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에서의 새로운 시작과 동시에 악몽으로 변해버린.
서쪽 Green Bay라는 동네에서 살다가, 북쪽 North Shore로 이사를 한 우리 가족.
아빠는 Second hand shop을 운영을 했다.
사람들이 버린 가구들이나 헐값으로 싸게 가구를 사 와서 되파는 가게였다.
뉴질랜드에서는 사람들이 거의 Second Hand shop에서 가구들을 사는 편이다.
워낙 비싸다 보니,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고 하는 것이다.
규모가 꽤 컸고, 장사는 잘 됐다.
아빠는 워낙 손재주가 좋으셔서 뚝딱뚝딱 새것처럼 잘 고치셨고,
나는 전학 간 학교에서 꽤 적응을 잘하며 무난하게, 무탈하게 살아갔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영어권 친구들이랑은 점점 더 멀어졌다.
서쪽에 있을 때보다, 북쪽에 한국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고,
그 친구들의 친구들까지 알게 되어 무리형성을 하면서 나의 영어는 점점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당시, 일본인들에게 친절했던 현지인들(키위라고 불린다.)
키위들 중 거의 대부분이 한국인들에 대한 인종차별도 심했고
자신들이 먹던 음식 쓰레기들을 던지며 시비도 많이 걸었다.
한 번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본인들이 먹다 버릴 사과라던가,
식빵 같은 것들을 우리 쪽으로 던지면서 비웃었다.
"너넨 대체 어느 나라에서 왔니? 한국? 그게 어디에 있는 건데?"
심지어 지나가는데, 입에 담고 있던 콜라나 물 같은걸,
우리 쪽으로 뿜는다거나 하는 건 늘 있는 일이었고,
결국 참다 참다 무리 중 한 친구가 우산으로 그 친구를 무자비하게 때렸다.
우리 중에서 그 친구가 총대를 멘 셈이었다.
결국, 인종차별한 키위와 우산을 휘두른 친구는 Dean선생님에게 불려 갔다.
Dean 선생님은 학년 책임자 같은 선생님이었다. (학년 부장선생님)
하루이틀 있던 일이 아니었던 터라, 선생님도 어떤 상황인진 알고 계셨을 텐데,
그냥 경고정도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시안은 아시안들끼리, 키위는 키위들끼리 붙어 다닐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키위들과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었다.
영어 못한다며 무시하고 놀리고, 비웃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들과
누가 친하게 지낼 수 있단 말인가!
중국인이나, 일본인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그들도 유학생인지라 영어를 하긴 하지만
유창하지 않은 정도니 고만고만한 실력을 갖은 애들끼리 어울려 다니면서 놀았다.
언어는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현지에 오래 산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당시엔 왜 몰랐을까? 그냥 되는대로 하루하루 살았던 시절이었다.
이민을 왔으니까, 어차피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아야 하니까,
영어는 계속 뒷전이 되었고 그저 하루하루 재미를 따라 살았던 것이다.
수업시간만 되면, 공책을 꺼내 공부하는 척을 하면서 나는, 소설을 썼다.
선생님한테 몇 번 걸려 혼나긴 했지만, 스릴도 있었고 시간 때우기용으로 딱이었다.
그저, 캐릭터를 만들어서 상황을 만들어 상상을 하다 보면
글감이 마구 떠올라 안 쓰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내가 쓴 소설들은 친구들에게 꽤 인기가 많아졌고,
반응이 좋으니 계속해서 쓰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 재능 있는 것 같은데, 소설을 본격적으로 써서 책으로 출간하는 건 어때?
잘할 것 같아. 재밌어."
그 한마디가 시작점이었다.
내가 평생을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게 만드는 그 한 마디에
나는, 영어를 그냥 놓아버리게 된 것이다.
원래부터, 뭔가 상상해서 글로 풀어써내려가는 걸 좋아했던 나였지만, 그냥 그것뿐이었다.
작가가 되겠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저 막연한 꿈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을 이어가던 중, 정말 충격적인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수업 중에, 키위 선생님이 나에게 소리치면서 자기 반에서 나가라고,
그리고 두 번 다시 들어오지 말라는 소리였다.
그 이유인즉, 영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아시안이라는 이유였다.
인종차별이 워낙 심했던 선생님한테 하필, 내가 걸려버린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영어 공포증이 생겨 버렸다.
(뉴질랜드에서는 거의 주제를 하나 주면, 토론식으로 이어가다가 앞에 나가서
그 주제에 관한 발표를 하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는데, 한 명씩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영어 발음도 안 좋고, 버벅 거리면서 발표를 하는데 식은땀이 나고 어지러웠다.
극한 스트레스로 인해 헛구역질이 나왔고,
입을 틀어막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선생님이 소리친 상황이었다.)
나는 울면서 반에서 나왔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카페테리아에 가서 혼자 글을 쓰면서 펑펑 울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고, 친구들이 나에게 와서 위로해 줬지만, 학교가 너무 무섭고 싫어졌다.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이겨낼 수 있는 단단함이라곤 눈곱에 떼만큼도 없었던 나에게
하루하루가 가혹하게 느껴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