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꺼내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하루는 매끄럽게 지나간다.
요즘은 선택이 어렵지 않다. 알고리즘 안에서는 결정이 빠르다. 배달 앱을 켜서 쏙, 온라인 장을 볼 때도 쓱, 콘텐츠를 고를 때도. 이미 준비된 것들 안에서 큰 망설임 없이 고른다. 빠르게 고르고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래서 판단을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판단의 기준이 어느 순간 '빠름'으로 바뀌었다.
착.각.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알고리즘이라는 조건이 사라지는 순간, 익숙하지 않은 감각이 찾아온다. 추천도 없고, 정리된 목록도 없고, 누가 먼저 보여주는 것도 없는 자리에서는 쉽게 고르지 못한다. 온라인에서의 지체없이 고르는 나는 어디로 갔을까? 무엇이 더 나은지 몰라서가 아니다.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를 꺼내지 못한다. 그제야 알게 된다. 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잘할 필요가 없었던 상태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걸.
알고리즘이라는 조건이 사라지자 확신도 함께 사라진다. 결정을 내린 뒤에도 어딘가 불안해서 다시 확인받고 싶어진다. 혼자 결정하지 못했다는 감각은 조금 신경쓰이긴 해도 지나친다. 그 이후로도 비슷한 느낌을 받지만 지나친다. 그렇게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도, 가구를 살 때도, 작은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비슷한 감각이 반복된다. 대부분은 그 찜찜함을 그대로 둔다. 생각하지 않아도 하루는 매끄럽게 잘 흘러가기 때문에.
그 상태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생각을 쓰지 않아도 되는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지는 방향이다. 그건 갑자기 무너지는 일이 아니라 그저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아주 느긋하게 천천히 차분하게 이동하는 일이다. 그래서 더 오래 드러나지 않는다.
생각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의 문제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꺼내지 못하는 상태로 남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는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고 정말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만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생각을 쓰지 않는 삶의 끝은, 생각을 꺼내지 못하는 삶이 된다. '생각이란 걸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그 질문이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무섭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상태다. 알고리즘 방식에 익숙해질수록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상태.
하루를 돌아보면 크게 문제될 일은 없었다. 선택은 빠르게 이루어지고, 결과도 대부분 괜찮았다. 그래서 알고리즘이 있는 곳에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삶이 유지되기 떄문에 더 오래 드러나지 않는다. 빠르게 판단할수록 생각은 더 쓰이지 않고 있었다. 편하게 내린 선택들이 쌓이면서 나는 더 잘 선택하고 있다고 느껴왔다. 하지만 그건 판단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우리는 알고리즘 안에서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익숙해져 있었다. 생각을 잘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상태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잘해왔던 건 판단이 아니라, 이미 정리된 선택 안에서 빠르게 고르는 일이었을지도.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쓰이고 있지도 않았다.
정말 중요한 선택은 알고리즘이 없는 곳에서 일어난다. 진짜 삶의 장면에서, 누구도 대신 결정해주지 않는 순간에, 나는 내 기준을 꺼내야 한다. 그건 평소 생각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나는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