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소의뿔 Jul 02. 2022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끝낸 얼음땡


얼음땡. 살기 위해 눈썹 휘날리게 뛰거나, 완전히 멈춰야 하는 놀이. 어렸을 때 참 많이 했더란다. '비석 까기'처럼 도구가 필요하지도, '오징어'처럼 바닥에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다. 참 단순한데 기억이 짙게 남아 있다. 술래의 손에 잡히지 않게 열심히 달음박질했다. 만약 잡힐라 하면 바로 '얼음'을 외치고 멈춘 순간의 자세를 그대로 유지한다. 움직임이 술래의 눈에 띄지 않게 목만 겨우 살짝살짝 돌려가며 '땡'해 줄 사람을 찾는다. '나 좀 풀어줘~!' 간절한 눈빛으로 친구들에게 소리친다. 다행히 술래가 나를 향해 오기 전에 친구가 다가와 '땡' 하고 풀어주면 나는 다시 자유의 몸이 된다. 그리고 또다시 '어디 내가 잡히나 봐라.'는 마음으로 술래 앞에서 알짱거리며 술래를 자극한다.


술래는 참 묘한 존재다. 가까이 있으면 긴장감도 크지만 잽싸게 피하며 따돌리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술래는 나의 '욕구'이다. 성취감, 인정, 성장. 단 하나의 먹잇감인 나를 죽어라 따라다닌다. 그런데 거리를 적당히 두면 에너지가 되어 나를 앞으로, 또는 위로 움직이게 한다. 내가 '사람'에 대해 진심을 품었을 때 - HRD를 소명과 비전으로 마음에 심었을 때 - 이 욕구들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주경야독하던 석사 과정 시절에는 하루에 2~3시간 자고도 하루를 거뜬히 살아냈고, 도저히 끝내지 못할 것 같았는데 박사 과정도 끝냈고, 마흔이 다 되어 시작한 신입의 직장 생활에서도 그럭저럭 버텼다. 이제 막 시작한 작은 조직에서 지난 2년 간 '사람'과 '조직', 그리고 '리더'에 대해 진심을 다해 진액을 쏟았다. 내 욕구들이 술래가 되어 나를 계속 뛰게 했다. 술래에 잡히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뛰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죽어라 뛰기만 했지 멈춰 선 경험이 없어 ‘땡’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2022년 초반의 어느 날 드디어 그런 답 없는 상황을 맞았다. 나는 성취감, 인정, 성장의 욕구만큼 따라주지 않는 자신과 환경으로 인해 거리 조절에 실패했다. 순간,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퍽 하고 바닥에 쓰러져 조용히 '얼음'을 선언했다. 모든 동력 공급이 끊어지고 사지에 힘을 줬지만 소용없었다. 힘을 손가락에 다 몰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며 언젠가 땡이 오겠거니 막연하게 기다렸다.


한참을 간신히 호흡만 유지하면서 보냈다. 두렵기도 했다. 얼음 상태가 지속되면 어쩌나, 나사 풀린 기계같이 작동하지 못하면 어쩌나. 그런데 신은 자비를 베푸셨다. 이대로 죽지 말라고, 다시 움직이라고, 한 사람을 보내 내 영혼을 '땡'해 주셨다. 16번째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The Clibur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임윤찬.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속 깊은 곳에서 감동과 존경, 경외감이 솟아 마음을 충만하게 채우고 기름칠한다. 피아노와 음악에 대한 진심이 온몸에서 묻어나는 사람.

18세의 어린 피아니스트는 '땡'과 함께 삶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할 메시지도 함께 새겨 주었다. '열정과 몰입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재능은 피와 땀으로 더 빛난다. 진액을 쏟기 위해 쏟은 시간과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고 넘사벽 삶으로 남는다.' 무엇보다도 깊은 울림의 메시지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지 않으면 꿈꾸는 자리, 소명의 자리에 설 수 없다.'이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삶을 움직이는 힘은 '욕구'가 아닌 '즐김'에서 나왔다. 술래에 쫓기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음악에 대한 진심 가득한 즐김은 폭발적인 에너지와 생명을 피아노의 선율에 담았다.


'땡' 맞은 후 다리에 힘을 넣고 등과 어깨를 쫙 폈다. 다시 걷고 뛸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제는 술래와의 관계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내 성취감, 인정, 성장 욕구보다, 사람에 진심인 마음으로 소명과 비전에 더 집중하고 그 자체를 즐기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겨울에는 꼭 지붕있는 주차장 이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