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ONJANE Jun 12. 2020

I LOVE YOU, JE T'AIEM

<첫 여행>

엄마의 암투병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지난 연인과도 끝이 났다. 엄마의 암 소식과 함께  떠나갈 사람과 보낼 사람이 다시 공항에 서 있었다.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어쩔줄을 몰라 엉엉 소리 내어 울던 모습이 여전히 눈 앞에 아른거리는데. 여태 지나보낸 사람들 중 가장 지독하게 악질이었다. 나는 여전히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분했다.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게 가슴이 쓰라리게 아팠다. 매일 아침을 지긋지긋한 분노의 힘으로 겨우 눈을 떴다. 그러니까 이 몸은 더 이상 사랑 같은 건 안 믿는다. 이 말씀이야. 지난 2년간의 분노를 쉼 없이 토해내면서도 내가 그 와의 결혼을 상상했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프랑스 남자는 바보가 아니냐며 피식 웃었다.


발리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되었다. 지난 한 달은 여전히 절반의 진심과 절반의 호기심으로 채워졌다. 우리는 어설프게 맞춰가는 법들을 배웠다. 나는 낯선 언어로 다시 진심을 표현하는 일을 천천히 연습했다. 떠나간 것을 여전히 등 뒤에 두고 다시 비슷한 것들을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 어색 하기도 했다. 그러니 낯선언어는 나에게 꽤 좋은 도구였다. 말의 소리가 다르고 뜻이 다른 언어를 말할때는 나의 목소리도 달라졌다.  마치 말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생전 몰랐던 말을 내뱉는 연습을 하듯. 어느 날은 그 넘치는 말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에게 포근히 안겨 누워있던 어느 날의 침대위에서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저 나의 감정이 넘실넘실 흥분되어 와르르, 쏟아졌던 어느 날이었다. 술과 담배, 긴 방황이 전부였던 20대. 엄마의 암투병, 연인과의 이별. 지독했던 불안과 우울들. 그것들을 지나 다시 누군가를 믿어보고 싶은 의지를 갖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렇다 할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호주에서 맞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프랑스 남자는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신청했다. 퀸즐랜드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고급스러운 프렌치 레스토랑. 여태 입을 일 한번 없었던 블라우스를 꺼내고 굽이 높은 신발을 꺼내 신었다. 레스토랑의 모든 여자들이 반짝거리는 것들을 차고 있었다. 새빨갛고 긴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의 치맛자락이 바닥에 끌렸다. 나름 멋을 부린 우리가 우스워서 둘이서 눈치를 보며 킬킬거렸다. 메뉴도 기억나지 않는 프랑스 요리를 시켰더니 자꾸 와서 입맛에 맞냐고 묻는다. 직접 후추를 톡톡 뿌려주기까지 한다. 외국인 노동자 둘이 거하게 사치를 부렸다. 이 사치스러운 식사가 끝나고 다시 시골 동네의 농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해보라며  둘이서 연신 킬킬 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사치를 부린 후 한 끼 음식 값으로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음식값이 영수증에 적혔다. 내가 태어나 가장 비싼 값의 음식을 대접받은 날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남자는 작고 반짝거리는 선물과 함께 파란색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내밀었다. 그가 구글 번역기를 보면서 그림 그리듯 그려댔을, 한국어를 처음 적어본 날이자 그에게 받은 첫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  천재는 아니지만 악필.









매거진의 이전글 지도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