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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Jul 09. 2022

HR, 아무나 하는 시대는 갔다!

HRDer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다지며 쓴 독백 

‘40대가 되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겠지? 진로나 경력개발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될 거야. 편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겠지?’ 30대 중반에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이런 장미빛 희망을 가졌다. 20대와 30대 초반, 삶과 경력에 대한 심한 방황을 막 마치고 난 후인지라, 40대에는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제대로 박혀 있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 어찌나 흥분되고 행복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명확하게, 오판이었다. 세상이 변화 속도가 이전에는 ‘걷기’ 수준이었다면, 2010년 이후에는 마치 발사되어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는 로켓의 속도와 같았다. 첨단 기술과 플랫폼 중심의 경영이 엄청난 기세로 확산되었다. 스타트업이 기존 기업들과 다른 생태계를 만들며 빠르게 성장했다. 대량생산의 시대는 확실히 저물었다. 데이터 분석으로 다양한 고객의 구미를 맞춘 상품과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졌다. 밀레니얼과 Z세대가 조직으로 유입되었다. 베이비 부머와 X세대의 인재경영과 조직관리 원리와 방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요구되는 리더십 역시 달랐다. 모든 역량과 전문성에 더해 지극히 본질적인 인간성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졌던 HR 분야에도 변화의 바람이 심하게 몰아쳤다. 업무가 세분화가 되고, 각 분야에 맞는 전문성이 더욱 뾰족하게 요구되고 있다. 2010년 대부터 LinkedIn을 사용했지만 요즘처럼 한국 HR업계가 글로벌 기업들과 비슷하다 느낀 적이 없었다. 대학 졸업자 대상의 대규모 신입 채용 제도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다. 필요한 때에 사람을 채운다. 헤드헌터에게 맡기거나, 접수된 서류를 검토하는 '기다리는 채용'으로는 원하는 인재를 영입할 수 없다. 숨은 인재를 찾아 채용 플랫폼을 이 잡듯 탐색한다. '찾아가는 채용'은 꽤나 공격적이다.

’입사했으면 알아서 적응해야지! 적응도 역량이야. 온보딩은 무슨 온보딩?’ 이랬던 반응도 이제는 역사책 구석에나 나올만하다. 대졸 신입이든 경력 신입이든, 신규 입사자의 연착륙을 돕고 이탈 방지를 위해 다양한 인사 및 복지제도를 서로 벤치마킹하기 바쁘다. 이제 더 이상 ‘좋은 조직문화’는 회사 벽면의 액자에 걸린 '보여주기식 홍보 문구'가 아니다. 경청과 소통을 기본으로 몰입과 성장을 돕는 ‘좋은 리더’ 역시 회사의 중요한 경쟁자원으로 간주된다. 조직과 리더, 구성원 모두 진정성이 요구된다. 조직문화가 연봉과 복리후생 만큼이나 입퇴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한 평가, 능력에 따른 성과가 구성원의 정당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다. 제도의 설계와 실행도 HR 임의로 추진할 수 없다. 많은 것들이 구성원의 참여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법과 정책도 성장중심주의적 관점을 벗었다. 단일화, 획일화는 과거의 개념이다. 조정과 통합의 과정을 거쳐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러면서 HR에 요구되는 역할이 사뭇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HR이 정적이고 안전 지향적이었다면, 지금의 HR은 위기와 변화를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관리하는 적극적인 모습이 요구된다. HR이 고려해야 하는 이해관계자의 범위가 넓어졌을 뿐 아니라 구성도 다양해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40대 중반을 넘어 50대가 될 나는, 사실 걱정 반 조바심 반이다. 내 연차와 경험이 어떤 역할로 조직에 기여할 수 있을까? 후배들의 성장에 방해되지 않으면서도 차별적이고 특화된 역할은 어떤 것일까? 지금까지 의지했던 역량 외에 다른 역량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앞으로 10~20년간 경력을 지속한다면, HR영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 일을 위해 빨리 무엇인가 갖춰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늦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나는 80세가 넘어도 일 할거예요!’ 늘 입버릇처럼 나 자신에게 선포한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신경을 쓰는지도 모른다. 어떤 역할이어야 80세 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 때문인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그러나 사실 나에게 더 큰 명분은 '의미 있게 살면서 타인과 사회 공동체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2020년 이래 계속 트렌드를 관찰하면서 ‘개개인성’, ‘몰입’, ‘감성지능’과 ‘소통’을 키워드로 내 역량과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 나를 이름만 대면 알만한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그 길의 끝에 나와 함께 건강하게 성장하는 조직/리더/구성원이 있을 것을 기대한다. 세상이 또 어떤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변할지 모르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 지금처럼 촉을 세워 변화를 주시하고, 방향과 속도에 나를 계속 맞추면 되기 때문이다. 일요일 밤 10시 30분. 월요일을 앞두고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일이 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을 감사해야 할까, 정상적이지 않다고(?) 나 자신을 의심해야 할까? 후훗, 갑자기 웃음이 난다. 내일 월요병 증상을 심하게 겪을지언정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HR, 아무나 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지만,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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