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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t M Jun 11. 2022

두려움과 열정의 기로에 선 빨강

레인보우 에피소드

당신에게 빨강은 두려움인가 열정인가.


몇 해 전 가족 모임에서의 일이다.

외할머니의 칠순 잔치였고, 5남매와 자손들을 비롯해 30여 명이 모이는 자리였다.

사회자를 초빙해 행사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막내 이모가 나타났는데,

모두들 이모의 옷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소 눈에 띄는 빨간색 투피스.

몇몇 어른들은 입을 떡 벌리고 ‘아니, 어떻게 저런 옷을 입고 왔나’하는 눈치였다.

평소 입는 옷차림새가 유별난 이모였지만, 특히 그날 입고 온 옷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게 갈리고 말았다.

갑자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만약에 그 투피스가 회색이나 네이비색이었다면 이토록 논쟁거리의 대상이었겠는가 싶었다.

왜 우리는 유독 ‘빨간색’에 연연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빨강’이 주는 상징적인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RER B line


1980년대 초, 파리와 파리 남쪽 교외에 RER B선이라는 객차가 생겼다.

그 객차 안에는 빨간색 좌석과 파란색 좌석이 번갈아 있었다.

한가한 시간대에 그 객차를 타면 승객들은 자신이 앉을 좌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 만약에 여러분이라면 어떤 색 좌석에 앉을 것인가?

그렇다. 대다수의 생각대로 그 당시에도 빨간색 좌석에 앉으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빨간색의 상징은 반감, 두려움, 불안함 등이었기에 파란색 좌석보다 다소 중립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옛 문학 작품들에서도 빨강은 다소 독보적이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 ‘빨강’은 작품을 표면적으로 관통하는 ‘피’와 ‘죽음’을 의미한다.

구전 동화인 [빨간 망토]에서도 원작을 분석해 보면 ‘빨강’이 주는 의미 또한 피와 죽음이다.

이렇게 빨간색은 이미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각인되었다.

살면서 코피만 조금 나도 허둥대는 것이 사람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우리는 대체로 일상에서 위급함이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빨강’ 색을 떠올린다.

그 대표적인 예로 구급차의 십자가 표시, 신호등의 정지등, 자동차의 브레이크, 선생님의 빨간 색연필이 있다.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달려가는 구급차를 보면 다치거나 피 흘리며 쓰러져 있을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 순간 주위 사람들의 심장 박동은 빨라지고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빨간색은 지나치게 눈에 띄고 강하고 유혹적이어서 다른 색들과 다소 거리감이 있다.

학창 시절 기말고사 시험지에서 사선으로 그어진 선생님의 빨간 색연필을 보면 온몸에 힘이 빠진다.

게다가 그것이 실수로 틀린 문제라면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뿐인가. 신호등의 정지등이나 축구 경기에서의 레드카드는 상대로 하여금 특정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경고’이기도 하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에서는 유난히 피 흘리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우리는 이렇게 무슨 약속이나 한 듯 ‘빨강’ 색을 떠올리면 대부분 두려운 것들이 생각난다.

아무도 그 이유를 설명하긴 힘들지만 어땠든 빨간색은 위반의 색, 위험의 색으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빨간색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개선되었다.

여기 한 실험이 있다.

달리기 능력과 지구력, 신체 기능이 모두 같은 두 사람에게 각기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혔다.

한 사람은 초록색, 다른 한 사람은 빨간색.

두 사람이 달리기 시합을 한다면 누가 이길까? 물론 정답은 ‘똑같이 도착한다’이다.

그러나 이 실험 응시자 108명 중 86명이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더 빨리 도착할 것이라고 답했다.

정답을 맞힌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광역버스가 빨간색인 이유도 상통한다.

빨간색이 주는 자극 때문에 직행버스는 빨간색이 되었다.

초록색 버스와 빨간색 버스가 모두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간다.

그런데 이 두 버스가 동시에 정류장에 왔을 때 사람들은 빨간색 버스를 선택한다.

더 빨리 갈 것 같은 자극 때문이다. 두 배의 요금을 기꺼이 내고도 목적지에 빨리 가고 싶어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세상의 중심에는 이미 빨간색이 있었다.

1868년 12월 런던에 설치된 최초의 신호등의 색은 빨간색이었다.

종류를 불문하고 생명의 탄생은 ‘붉은 피’를 수반한다. 기독교에서는 성신 강림 축일에 상징적으로 빨간색 옷을 입는다. 게다가 아이들의 동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동물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색은 빨간색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백설공주에 등장하는 빨간 사과를 떠올릴 수 있다.


영국에서 실시한 한 연구에서는 2004년 올림픽 경기를 분석한 결과

빨간색 옷을 입은 팀이 푸른색 옷을 입은 팀보다 더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도 있었다.

어떤가. 많은 역사 속에서 말해주듯이 빨간색은 우리 삶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황에 따라 긍정적 결과를 줄 수도 있고 부정적 시각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객차의 좌석에서처럼, 어떤 사람이 혼자 빨간색 좌석에 앉는다고 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그 사람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빨강의 이미지만으로 인상을 찌푸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를 떠올려보자.

그 어떤 때보다 열정적이었고 단합되었으며 기쁨이 넘쳤다.

거리에는 온통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도시 전체가 활기찼다. 이것이 빨간색의 상징이다.     


모두가 일을 핑계로, 생계를 핑계로, 늙고 초라해진 외할머니를 외면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가까이에서 할머니를 돌본 사람은 바로 빨간 투피스를 입었던 막내 이모였다.

아직도 빨간색을 두고 열정과 두려움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면,

그 색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기를 바란다.


‘빨강’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만 버린다면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살면서 이런 고정관념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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