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나를 온실 속 화초로 만든다. 빠름에 익숙해질수록, 더 빠르게. 빠름은 능력이 아니다. 생각을 생략하는 방식이다. 2배속은 과정을, 생각을, 판단을, 질문을 지운다. 결국 2배속으로 살다 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추천 메뉴, 추천 영상, 추천 콘텐츠. 알고리즘이 정리해 둔 세계에서는 결정이 빠르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살지, 무엇을 고를지 고민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럴듯한 선택지가 도착해 있다. 나는 그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빠르게 담고, 빠르게 넘기고, 빠르게 결정한다. 그 과정은 짧고, 결과는 대체로 괜찮다. 그래서 나는 믿게 된다. 나는 결정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착.각.이.다.
빠르게 고르는 능력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은 다르다. 오히려 선택이 빨라질수록 판단은 점점 쓰이지 않는다. 이미 정리된 것들 앞에서는 기준을 꺼낼 이유가 없다. 비교도, 머뭇거림도, 스스로 묻는 과정도 없이 그저 하나를 고르면 된다. 그래서 참 빠르다. 그리고 그 속도는 능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안에는 판단의 흔적이 남지 않는다. 나는 선택을 하고 있지만, 어떤 기준으로 고르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더 빨리의 세계는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잠깐 걸린 버퍼링을 기다리지 못하고 새로고침을 누른다. 긴 글은 중간을 건너뛰고 지그재그로 읽는다. 뉴스는 제목으로 방향을 잡고 본문은 지나쳐 댓글에서 결론을 확인한다. 책은 정독하지 않고 요약본을 찾는다. 영상은 2배속으로 재생하면서도 이해했다고 믿는다. 로켓배송을 주문하고 하루라도 늦으면 불편해진다.
이 모든 장면에는 하나의 공통된 점이 있다. 멈추지 않으려는 태도. 조금이라도 지체되는 순간을 불편으로 느끼는 감각. 그래서 우리는 더 빨리 읽고, 더 빨리 고르고, 더 빨리 넘긴다. 선택은 점점 빨라지고, 생각은 점점 얇아진다. 과정이 짧아졌다.
빠름은 시간을 아끼는 방식처럼 보인다. 그래서 결론을 먼저 찾는다. 긴 설명은 건너뛰고, 핵심만 훑고, 요지만 확인하면 충분하다고 느낀다.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이해했다고 판단하는 속도가 더 중요해졌다. 그게 효율이라고 믿으면서.
하지만 그 속도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과정을 지워버린다. 무엇이 더 나은지, 왜 그것을 선택하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질문들이 올라오기도 전에 이미 선택은 끝나 있다. 보이는 것들을 따라가고, 정리된 것들 안에서 고른다. 그래서 빠르다. 시간을 아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생각을 쓰지 않는 방식에 철저하게 익숙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복잡한 것을 복잡한 채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조금 더 고민하는 시간은 낭비처럼 느껴진다. 답은 궁금하지만 그 답에 도달하기 위한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진 메뉴판에서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알고리즘 내에서는 내 기준을 꺼낼 필요가 없다. 그저 고르면 된다. 더 빨리, 더 빨리를 외치는 구조 안에서는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점점 잃어간다. 더 빨리 선택하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더 깊이 판단하는 법은 잊었다.
아직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꺼낼 필요가 없는 상태에 오래 머물 뿐이다. 그 상태가 반복될수록 생각은 점점 더 꺼내기 어려운 것이 된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 익숙해진다. '생각이란 걸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온실 속 화초가 아닌 스스로 뿌리내리는 나무로 살고 싶다.
나는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