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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소의뿔 Jul 16. 2022

나는 내가 극협하던 '사내 갑'이 되었다.

동료여, 너와 나의 어떤 것도 '갑'이 될 이유가 아니다!

"ㅇㅇ님, 취업 준비하세요!"


어느 날, 점심시간에 인턴 ㅇㅇ에게 말했다. 밥 잘 먹고 있는 사람에게 잔인하게 화살을 쐈다.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염두하고 뽑은 인턴이다. 기대를 많이 했다. 20명 약간 안 되는 지원자 중 뽑은 인턴이었다. 회사에서 필요한 기능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의지와 열정이 단연 돋보였다. 정말 기대가 컸다. 그래서일까? 하루하루 날이 가면서 면접 때와 다른 모습에 실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그래, 회사 생활이 처음이니까.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거야. 이제 막 학부를 졸업했으니까, 기다리자. 나아질 거야.' 꾹 참았어야 했는데, 그날 왜 그랬을까? 아주 심각한 이슈가 없는 한, ㅇㅇ이 인턴 후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알고 있다는 것이 싫었다. ㅇㅇ의 채용 여부에 '평가자'로 참여할 수 있는 입장을 가졌기 때문에 심술을 부렸다. ㅇㅇ에게 던진 ' ㅇㅇ님, 취업 준비하세요!'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갑질하지 말자고, 사내 갑질하는 사람 되지 말자고 얼마나 다짐했던가. 내가 겪은 것을 절대 남들에게 하지 말자고 얼마나 깊이 새겼던가. 그런데 지금 나는 그렇게도 혐오했던 '갑'의 옷을 입고 있다. 앞서 입사해 뒤에 입사할 사람에게 갑질하다. 아. 뿔. 싸.


갑질, 별게 아니다.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대하지 않으면 갑질이다. '너'는 '나'를 '너'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대우하면 된다. '나'의 어떤 조건도 '너'에게 하대당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조직에는 자신이 '갑'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역할 수행을 위해 주어진 업무 상 책무를 권력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갑인 부서도 있다. 자금을 관리하거나 인사권을 가진 힘 있는 부서들 말이다. 그런 조직의 사람들은 눈에 뵈는 게 없다. 연차가 높은 사람들한테도 서슴없이 주어진 역할 이상의 권력을 행사한다. 부서에 배치되면 '갑으로 살기, 갑처럼 행동하기'를 학습하는 것 같다. 어제는 나와 같이 을, 병, 정이던 이가 갑이 된다. 너무 빠르게 적응한다. 씁쓸하다.  


오래전 이야기이다. 경력 입사자로서 대졸 공채들에게 당했던 갑질에 관한 것이다. 예전에 다니던 한 회사는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소문이 났다. 기수문화, 순혈주의, 성골/진골/육두품 등 현대판 계급의 위력이 참 어마 무시한 곳이었다. 직원 정보에는 연락번호, 직무와 함께 직군/직급/사 번이 나온다. 업무 상 협의할 것이 있어 메신저로 연락하거나 전화를 하면 느낌으로 느낀다. 사람들은 나를 검색해 직무/직군/직급/사번을 확인 후 나를 대하는 태도와 입장(stance)을 정한다.


직급은 사원-선임-책임-수석의 4단계로 구분되었다. 직군은 영문 이니셜로 표기되었고, 각 이니셜로 소속이 어디인지, 즉 영업, 인사, 자산, 기술 사업부 중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니셜 옆에는 직급 연차를 숫자로 표기했다. 학력 역시 이니셜로 알 수 있었다. 사번이 낮을수록 연차가 높다. 직급은 낮지 않은데 사번의 숫자가 큰 경우는 '경력 입사'이다. 간혹 대졸 공채를 통하지 않은 영업직군, 고졸 '사무직'군이 대졸 직군으로 전환할 경우에도 나이에 비해 사번 숫자가 크다.


나는 경력직이라 사번이 높았다. 업무 상 협의나 문의할 것이 있을 때 타 부서에 연락을 하면 늘 겪은 일이 있다. 상대방의 반응은 싸늘 반응이다. '너 어디서 굴러온, 뭐하는 애니?' 순혈주의 조직에서 경력직은 '을'보다 낮은 '병' 또는 '정'의 취급을 받는다. 동기가 없고, 밀어주거나 끌어주는 선후배가 없는 것이 얼마나 서럽던지. 업무 협조를 요청할 때는 늘 큰 조카 같은 친구들에게 갑질을 당해야 했다. 다행이게도 그 회사가 최근 몇 년 간 변모를 위해 엄청 노력하고 있다. 퇴사하기 전에는 사원 정보에서 직급/직무/사번을 과감하게 없앴다.


한 친구와 사내 갑질에 대해 이런 표현을 들었다. 그 친구의 화법인데, 갑질하는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단다. "당신이나 나나, 둘 다 머슴인데, 서로 잘합시다. 갑질하지 맙시다!" 머슴들끼리는 평등한데, 누가 누구 위에 있느냐는 말에 극하게 동의한다. 역할을 위해 주어진 권한과 정보를 권력으로 휘두르지 않는다면 서로 감정 안 상하고 잘 살 수 있다는 것. 나의 어떤 것도 동료를 '하대'할 이유가 아니라는 것. 그들과 나는 '피고용인'이고 상생해야 한다는 것. 잊지 않기로 다시금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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