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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JANE Aug 31. 2020

 나의 입꼬리를 관찰하는 사람

<첫 동거>

▲ Cradle  Mountain



첫 출발지를 정하고 우리는 섬으로 갔다.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것도 장담하지 못했지만 본격적으로 처음 떠나는 여행길은 그저 흥분 그 자체였다. 발길 닿는 모든 길이 가슴 뛰고 흥미진진했다. 우리는 아주 자주 크게 웃고, 울었다. 서로의 감정표현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했다. 당신은 어떤 것을 보면 웃는지, 또 어떤 것을 보고 우는지. 그는 많은 곳을 보여주고 싶어 했고, 나는 점점 더 자주 웃었다. 내가 발견하게 된 것은 큰 땅과  넓은 자연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깊은 곳 꽁꽁 감춰져 있던 나였다. 새로운 땅 위에서 바라본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그는 담아두고 싶어 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바라보며 어색해할 때마다 그는 그 순간들을 사진에 담았다.


"저기 앉아봐."


나를 앉혀두고는 어린아이를 달래 딸랑이를 흔들며 사진을 찍는 것 마냥, 그는 온갖 농담을 던져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의 사진 속에는 크게 활짝 웃고 있는 내가 찍혔다. 여전히 남이 담아준 나의 모습이 어색하던 때였다. 입을 크게 벌려 웃는 못생긴 모습이라며 나는 사진을 찍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척했다. 어느날 그는 한 장의 사진을 찍은 후 나에게 보여주었다.


"네가 꾸밈없이 가장 행복하게 웃을 때의 얼굴이야. 나는 이 사진이 가장 좋아." 라며 말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날의 사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되었다.


누군가의 카메라 속에 담기는 일은 어색했다. 그러나 점점 사진 속의 웃는 내가 좋아졌다. 못생겼든, 입을 너무 크게 벌려 웃었든 나는 점점 더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의 연습이 꽤나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뭐, 남이 그렇다고 하니까. 들리는 것을 의심하고 듣지 않기로 했다. 눈이 찌그러져 웃는 것이 싫어 눈을 동그랗게 뜨려 노력했던 나를 내버려 두었다. 나는 여행이 좋아 떠난다고 했지만 사실 여행보다 좋았던 것은  그 어느 곳에서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섬의 날들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아주 부드럽고 거칠지 않은 파도가 매일같이 일렁였다. 하늘은 매일이 푸르렀다. 우리는 그저 창 너머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바닷가를 걷고 그렇게 웃는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매일을 보냈다. 둘이 함께 여전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날들이었다. 서로의 팔을 부둥켜안고 길을 걷는 하루는 별 다를 것 없이 그것만으로도 꽉 찼다.





그중 며칠은 동네의 유일한 도서관으로 가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도서관에는 우리 둘처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노트북을 한 대씩 옆구리에 낀 젊은 배낭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서로를 힐긋힐긋 훔쳐보며 비슷한 연대의 눈빛을 보냈다. 일자리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며칠동안 머리를 쥐어짜던 어느 날, 그가 잠시 다녀오겠다며 길을 나섰는데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몇 시간이나 지나 화가 날때쯤 다시 돌아온 그는 스시라고 적힌 작은 도시락을 내밀었다. 섬에 도착한 후로 내내 쌀밥을 먹지 못해 구시렁 대던 것을 기억하고 섬의 작은 동네 유일한 아시안 음식집을 찾아 헤맨 것이었다. 어느 날은 주방을 훔쳐보지 못하게 놔두더니 마트에서 사 온 체리로 어설픈 케이크를 만들어 뿌듯한 표정을 하며 내밀었다. 웃는 다는 것은 사실 정말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별 것 아닌 작은 돌돌말이 김밥에 우울했던 기분이 훨씬 나아지고, 어설픈 체리케이크를 만들어낸 사람의 뿌듯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웃고.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며 불만을 토해내던 그는, 매번 나를 앉혀두고 미소 짓게 만들 일들은 만들곤 했다. 딱딱한 내 입꼬리가 얼마만큼이나 올라가는지를 매일 관찰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노력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욱 환하게, 더 크게 이를 내보내며 웃었다.






국립공원을 방문하기 위해 올라가던 작은 미니 버스 안, 한 노부부를 마주쳤다. 백발의 백인 할아버지와 새카만 검정 머리의 아시안 할머니였다. 그는 신이 나서 우리의 미래 모습일 거라며 내 옆에서 우리가 늙어갈 미래의 모습을 종알종알 떠들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함께 늙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영원한 사랑?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것? 나는 영원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것을 그에게도 종종 이야기했다. 아주 먼 미래의 일에는 관심 없는 나는 그 노부부의 조합에 대해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입꼬리를 관찰하며 신이 나서 떠드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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