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철없다. 결혼, 한 번은 하고 싶네.
'이혼하고 싶다.'
요즘 지인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다. 진심인지, 푸념인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그들이 이혼을 바란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더 이상 사랑이 없으니 갈라서는 것이 맞는데, 아이들 아빠로의 역할에 충실하라며 아내가 이혼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 이미 남처럼 각자 살고 있으니 새 여자 만나 새 출발 하고 싶으니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이, 앞으로 2년 남았는데 둘째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이혼하기로 남편과 합의했다는 이, 내년에 아들이 군대 가면 이혼하기로 했고 이미 별거 중이라는 이.
어느 날 아주 가까운 이가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입에 단내 나는 삶'을 읊어댔다. 육아와 남편 우선의 결정들로 자신의 경력과 진로가 타격을 받은 일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다시 태어나면 절대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노라며 가슴 절절하게 한을 풀어냈다. 그녀의 결론은 '결혼은 반대, 그러나 연애는 반드시'이다. 그러면서 내게 던진 한 마디 질문. "이래도 아직 결혼하고 싶으슈?" 나는 순간 "아니요, 안 하고 싶어요."라고 답할 뻔했다. 그녀가 쏟아낸 현실들에 잠시 눌렸었다.
궁금해졌다. 그들이 원하는 '이혼'은 무엇일까?
꿈이 이혼인 이들이 원하는 것이 혹시 경계선은 아닐지. 그들이 원하는 자유가 혼자만의 시공을 보장받는 것, 시댁/배우자/자녀 등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의식하고 굳이 배려하지 않고 자신에게 눈을 고정하고 오롯이 자신만을 돌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아니다, 사랑이 식어서 일수도 있다. 시간 및 공간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답일 수 있다. 나랑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인데,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내가 부럽단다.
"결혼을 해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야. 결혼은 외로움을 해결하지 않아." 기혼 친구들은 이구동성 말한다. 내가 아무리 너희의 외로움과 나의 외로움은 다르다 얘기해도 안 먹힌다. 늘 함께 있어 손이 많이 가기에 힘들지만 내리사랑이던, 옆으로의 정이던 체온과 감정을 나누고 또 인생에서 간간히 만나는 소중한 시간과 사건들을 함께 나눌 가족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나 외의 존재를 의식하고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품이 단련되고 다듬어져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혼자인 나는 기혼인 이들에 비해 포용과 배려, 성숙 면에서 다르다. 2%.
그들이 다시 싱글로 돌아온다면 환영하고 응원해 줄 거다.
그들이 가족 내 이해관계 - 시공의 사생활 및 자기 주체성의 문제 등 - 를 잘 다루고 기혼으로 머물면 좋겠다. 하지만 결혼하겠다는 이들을 끝끝내 말리지 못하는 것처럼 이혼하겠다는 이들을 어찌 말리겠는가? 결혼도, 이혼도 모두 자신을 위한 최선의 결정임을 안다. 그때도 맞았고, 지금도 맞는 것이리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데, 이미 한 번 해 봤으니 싱글로 돌아와 사는 것도 괜찮다. 단, 자녀 관련된 문제들을 잘 다루었다는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 덕분에 내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명절이나 휴가철에 함께 할 친구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들 역시 내가 아직 내려놓지 않은 결혼에 대한 환상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곁에 있어도 외로움은 여전하겠지만, 옆에 누군가가 있어 굳이 연락처와 카톡 프로필을 뒤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나는 더 간절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