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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ug 05. 2023

내 마음을 읽어주세요

그림책을 읽어본다 25: <The Tub People>

<The Tub People>     Pam Conrad     

Richard  Egielski (Illustrations)    1989

A Laura Geringer Book


팸 콘라드의 인형 그림책, <The Tub People>(욕조 인형)과 <Doll Face Has a Party!>(인형이 파티를 열어!)는 현실과 환상의 틈 사이에서 자아낸 이야기다. 둘 다 인형(같은 존재)의 무력함을 생각해 보는 이야기이지만 두 사람의 삽화가가 그려내는 무력함은 당연하게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욕조 인형'의 나무 인형들은 눈, 코, 입이 점과 선으로 표현된 무표정의 얼굴이고 '돌 페이스'는 인간보다 더 극적으로 꾸민 얼굴이지만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케이크를 먹지 못하고 입에 문지르며 허공을 보는 돌 페이스의 얼굴은 기괴하다. 배수구로 빠져버린 아들을 찾아본다는 엄마 욕조 인형의 표정 없는 얼굴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낼지, 팸 콘라드의 욕조 인형 이야기 먼저 들여다본다.  

               



이야기는 나무로 매끈하게 만들어진 인형 한 세트에 관한 것이다. 아이들이 소꿉놀이 하듯 동네놀이 할 때 가지고 노는 장난감 인형이다. 아빠, 엄마, 아들, 할머니, 의사, 경찰, 그리고 개까지 해서 한 세트다. 머리와 팔은 회전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두 다리는 꼭 붙어있다.

그리고 제대로 차려입은 옷에 비해 얼굴은 매우 간단하게 그려져 있다. 눈은 두 개의 점, 코와 입은 간단한 선으로 처리되어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인데 어찌 보면 연하게 미소를 띠고 있는 듯도 하다.


글은, "이 인형들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거의 알아보기 힘들지만 미소 짓고 찡그리고 울고 웃고 가끔은 서로 윙크도 한다"라고 한다.

그런가?


'욕조 인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인형들은 욕조가에 나란히 서 있다. 그리고 목욕시간이 되면 욕조 물속에서 비누 보트도 타고 수영 시합도 하고, 아들이 욕조물속으로 빠진 듯하면 아빠가 달려와 구해주기도 한다.

"도와줘요, 도와줘요"라고 아들이 외치면

"그래 우리가 간다"라고 하며 아빠가 구해준다.

경찰관과 의사가 누가 빨리 수영하나 시합하자며 욕조 끝에서 끝까지 헤엄쳐 나가고, 응원하는 아들에게 할머니는 "너무 시끄럽다. 좀 조용히 해"라고 한다.

뻣뻣하게 올리거나 내민 팔을 하고서도 즐겁게 노는  듯하다.


욕조 물에 들어앉아 있을 인형의 주인, 목욕 당사자에 대한 언급은 글이나 그림 어디에도 없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자연스럽게 모든 말이 인형들의 말인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 목욕물이 급하게 빠지면서 몸집이 제일 작은 아들이 배수구로 빨려 나갔다. 일곱이다가 아들 없이 여섯이 욕조 가장자리에 서게 되어 인형들이 몹시 슬펐다는 글을 읽으며 인형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다.  

얼굴에서 변화를 읽을 수가 없다.

자세히 뜯어본다.

앞선 페이지에서 보인 즐거웠던 시간 동안의 얼굴 표정과 비교해 가며 입매를 찬찬히 살핀다.


미소 짓던 얼굴이 침울해진 것 같다.

들여다볼수록 표정이 변하는 것 같다.


인형들이 감정을 나누며 소통하는 순간을 확실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페이지를 앞으로 뒤로 돌리며 인형의 얼굴을 자세히 살핀다. 눈과 입매를 살피고 또 비교하다 보면 그 감정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점 두 개일 뿐인 눈과 두 줄로 그려 넣은 입매를 더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아들이 빨려나간 욕조의 배수망 아래를 들여다보며 아들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식구들의 얼굴을 살피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가로막고 있는 배수망이나 표정 없이 그 배수망에 얼굴을 밀착시키고 있는 엄마 얼굴 모두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는 듯하여 숨이 막힌다.


아들이 없어진 이후 목욕 시간은 즐겁지 않다. 물속에서 수건 보트를 타면서 "아들아 어디 있니, 돌아와"라고 불러볼 뿐, 모두 힘이 없다. 그리고 점차 아들을 부르는 일도 없어진다.


아들은 욕조 아래 배수구 속에 두 팔은 만세 하듯 위로 번쩍 올린 채로 걸려있다.

움직일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얼굴도 원래 그대로의 무표정인 듯한데 물속에 반쯤 잠긴 모습은 엄마 얼굴만큼이나 무력함의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아들인형 때문에 욕조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는다. 배관공이 와서 살펴보는 동안 물이 막힌 이유를 알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인형들은 숨을 죽이고 이 상황을 지켜보기만 한다.

인형들이 "아들아 돌아와"라고 속삭이고, 그리고 눈물을 보인다고 한다.


배관공이 성공적으로 아들을 꺼내면서 욕조물은 다시 제대로 흐르게 되었다. 인형들은 기쁜 마음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는데 아들을 연장 통에 던져 넣은 배관공은 그 통을 들고 가 버린다.  

글은 그래서 인형들이 슬펐다고 한다.


인형들의 표정이 변한 것 같다.

슬퍼 보인다.


아들이 돌아오면서 인형들은 침실로 옮겨졌다.

목욕물에서 놀듯이 다시 함께 논다. 대신 이제는 이불 위에서 할 수 있는 등산놀이를 하며 즐겁게 논다.

이제 안전하다.

안전한가?

더 이상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빠지게” 될 위험은 없는가?


밤에 놀이가 끝나고 잘 시간이 되면 인형들은 이제 창가에 일렬로 선다.

아빠, 엄마, 할머니, 의사, 경찰, 아들, 그리고 개의 순서, 욕조가에 서던 순서 그대로.


그런데 아침에 보면 아빠와 엄마 사이에 아들이 살짝 비집고 들어선 모양으로 자리가 변해 있다.        


배수망을 들여다보던 엄마가 '내 마음을 읽어 주세요'라고 간청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염원이 어디엔가 닿았다고 생각한다.


점과 선으로만 그려진 인형의 얼굴은 더 이상 표정 없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무표정 뒤의 그 마음이 강렬히 전해져 온다.

그리고 인형들의 어쩔 수 없었던 무력의 기억도 그 얼굴에 너무나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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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2023 J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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