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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JANE Aug 30. 2020

꽃처럼, 동거의 시작

<첫 동거>

호주에서의 세 번째 해가 시작되었다. 동네 불꽃축제답게 소박하고 화려하지 않은 불꽃들이 연속해서 터졌다. 새해를 맞아 함께 떠나기로 했다. 나의 두 번째 동거이자, 외국인과의 첫 동거였다.



 " 맛있는 거 사와!"  하고 전화를 끊으면 맛있는 것 대신에 항상 꽃이 들려져 있었다. 오늘은 이 꽃 내일은 다른 꽃. 방안의 화병에는 꽃이 시드는 날이 없었다. 워낙 시골에 살다 보니 길가에, 동네 숲에 들꽃들이 천지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꽃잎이 우스스 날린다. 떨어진 꽃 하나하나 주워 감상하는 일이 취미가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색들이 있었는지 몰랐던 것 같다. 그래도 어째 이 남자가 가져오는 꽃들은 좀 과하다 싶다. 그만 좀 해. 화장실 가는 휴지를 뽑으러 휴지를 돌아보면 휴지심에 하야 안 꽃이 꽃아 져 있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하기에는 부끄러웠지만, 예쁜 것을 자꾸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존재하게 만드는 행위에 대해 점점 궁금해졌다.


떨어진 꽃. 사온 꽃. 주운 꽃.


많은 방식으로 내가 원래 있던 곳에서는 상처를 많이 받아오지 않았나. 아름답건 아니건 존재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날이 더 많았다. 예쁜 것을 예쁘다고 한참이나 바라볼 수 있는 여유조차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비슷한 이유로 제자리를 떠나 멀리 떠나온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 한참 동안 생각해왔다. 나의 자리로 돌아갈 것, 돌아가지 않을 것. -나의 자리라는 게 있기는 한가?- 가끔 움직이고 있지 않은 나의 삶이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모두가 앞을 향해 쉼 없이 달리는데 스스로 쉼을 자청한 나의 삶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걸까? 방황하고 헤맸던 나이는 기껏 20대 중반이었다.



 “ 난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기도 해. 계속 여기에 머무르고 싶기도 하고." 




"한국을 떠나 이 먼 곳까지 홀로 날아온 너는 이미 멋진 일을 해낸 거야. 나는 네 인생이 자랑스러워. 그리고 너도 그래야 해. "


불안을 털어놓는 내게 그는 대답해주었다. 누군가가 나의 인생을 대신 자랑스러워해 준 것은 처음이었다. 문득 남에게 대신 자랑스러워진 나의 삶이 가엾다고 생각했다. 나를 쓰다듬고 싶어 졌다. 가만히 있어도, 삶은 그대로도 괜찮은 것이라고, 그가 나에게 가르쳐 주던 날이었다. 그 자리에 고요히 피어나 살랑살랑 잎을 흔들어 댈 뿐인 저 꽃들처럼.



꽃처럼,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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