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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Jun 27. 2022

겨울에는 꼭 지붕있는 주차장 이용!

State College, PA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캠퍼스는 물론 캠퍼스 주변 주택가는 텅 빈다. 줄을 서서 다녀할 정도로 인도를 가득 메웠던 학생들이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부모님 집으로 가기 때문이다. 영화 「I am legend」가 오버랩 되면서 섬뜩해진다. 유령도시가 따로 없다. 밤이 되면 정적이 더 짙어진다. 그런 12월 말, 1월 초의 State College(스테이트 칼리지)의 겨울을 네 번 났다. 차를 구매하기 전의 겨울에는 온전한 집순이가 되어 두문불출 동면에 들어갔다. 미국에 지인도 없고, 먼 곳까지 나를 만나러 올 상황 사람도 없고, 이동이 어려우니 내가 만나러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참다 참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을 때는 집을 나선다. 차가 없으니 캠퍼스 외에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교직원과 미쳐 떠나지 못한 유학생들을 보며 안도한다. 나 말고도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스테이트 칼리지의 겨울은 너무 추웠다. 북위 40도. 서울이 37.5도, 평양이 39도. 추운게 너무 당연했겠지? 추위도 추위였지만, 눈. 눈에 대한 기억 또한 인상적이었다. 서울의 간간히 내리는 눈에 비해, 스테이트 칼리지의 눈은 어마어마했다. 물론 더 북쪽 도시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겠지만 내 평생에 가장 많은 눈을 구경했고 또 눈을 소재로 말할 꺼리도 몇 개 챙겼다. 


인적이 느껴지지 않은 밤, 가로등에 비치는 눈 내리는 풍경은 근사하다. 눈꽃이 어찌나 큰지, 팝콘만한 눈꽃들이 낙하산을 장착한 듯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거리면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경쾌함을 느끼면서도 마음이 차분해 진다. 덩치가 작으면 쌓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그 큰 덩치들은 몇 개만 모여도 이내 바닥과 지붕을 덮어버린다. 소리라고는 눈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밖에 없을 것 같은 고요함. 가로등불로 보이는 눈 내리는 스테이트 칼리지가 그렇게도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눈을 감상하고 나면, 나는 가장 두꺼운 옷들을 챙겨 입고, 장갑을 끼고, 빗자루와 제설삽을 들고 나간다. 그간의 경험으로 눈이 더 많이 쌓일 경우, 더 많은 눈을 치워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 오래 감상하지 않는다. 


언젠가 한 번 밤새 눈이 왔을 때였다. 어림잡아 30 센티미터 이상 왔던 것 같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가장 가깝고 저렴한 주차장을 찾다보니 안타깝게도 지붕이 없었다. 스테이트 칼리지의 겨울을 알았더라면, 애써 지붕있는 주차장을 찾았을 텐데. 주차장에 가보니, 세상에나! 차가 눈 안에 폭 안겨 있었다. 마치 엄마 품에 쏙 들어가 있는 아기처럼, 내 작은 차가 눈 속으로 숨어들어가 있었다. 아침 한 나절, 차 위에, 차 옆에 쌓인 눈을 치우며 다짐에 다짐을 했다. 다음부터는 눈이 그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리. 긴 빗자루로 차 지붕 위의 눈을 내리고, 차 옆으로 가득 쌓인 눈을 제설삽으로 퍼내어 담벼락 쪽으로 옮기며 팔에 알이 배길 정도로 눈을 치웠다. 그 때 주차장에 대한 중요한 기준이 생겼다. 지붕은 꼭 있어야 할 것! 


올해(2022년 초)는 한국에 눈이 제법 여러 번 내렸다. 지하 주차장이 있어 더 이상 눈 치울 걱정이 없어 다행이고, 대중 교통덕에 언제든 지인들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눈은 항상 나를 스테이트 칼리지에서의 시간으로 보낸다. 팝콘 크기의 눈꽃, 가로등불과 조화를 이룬 하얀 고요함, 눈과 벌였던 씨름. 건조한 삶에 서빙된 달달한 추억들. 



Penn State University Park
 Bryce Jordan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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