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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t M May 19. 2022

기억 속의 색

PROLOGUE




독일의 뮌헨 대학교 연구팀에 따르면, 인간이 업무를 하다가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 ‘녹색’을 띄는 사물이나 풍경을 보면 두뇌가 활성화되어 다시 일의 능률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녹색이 일에 대한 열정이나 발전적인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색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의 유년 시절과 첫사랑에서, 전반적인 삶에서 색은 어떤 존재인가. 여러 가지 색들 중 유독 끌리는 색이 있다면 무엇인가.     


‘색깔’에 대한 인지는 어쩌면 매일 숨 쉬고 사는 것처럼 무의식적이기도 하나 때로 ‘색’은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중요한 자리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를 때나 화장을 할 때, 소중한 이에게 선물할 물건을 구입할 때 개인의 취향은 색에 그대로 투영된다. 특정 브랜드를 떠올릴 때에도 그것의 모티브가 되는 색과 의미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색의 존재는 다양하다.

소방차라는 단어를 두고 ‘파란색’을 떠올리는 이는 없을 것이다. 또한 빨간불에는 길을 건너야 한다고 인지하는 이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때때로 사회적 통념이나 규칙 또한 색에 귀속되기도 한다.


패션은 어떤가? 이미 몇 세기에 걸쳐 패션은 디자인을 비롯해서 다양한 색의 조합으로 유행을 선도해왔고, 한 개인이 선호하는 색상으로부터 그의 취향이나 성격 등을 유추하기도 한다. 결혼식에는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장례식에는 검은색 의복을 입는 행위, 수술실의 의료진이 초록색의 옷을 입는 것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처럼, 이미 삶의 많은 부분에서 색깔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크다.     



얼마 전 부모님이 이사를 하셨다. 내가 태어나고 40년 인생을 통틀어 약 일곱 번째의 이사였다. 엄마는 이번이 마지막 집이고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낼 거라고 하셨다.

집을 구경하다가 엄마의 옷장을 열어 보았는데, 짙은 붉은색의 원피스가 눈에 띄었다. 대부분 무채색의 옷들 속에서 그 붉은 원피스는 단연 눈에 띄었다. 물론 새로 장만한 옷은 아니었다. 그 옷은 이미 20년 전부터 엄마의 옷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엄마는 큰맘 먹고 그 붉은 원피스를 샀다.

하지만 엄마는 그 옷을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다. 비닐도 태그도 제거되지 않은 그 붉은 원피스는 20년 동안 굳건히 엄마의 옷장을 지키고 있었다.     

검은색, 회색, 베이지색 등의 무채색 옷만 입던 엄마에게 그 붉은색 원피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30년 이상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삶에 대한 일탈, 혹은 결혼 후 잃어버린 여성성이나 상실된 자아에 대한 애틋함 등이 평소 입지 않던 자주색이라는 색에 그대로 투영되어 삶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고 있던 것.

젊은 시절 반짝반짝 빛나던 청춘과 열정은 옷장 문 하나만 열면 곧 닿을 듯 자리하고 있었고, 그것은 삶의 위안이 되기도 때로는 우울한 날들 속 한 줄기 빛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나의 많은 무채색의 기억들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색은 바로 ‘자주색’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한 번도 입지 않은 원피스의 색이기도 하며 그와 더불어 지낸 유년 시절의 낭만과 방황 등이 그 색에 녹아있다.

사실상 오랜 기억 속의 한 장면은 대부분 흑백이고,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 기억을 끄집어내 상기시킬 때 비로소 색이 드러난다. 어떤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그 기억들을 호출할 때, 뭉뚱그려진 한 장면에서 서서히 윤곽으로 선으로 점으로 기억들이 선명해질 때 색은 비로소 어둠 속을 밝히는 등불처럼 나타나 흩어진 장면들을 연결해준다. 그런 점에서 색에 대한 탐구는 아주 흥미롭고 가치 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기억 속의 색은 무엇인가?

특정한 색을 보고 기억나는 한 장면이나 인물이 있다면 잠시 그 시간을 건져 올려보길 바란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선택의 기로에서는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핑크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늘 핑크색의 옷만을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입지도 않을 자주색 원피스를 옷장에 걸어놓고 감상하는 일처럼, 우리의 삶은 대부분 취향과는 거리가 먼 형태로 펼쳐질뿐더러 선호하지 않는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존재하기 위해서 특정 색을 추구할 필요는 있다. 그 안에는 여러분의 성향, 기질, 특성, 취향, 욕구 등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를 통해 ‘색깔’이라는 개체로 삶을 탐구하고 서로 다른 개개인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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