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통하는 한국친구들
적응 못하고 영어 한마디 하지 못한 채로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선생님은 나에게 버디(buddy)를 붙여주었다.
버디(buddy)란,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다.
반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학교를 구경시켜 주고, 쉬는 시간엔 어디에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점심시간엔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숙제가 있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숙제를 해야 하는지 범위를 알려주고,
준비물이 있으면 어떤 걸 챙겨 와야 하는지도 알려주는 친구를 Buddy라고 하는 걸 알게 되었다.
근데 문제는 버디(buddy)도 외국인이었다는 점.
그래도 그 친구 덕분에 영어가 조금은 편해졌다.
서툴지만, 입 밖으로 뭔가를 얘기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고,
그게 틀렸으면 다시 천천히 먼저 얘기해 주면서 나에게 문장을 알려주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쫙 빨아들이듯이, 외국인 친구와 함께 있으니 영어가 빨리 느는 것 같았다.
뭔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붙으면서 주눅 들어 위축되었던 마음이 당당함으로 바뀌었다.
쉬는 시간이 되었고, 나는 Buddy친구가 알려준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매점에서 소세지롤과 음료수 하나를 시키는데, 낯익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렇다, 바로 한국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소세지롤과 음료수를 들고 뒤돌아봤고, 그 친구들과 눈이 딱 마주쳐버린 나는, 반가웠다.
먹는 것도 까먹고, 쪼르르 달려가 "한국 사람이세요?" 물었다.
순간, 당황스러운 표정들이 얼핏 스친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반가운 만남이었다.
영어로 쫑알쫑알 얘기할 수 없으니, 한국말하는 사람들을 보니 쫑알쫑알 말문이 틔였다.
같은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금방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학교 생활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면, 한국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가 수다를 떨었다.
오늘 수업은 어쩌고 저쩌고, 저 친구가 나한테 이렇게 했다의 근황들이 오고 갔다.
엄마가 맛있게 싸준 도시락도 친구들과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수업시간 외엔, 영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졌고
나의 영어실력은 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국사람들하고만 놀기 시작했으니까.
친구들과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져 갔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은 마음에 엄마한테 졸랐다. Playdate 하고 싶다고.
엄마는 친구네 엄마와 얘기하고,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그 친구네 집은 궁전같이 넓고 큰 집이었다. 큰 창으로 저 멀리 바다가 다 보일 정도로 좋았다.
한국비디오를 빌려서 <가을동화> 보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반했다가 슬펐다가.
여느 여학생들처럼 조그만 거에도 그저 좋아 깔깔 웃으며 많은 추억들을 쌓아나갔다.
나는 친구들에게 편지 써주는 걸 좋아했기에,
만나기만 하면 서로 편지들을 주고받느라 영어공부는 늘 뒷전이었고,
편지로 모자라 메일까지 주고받으며 우리만의 이야기들을 펼쳐나갔다.
만나서 수다 떨다가, 친구네 집에 가서 놀다가 집에 가면 또 메일을 보내고,
자기 전에 편지를 쓰면서. 뭐가 그렇게 좋았던지 별의별 얘기들이 오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 가족은 서쪽에서 북쪽으로 아빠의 사업으로 인해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도 전학을 가게 되면서, 그렇게 친했던 친구들과도 작별인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 핸드폰도 없고, 집전화뿐이었던 관계로 연락 자주 하자며 약속을 했다.
이사를 하고 정신없이 살다 보니, 친구의 집 전화번호도 잃어버리고, 메일로만 주고받다가
각자의 삶에 적응하며 살아가느라 연락도 뜸해지고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결국, 시절인연이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고, 나도 점점 변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