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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Jun 27. 2022

10년 늦은 달콤 쌉쌀 직장 생활

 

39세. 과장 2년 차로 시작한 첫 회사에서 만 5년을 보냈다. 누가 유학을 간다고 하면 도시락 싸 들고 쫓아다니며 말리겠다고 말하고는 했다. 그런데 지금은 말이 바뀌었다. 직장 다운 직장에서 일해 본 적 없는 박사학위 소지자 늦깎이 사회 초년생이 대기업에 입사한다고 하면 도시락 2개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릴 거다. 그만큼 힘들었다. 20대 중반이 되기 전에 치러야 할 '사회 초년생' 의례를 거의 40세가 되어 통과해야 했다. 이미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동료들을 따라잡으려니 얼마나 힘들었던지. 내가 목표로 한 만 5년이 끝났을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사했다. 그런데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평생 그곳을 원망하고 욕할 줄 알았는데, 한발 물러나 그때를 돌아보니 내가 얻은 것이 많다. 이렇게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회사는 '당위'를 '현실'로 만드는 곳이다. 바라는 것, 즉 목표가 정해지면 반드시 결과를 만든다. 남(리더)이 정한 목표에 나를 맞춰야 한다. 목표에 대한 내 주도권은 제한적이다. 내 목표가 아닌데 몰입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신입 공채로 입사해 오랜 기간 몸으로 배운 이들은 회사(리더)가 원하는 목표에 헌신적이었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성과를 만들었다. 바라는 것과 현실 사시의 간극을 좁히는 법을 몰랐던 내게 그들은 위대해 보였다. 전문가라는데 머릿속의 것을 계획, 실행하고 결과로 만들지 못하는 나이 많은 2년 차 과정을 대하는 후배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보고서 작성은 정말 어려웠다. 논문은 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모든 자료를 다 찾아서 정리한다. 글이 길어지고 논문 하나가 수십 장을 넘고 참고 목록도 몇 장씩이나 된다. 그런데 회사 보고서는 반대였다. 잘 쓴 보고서는 작성자가 에너지와 지혜를 쏟아 찾은 단어와 몇 줄 문장으로 내용과 어조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한 장으로 끝나면 가장 좋다. 분량만이 아니다. 또 다른 점은 본론으로 들어가는 속도다. 논문은 본론에 이르기까지 몇 단계를 거친다. 서문으로 분위기를 잡고, 목적을 드러내고, 그런 후 어떤 연구주제에 대해 어떤 연구 방법을 왜 사용했는지 죽 늘어뜨린다. 가장 중요한 내용인 '결과'를 보여주기까지 한참을 돈다. 반면, 보고서는 순식간에 본론으로 들어간다. 목적, 취지를 밝히고 바로 본론이다. 서론 - 본론 - 결론이 한눈에 읽혀야 한다. 박 과장의 양파 같은 보고서가 그들에게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름 데이터 분석에 대해 공부하고 논문도 통계 기법을 사용했는데, 회사의 데이터 분석에 내 전문성을 통하지 않았다. 통계적으로 어떤 것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부장님을 손들어 주는 사람의 말이 맞는 것이었고, 그것이 연구에 반영되었다. 입사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연구자'로서 불편한 일들이 계속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통적인 방법의 연구가 아니었다. 리더들이 원하는 답을 내기 위한 연구였다.


R&D 포지션이라 연구만 할 줄 알았는데 이 역시 순진한 생각이었다. 박스 나르고, 책상 옮기고, 교재를 절도 있게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간식 세팅하고, 밝은 얼굴로 교육 입과생들을 맞이한다. 양질의 교육은 내용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가사의 유머 감각과 감성 터치이다. 얼마나 교육생을 웃고 올리는가가 좋은 교육이다. 내 최대 목표는 입과자들이 큰 불만 없이 2일 과정을 잘 마친 후 교육 만족도를 '4점' 이상 매기고 귀가하는 것이다. 현장에선 이론과 기법이 무용지물 같아 보였다. 나이가 어리고 가방끈이 길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았을 자괴감으로 눈물 흘렸던 날이 많았다. 내 비전에 대해 회의감을 많이 느꼈다. '각 개인에게 잠재된 가능성이 역량을 개발되고 최적으로 활용되면 모든 사람은 행복과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조직과 사회를 만들겠노라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백일몽이었을까? 내 선택을 원망하고 후회했다.


돌아보면 그곳은 현실감 없는 나에게 호사였다. 부족한 자에게 주어진 과분한 기회. 나는 남들보다 10년 늦게 시작하면서 소명감, 일에 대한 꿈과 열정이 가득했다. 반면, 동년배보다 회사 업무에 필요한 지식과 손에 익은 스킬 수준은 턱없이 낮았다. 간결하지 못한 보고서로 타박받고, 직급에 맞지 않게 일을 잘하지 못한다고 주눅 들었던 시간은 참 힘겨웠다. 참 다행인 것은, 지나고 보니 내 주변에 온통 일잘러들 뿐이었다는 것이다. 39세 과장 2년 차를 누가 데리고 앉혀 가르치겠는가? 그들과 한 공간에 있는 것으로, 그들이 일하는 것을 등 너머로 보는 것으로,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귀동냥으로 듣는 것으로, 살이 되고 피가 될 배움을 넘치도록 받았다.


늦게나마 시작할 기회가 주어져 잃어버린 20~30대의 시간을 만회할 수 있어 감사하다. 자존심이 상한다며, 처음이라 모른다며, 그때 포기했더라면 지금 40대 중반에 갖춘 역량을 개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다. 시작은 언제나 부담스럽고 고통이 따르지만, 무사히 그 시기를 지나면 닿지 않던 것을 손안에 움켜쥐게 된다. 39세 신입이 보낸 만 5년은 애벌레가 성충이 되는 탈피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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