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작, 그리고 텃세까지!
뉴질랜드에선 도저히 나의 진로를 정하기엔 깜깜했다.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그저 그렇게 아무곳에나 취직해서 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은 나의 완강함에 두손 두발을 드셨고,
때마침 아빠도 한국에 취직하셔서 한국에 가게 되셨다.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가게 되었고, 아빠는 지방에, 엄마와 나는 서울에 집을 구해 살아야 했다.
처음, 3개월은 보고싶었던 친구들도 만나고 취직자리를 여기저기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에만 나오면 일사천리로 될 줄 알았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 정도로
취직하는 게 만만치가 않은 일이었다.
일단 이력서를 열심히 써서 여기저기 넣어봤지만, 인터뷰 보잔 연락조차도 오질 않았다.
이제 슬슬, 일은 시작해야겠는데 도무지 연락이 오질 않으니 가슴 졸이며 불안해하는 나에게
아빠의 권유로 호텔 뷔페에서 일하게 되었다.
아빠가 호텔에서 전기기술자로 오랜 시간 일했던 분이셔서,
아빠의 후배에게 부탁을 하셨던 모양이었다.
인터뷰는 형식상이었고, 나는 아빠 덕분에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처음엔, 호텔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텃세가 좀 심했다.
낙하산으로 들어왔다느니, 일하면 얼마나 일하겠어?
일주일 안에 나간다, 혹은 한달만에 나간다 하면서 수군대는데, 처음엔 기죽고 속상했다.
다른 동료들은 무거운 접시를 척척 잘도 쌓아서 주방으로 가져가는데, 나는 팔힘이 워낙 없었고,
그릇들도 꽤 무거웠던지라 혹시나 깨트릴까 해서 2~3개씩밖에 나르질 못했기에 더 눈치가 보였다.
아예 대놓고, 나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비웃는 동료들에게 뭔가 보여주기라도 해야겠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묵묵하게 내 할 일들을 하면서 버티는 게 전부였다.
나름, 식당에서 알바한 경력이 있는데, 호텔 뷔페는 뭔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일이 끝난 후, 새로운 직원도 왔으니 회식을 하러 가자는 말에 나도 따라나섰다.
회식자리에서 술도 들어가고, 음식도 먹으며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인데,
나만 뭔가 왕따같은 느낌이 든건 어쩔수가 없었다.
나와 같은 또래거나 아니면 어린 동료들이었지만,
일들은 똑부러지게 잘해서 내가 배워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밉보여서 좋을 건 없다는 생각에 버티고 있었지만,
듣기 힘들정도로 나를 조롱하고 비웃는 말들을 내뱉었다.
"뉴질랜드에서 왔으면, 영어 잘하겠네? 그럼 영어 사용하는 곳으로 가지, 왜 호텔 뷔페에 왔어요?"
"그 좋은 뉴질랜드에서 뭐하러 한국까지 와서 고생하며 일해요? 뉴질랜드에서 그냥 일하지."
"우리가 내기 했는데, 일주일 안으로 못 버티고 나간다에 전 손 들었거든요?"
"아니야, 난 한달이야."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깔깔깔 웃어대는 게 아닌가!
너무 황당하고 그냥 속이 상해버렸던 나는
그대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안에서 펑펑 울면서 내가 그들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기에 또 억울한 마음까지 들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해서 엄마 앞에서 펑펑 울면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나 못 다니겠어. 그만 둘래."
"지금 이런 것도 못 버티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래?
네가 더 독하게 이 악물고 버티는 모습을 보여줘야, 그 사람들도 널 인정하지.
이것도 못 버틸거면 다시 뉴질랜드 돌아가."
엄마는 단호했고,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나는, 다짐했다.
그래, 못 먹어도 고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버텨보자!
이 마음으로, 다음날도 난 출근을 했고 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회식자리를 빠져나간 나에 대해서 다음날에 돌아오지 않을거라며
또 동료들끼리 내기라도 한 듯한 모양이었다.
내가 출근을 하니, 그들은 꽤 당황한 눈치였다.
그때부터였을까? 슬슬, 나에게 말도 걸어주고, 장난도 쳐주고 좀 달라진 동료들이었다.
엄마 말이 맞았던 거다.
그날 난 출근을 하지 않았으면 계속 조롱거리로 남았을텐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일은 못하더라도 조금씩 나아질거란 생각에,
일단 버티고보자 하니 버텨지게 되었다.
그릇을 들고 가는 노하우도 점점 알게 되면서,
처음에 2~3개 들던 그릇들을 6~7개씩 들 수 있게 되었고,
노력한만큼의 보상도 함께 뒤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호텔 뷔페에서 거진 6개월이 넘게 일했다.
동료들과는 이미 너무 친해질대로 친해져서 서로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