상은 바깥세상의 유행을 그대로 반영한다. 단지 검정이나 베이지 색조는 많지 않고 거의 총천연색으로 만들어진, 미국인 혹은 백인종의 의복 습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옷이다.


 애들이 거의 용을 쓰며 옷 입히는데 몰두하다 보니  그 시간 동안 아이들 사이에는 거의 아무런 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옷을 다 입힌 후 단지 몇 분 동안 '바비, 이제 파티에 가자, ' 아니면 '바비, 어디로 놀러 갈까?' 정도의 말을 하다가 다시 옷을 벗기고 새 복장으로 입히기 시작한다. 그게 바비인형 놀이다.


바비와 같이 판매하는 집 세트, 병원 세트, 캠핑 세트 등 등을 같이 구매하면 아이들이 상황에 맞춰 이야기를 꺼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물건들은 비싸기 때문에 쉽게 사서 편하게 가지고 놀거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의 놀이에서 중요한 부분인 이야기 만들기, 소통, 공감 같은 요소는 바비 놀이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런 '바비 놀이'는 그럼 아이들에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일까? 아이들도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예뻐 보이는 옷을 인형에게 입히며 노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보고 넘어갈 수도 있다.     

 

바비 인형의 비현실적인 모습--9등신의  BMI 15도 안 되지만 볼륨은 충분한 몸매와 "호수" 같은 눈--에 반대하는 부모들이 이 인형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친구가 가진 바비를 자기도 가지고 싶어 하는 딸의 요구를 마냥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바비가 싼 인형은 아니기 때문에 세일을 잘 타서 반 값에 사줄 수밖에 없다. 그러고는 얼마동안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바비 코너에 가서 또 세일에 올라있는 바비 옷가지를 사모으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도 '예쁜 척'만 하는 게 아니라 '바깥일'도 (해야)한다는 세상 이해에 맞춰 다양한 직종의 바비 인형이 만들어져 왔지만, 예를 들어 초고도의 전문직, 변호사 바비라도 놀이의 핵심은 여전히 옷 갈아입히기다. 바비 인형(놀음)을 이야기하며 페미니즘을 어떤 의미에서든 얽어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 바비든 변호사, 의사, 조종사 바비든 예쁜 패션의 인형을 가지고 옷 갈아입히며 놀았다고 그런 여자아이의 뇌가 잘못되는 일은 없다고 본다.


바비를 가지고 놀며 옷을 갈아입혀 보다가 그 반복이 지겨워져서 삼단 같은 바비 머리채를 가위로 잘라보며 지루함을 극복해 보려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마지막에는 바비의 머리가 거의 다 잘려나가 박박 깎은 머리가 되어버리고, 그때는 다시 다른 바비를 가지고 논다. 아무 문제없다.


작금의 바비 영화는 감독, 그레타 거윅이 스스로의 성장 시기에 대해 가지는 분홍빛 감상感傷과 그녀의 작업을 역 이용하는 바비 제작사, 마텔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 이외의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서로 이용하며 개인 소비자에게서 일, 이 만원 무리 없이 받아내어 억만금을 버는 방법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매스컴은 영화, 바비의 티켓 판매액이 여태껏 "여자 감독"이 벌어들인 금액 중 최고액이라고 한 술 더 뜬다. 세무서 생산자 코드에 '여자감독'이란 난이 있기라도 한 걸까? 페미니스트 시시비비는 바비보다는 그런 매스컴의 기사 작성 행태에 가 붙어야 마땅하지만, 늘 그렇듯이 돈 만원 여 보태준 나 같은 소비자는, 잘난 사람들이 '코 묻은 돈' 받아 모아 부자가 되고 매스컴은 뭐든 말을 만들어 밥 벌어먹는 세상에 그냥 당하는 듯 안 당하는 듯하며 지나갈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인형이 인간의 문화에 별 의미 없거나 그런 물건은 아니다. 인형의 시작과 변화 과정과 소비행태를 연구하는 학문은 항상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의 인형(동물 모양 포함)의 역할을 들여다보고 분석한다.


인형이 어쨌다고,


'인형 썰說'의 원조는 인형 아닌 사람, 노라가 '난 인형이 아니에요'하고 집을 박차고 나가는 입센의 희곡이 되겠지만, 그런 인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지 노라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인형이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이 느낀 곤경이 인간사회에서 없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곤경.

자신의 몸이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곤경이다.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존재의 곤경도 같은 것이다.

그렇게 억제된 욕망에 눌린 존재는 해방을 갈구한다.

 

작가, 팸 콘라드는 파티를 열어 친구들과 즐거운 음악을 듣고 달콤한 케이크를 먹고 싶어 하는 인형, 돌 페이스(Doll Face)의 외침으로 그 욕망을 형상화시킨다.


돌 페이스의 (사람) 가족 누군가가 그렇게, 풍선을 매달아 장식을 하고 음악을 틀어 놓고 손님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며 경쾌하게 달각달각 소리가 나는 식기를 사용해 음식을 먹고 케이크를 먹는 파티를 열었을 것이다. 돌 페이스는 이 광경을 집안 구석 어디쯤에서 보았겠다, 인형인 그녀는 사람의 파티에 초대되지 않으니까.


이제 그녀는 스스로에게 꼭 같은 파티를 열어 주고픈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파티에 원하는 것은 제대로 된 식기와 음악과 특히 그 달콤한 '스위트 케이크'-- 사람들이 파티에서 먹었음이 분명한 케이크다. 식구들의 파티 후에 남겨진 듯한 풍선 하나가 돌 페이스와 함께 집안 곳곳을 다니며 그녀가 원하는 음악, 장난감 피아노를 찾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케이크까지도 찾아낸다.

마침내 돌 페이스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파티를 시작한다. 돌 페이스는 진짜 포크를 사용하여 케이크를 한 덩어리 잘라 입에 넣는데, 역시 케이크는 그녀 입 근처에 뭉개질 뿐이다. 그래도 그녀는 차까지 마시지만, 차는 물론 그냥 아래로 쏟아져 내릴 뿐이다.

그녀의 욕망과 그것의 좌절이 아찔하다.


브라이언 셀즈닉의 삽화는 짙은 색의 꽃무늬 벽지로 탁하게 치장된 집안을 보여준다. 인형을 클로즈업으로 다루다 보니 다른 사물은 초 밀접 클로즈업이다. 돌 페이스는 예쁘게 단장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그러나 눈은 허공을 보고 있다. 파티에 참석한 풍선과 차주전자와 춤도 추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돌 페이스는 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정말 멋진 파티였어요'라고 외치지만 그런 그녀의 다리에는 발이 뒤로 꼬여 붙어 있다.

케이크가 먹어지지 않고 차도 마셔지지 않고 발도 거꾸로 달려있는 돌 페이스.

허공을 보는 돌 페이스의 푸른 눈이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난 울고 싶어요'인 것만 같다.



바비인형 옷을 갈아입히느라 무아지경에 빠지다가, 묶어 올리고 땋고 하다 싫증난 바비의 머리채를 싹둑싹둑 자르기도 하며 놀다가, 콘래드와 셀즈닉이 만든 돌 페이스의 파티 이야기를 "읽어"내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결국에 '인형의 문제'를 해결해 낼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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