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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Jun 27. 2022

까칠해도 괜찮아, 나는 소중하니까.

나의 하루는 진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아주 중요한 의식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쓰리 샷 따뜻한 톨 사이즈 라테는 필수 템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별다방에 들러 필수 템을 주문했다. 랩톱(laptop)의 전원을 켜고 한 입 홀짝 마셨다. 순간, 믿을 수 없는 밋밋한 맛에 머리 뚜껑이 열렸다. 샷을 3개나 넣었는데 커피보다 우유 맛이 더 진한 것이 아닌가. 우유에 커피 조금 넣은 그런 맛. 중요한 아침 의식에 실패해 화가 나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서는 듯했다. '이 화를 어떻게 한다?' 나는 찰나의 시간 동안 깊이 고민했다. 두 가지 생각이 엎치락뒤치락 레슬링을 했다. ‘무던한 사람이 되자, 둥글둥글하게 그냥 마시자.’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일에 내 영혼을 갈아 넣으면서 받은 스트레스 값으로 산 커피. 까칠해 보이지만 권리를 찾자!’ 나는 내 권리에 당당하겠노라 다부진 마음으로 매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당당히 요구해 새 커피를 받아 들었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둥글둥글 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어렸을 때가 더 ‘그러려니~’ 무던하고 덤덤하게 살았던 것 같다. 내 마음의 모서리는 각이 뾰족해지고 표면은 더 까칠해졌다. 내 까칠함의 기원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단어 '생존 본능'이 떠오른다. 직업 군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와 전학을 많이 다니며 터득한 것이다. 친구를 사귀려면, 학교생활에 적응하려면 둥글둥글해야 했다. 어렸을 때는 너무 순했다. 누구한테 싫은 소리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 밟으면 그냥 밟히고 마는 지렁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타인이나 사건에 대한 느낌과 생각 표현을 스스로 금했기 때문이다. 속내를 드러내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포로 문지른 듯한 부들부들함 덕에 사람들과 잘 지내는 무던하고 둥글둥글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순하고 부드러운 이들이 따뜻한 일들만 경험하면 얼마나 좋을까? 착하게 굴어서 당했다. 억울한 일들이 다반사이고 눌리고 밀리는 상황이 너무 자주 발생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보자기,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였을까? 내가 느끼는 어려움에 무던해지려 노력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토로하고 시정을 요구하기 전까지 그들은 모른척한다. 주문한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이 나왔을 때, 의례 "그냥 먹을게요."라고 말하고, 또 그런 상황을 기대한다. 나도 그랬다. 주문을 전달받은 이의 잘못이다. 내가 원했던 음식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음식 버리는 것이 아까워, 주방에 일을 두 번 시키는 것 같아서, 뭔가 모를 미안함 때문에 권리 주장의 마음을 접는다. 


상대의 고의적이거나 무계획적인 행동이 내 편의와 권리를 훼손하는 것을 두고만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다른 생존전략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까칠함을 택했다. 더 이상 당하고, 눌리고, 밀리지 않기 위해 참는 아량 대신 당당하게 명확하게 의사를 표현하기로 했다. 꼬장꼬장 날카로운 노인네로 기억될지언정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이들을 위해 까칠하고 싶다. 사람이 부드러워지면 만사가 무난하고 평화로운데 작은 것 하나를 그냥 넘어가지 않으니 삶은 고되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전처럼 내가 원하지 않은 맹맹한 라테를 받아 들고는 '오늘은 어쩔 수 없다, 그냥 마시자.'로 살지는 않을 거다. 까칠해도 괜찮아, 진한 쓰리 샷 라테로 아침을 여는 나는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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