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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Jul 16. 2023

문어를 만나다

그림책을 읽어본다 24: <Gentle Giant Octopus>

<Gentle Giant Octopus>       Karen Wallace   Mike Bostock (Illustrations)        1998           Candlewick Press


<Gentle Giant Octopus>는 첫눈에 쏙 들어오는 그림책은 아니었다. 같은 저자와 삽화가의 <뱀장어를 생각하며, Think of an Eel> (그림책을 읽어본다 11에서 리뷰)가 나의 애장 그림책이다 보니 이 이야기도 분명히 좋을 것 같아 주문했다.


배달된 책을 한번 주르륵 훑어보았다.


우선 표지가 바닷속 정경인데 눈을 부릅뜬 것 같은 문어가 다리를 휘두르며 돌무더기 위에 포진하고 있다. 문어는 아주 뻘건 고동색으로, 배경으로 잡힌 초록과 연 초록의 바다색과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응, 문어가... 채색이, 감동이 부족해... 뭐 내용도 특별한 것 없고..' 그렇게 넘겨보았다. 문어가 미역 같은 해초 근처에서 보호색으로 변신한 모습을 그린 페이지는 시커멓게, 무슨 물귀신 같이,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 싶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보고 책을 닫아 어딘가에 올려놓았다.

아마 십여 년 전의 일이다.

끝.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라고 하던가?


몇 년 전, 자주 보는 프로그램 (CBS Sunday Morning)에서 문어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5-6분짜리 피쳐물인데 깜짝 놀랄만한 문어의 변신 보호술을 보여준다. 정말 눈 깜빡하는 사이에 옆에 있는 푸른색 해초 더미의 색과 모양과 피부결까지 꼭 같게 모습을 변화시켜 완전히 해초의 일부가 되는 문어의 변장술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비디오 촬영이니, 눈을 의심할 시청자를 위해 화면을 느린 속도로 거꾸로 돌려주기까지 한다. "아!" 소리 밖에 나지 않는 변신의 극치다.

"저게 문어란 말이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화면에는 여러 가지의 화려한 색을 한 문어가 비친다. 해초 트릭뿐만 아니라 움직이다 갑자기 주변의 돌처럼 변해 버리는 트릭까지 보여준다.

리포터는 ‘높은 지능’을 가진 문어의 ‘의식작용‘ 그리고 ’상호소통 능력‘ 까지 믿을 수 없는 말들을 읊어댄다. 문어는 단순한 보호색 수준의 변신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문어연구자들이 역학적 변장술(dynamic camouflage, 로저 핸론 roger Hanlon)이라고 부르는 고도의 지능 게임을 한다나?


가지각색의 조개로 온몸을 둘러싸고 자신에게 입질하는 큰 물고기를 피해 나가는 문어의 모습은 웃음을 터뜨리게 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인간과 상호작용도 하며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가지고 잘 논다는 설명까지, 놀람에 끝이 없다.


눈을 반짝이며 문어가 얼마나 특별한 생물체인지 설명하는 동물연구자(사이 몽고메리 Sy Montgomery)에게 리포터가 묻는다.

"문어가 영혼이 있다고 믿으세요?" <The Soul of an Octopus>(문어의 영혼)란 이름을 달고 출판된 그녀의 책을 염두에 둔 질문이다.

그녀는 확고하다.

"내가 영혼이 있다면 문어도 영혼이 있다고 믿어요."     

  


'세상에... 나는 왜 이걸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거야, 왜? 어째서?'


내가 알고 있는 문어는 제사상에 푸짐히 모양을 잡고 올라있는 문어다. 삶은 문어다. 제사 다음 날 아침에는 먹기 좋도록 잘려 상에 올라온 별미다. '문어를 "몰랑하게" 잘 삶는 것이 어렵다'는 엄마 말씀을 반주로 들으며 문어를 먹는 일, 일 년에 여남은 번 있어왔다, 어릴 적에.


내 손으로 문어를 삶은 적은 없다. 문어는 일상 음식이 아니고 비싼 식재료라 동네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었다.

휴-우.

일단 저 특별한 동물을 내 손으로...(평생 제사상에 모실 문어를 삶아낸 엄마, 죄송합니다)... 펄펄 끓는 물에 넣고 고통을 주는 일은 하지 않았다. 문어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이라는 말이 무섭다.


그런데 문어를 먹었다는 사실은 숨길 수가 없다. 미국 사람들이 이 낯선 동물을 새로이 만나고 이 특별한 동물에 대해 눈을 반짝일 수 있는 '원죄 없음'이 부럽다. 그들에게는 문어가 낯설고 생김새가 이해가 안 돼서 소설이나 영화에 괴물로 등장시킨 죄 밖에는 없다.

우리는, 나는, 어릴 때도 먹었고,

한 십 년 전쯤에는 맛있었다고 두고두고 말할 정도로 잘 먹은 적도 있다. 언니네가 며느리를 보며 받은 예물 음식, 문어를 우리 집 냉장고에 맡겨두는 와중에 한 접시 제대로 얻어먹은 것이었다. 예물이니 당연히 좋은 것을 골랐겠지만 다리가 정말 굵고 잘 삶아졌었다. "와, 진짜 부드럽다" 그러며 식구들과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실컷 먹었다.


어쩌면 좋을까.


최근에는 넷플릭스에서 <My Octopus Teacher>(나의 문어 선생님)라는 다큐멘터리도 보았다. 감독은 사이 몽고메리 보다 더 감정적으로 문어를 그려내고 있다. 문어는 수명이 길어야 3-5년이라 두 사람 다 자신이 친구처럼 교감하고 애지중지하던 문어가 죽은 경험을 했기에 감정이 진하게 묻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인가?


해변 가까이 사는 문어는 알을 낳을 낮으막한 동굴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알을 낳은 후 그 알이 부화될 때까지 "식음전폐"하고 알을 지킨다. 부화가 끝나면 자신은 그 자리에서 죽어 넘어지는 그야말로 기막힌 동물이 문어다.


그림책 <Gentle Giant Octopus>도 문어의 알 낳기와 부화에 관한 장면을 크게 그리고 있다.

길쭉한 포도같이 생긴 알, 물론 크기는 매우 작을 것이지만 그림책은 그 정보를 주지 않고 두 페이지 펼침에 알이 길쭉한 포도송이처럼, 그 모양으로 길게 한 줄에 매달린 채로, 그것이 여러 줄 걸린 모양을 그려주고 있다. 노란색으로 처리한 그림이 경이로우려면 이 조그만 알들이 무수하게 실 같은 줄에 매달려 돌무더기 사이의 공간 천장에 매달려 있고 그 입구에서 보초 서듯 살피고 있는 문어 엄마를 그려야 했지 않을까? 한 번에 6만 개까지 알을 낳는다는 정보를 부가적으로 써놓은 것만으로는 그 경이로움이 전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특별한 생물체의 일생 목표가 한 번 알을 낳아 부화시키기인가 라는 안타까움이 확연히 다가오지만 그림책은 그런 감정을 제대로 펼쳐주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문어에 관한 모든 정보는 저 일요일 아침 쇼의 쇼크에서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여성 동물 연구자의 책,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리얼 사이언스> 쇼의 문어 이야기('The Insane Biology of: The Octopus' 말도 안 되는 생물학:문어 편), 그리고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그리고 테드 톡(TED Talk)까지 들쳐가면서 알아낸 것이다.


 <Gentle Giant Octopus>가 마침 눈에 들어와 리뷰를 해볼까 생각하면서 위의 모든 일들이 기억 속에서 한꺼번에 나를 덮쳐 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전에 기억이 가물한 상세 정보 확인을 위해 다시 위의 소스들을 찾아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새로이 위키피디아까지 훑었다. 위키피디아는 해부학적으로 문어가 이해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방문했다. 특히 짝짓기와 알 낳기 부분이, 문어가 그토록 목숨을 거는 일인데, 뭔가 분명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에.  


‘웬일이야? ‘

‘뭐, 문어 연구하게?’

그냥, 놀랐고 또 궁금해서 그랬다.


이 그림책 시리즈의 제목이 공교롭게도 'Read and Wonder'(읽고 질문하라) 이듯이 TV 쇼를 보고 내가 한 것이 바로  'Watch and Wonder'(보고 궁금해하고 질문하고 찾아보기)였지 않은가.

그러나 웰리스와 보스톡 팀의 이 합작품 그림책은 그런 경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살짝 한 수 모자란다.

 

"아, 이거 정말 잘 그렸다."

문어에 대한 나의 참회를 들어주며 책을 후루룩 넘겨보던 딸의 일성이다.  

문어가 물을 빨아들였다가 뿜어내며 앞으로 쏜살같이 내닫는 제트 추진 같은 움직임을 여러 개의 박스로 나눈 화면에 그려 놓은 것인데... 뭐, 좀, 생동감이 있다.

그렇지만 문어 이야기를 할 때 그 제트 추진으로 움직이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인가? 영혼이 있다고까지 거론되는 동물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할 거면서 제한된 32 페이지 중 두 페이지를 그렇게 쓰고 싶을지?... 하다가 아마 이 그림책이 나온 1998년까지는 이런 사실들이 밝혀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여전히 뭔가 부족하고 아쉽다. 내가 받은 충격을 이 그림책도 전할 수 있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래도

이 그림책을 본 누구든 문어에 대해 뭔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궁금증이 생긴다면 그 정도로도 이 책은 "읽고 궁금해하고 질문하라"는 소임을 다했다고 보기로 한다.


"동물 세상이 그런 것이지. 난 문어가 맛있어."

'세상 쿨'을 추구하는 개딸과 이야기하면 끝에 가서는 내가 진다.


하지만 문어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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