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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Jun 27. 2022

청첩장을 받을 때의 딜레마는 무죄

이제는 친구도, 후배도 아니다. 큰 조카뻘 되는 동료들의 결혼. 나한테는 그리 어려운 데, 그들은 해낸다. 존경에 마지않는다. 새 가정을 축복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진심으로 축하한다. '언젠가 내가 축의금을 낸 이들에게 청첩장을 보낼 날이 있을 거야.' 희망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주는 청첩장 다 받고, 결혼식 다니며 축의금 내던 때. 그러다 40대를 넘어, 10년도 더 어린 후배들의 청첩장을 받으면 더 이상 결혼식장에는 가지 않고 마음만 보낸다. "내 결혼식 아니면 안 가. 그러니 섭섭해 마~." 


그나마 친한 동료나 후배인 경우는 낫다. 친하지 않지만 같은 부서에 있다고, 다른 부서지만 업무 상 소통하고 얼굴 몇 번 봤다고, 그들은 나름 예를 갖추기 위해 청첩장을 돌린다. 우리 정서에 '청첩장을 받는 대상'이 된다는 것은 곧 "나는 당신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나는 당신과의 관계를 중요하게/의미 있게 생각합니다."를 의미한다. 청첩장을 못 받으면 존재감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하다. 그런데 받으면 부담된다. 참 이율배반적이다.


 "인간관계를 돈으로 따지니? 청첩장을 준 그 친구에게 너는 의미 있는 존재잖아. 넓은 마음으로 축하해 줘. 인간사 덧없고, 몇만 원으로 사람 잃지 말자."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그간 군소리 없이 잘 버텨왔다. 그런데 미혼을 지나 비혼으로 넘어가는 40대 중반, 본전 생각이 더 깊어졌다. 계산하기 시작했다. "20대부터 지금까지 축의금으로 적금을 들었더라면 얼마나 모았을까? 과연 회수할 수 있을까? 내 장례식 조의금으로 받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나마 그것도 다행인가? 그간 나간 축의금 회수를 위해 비혼식을 한 번 해야 할까?" 


어떤 이들은 비혼을 공개적으로 공식화한 후 청첩장을 아예 받지 않는다고 한다. 아, 비혼에 진심인 사람들. 용기와 결단력에 박수를, 짝짝짝. 흔적처럼 남아있는 결혼의 꿈을 아직 포기하지 못한 나는 청첩장을 받는 순간의 딜레마에서 언제나 해방될 수 있을까? 미혼과 비혼 사이를 오가는 불쌍한 자여, 그대는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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