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의 숙명일지도-

작가가 될 운명이었을지도-

by 코리안키위 제인

어렸을 때,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할머니와 나는 한 방을 썼고, 작은 TV가 있었다.

할머니는 항상 늦게까지 드라마를 보시곤 했는데,

나도 옆에서 똘망똘망 드라마를 보면서 잠들곤 했다.


아빠와 엄마는 늦게까지 드라마를 보시는 할머니가 못마땅해하셨지만, 나는 좋았다.

귀가 잘 안 들리는 할머니는 소리를 높이셨고, 늘 큰 소리가 집 안 가득 울리곤 했었다.

그래서였을까? 할머니와 대화할 땐, 나도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얘기를 하면 귀청이 나가떨어질 것 같다고 엄마는 목소리 좀 낮추라 하셨고,

나는 내 목소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던 어린 시절-

드라마는 내 친구이기도 했고, 재미있는 놀이기도 했었다.

어른들이 보는 드라마여서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지만, 늘 드라마와 함께였다.


애착이불, 애착인형 그런 건 나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나의 애착은 할머니였으니까. 할머니는 항상 성경책을 읽으셨다.

엄마아빠의 사랑보다는, 할머니의 사랑을 더 듬뿍 받고 자란 어린 시절의 난,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고구마며, 옥수수며 늘 먹을 것들이 잔뜩 있던 집이 좋았다.

할머니는 간식들을 준비해 놓으시고, 내가 먹기 편하게 옥수수 알맹이들을 그릇에 놓아주곤 하셨다.

숟가락으로 퍼먹으면서 종알종알 오늘 하루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할머니에게 털어놓으면,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셔서 뭐? 다시 한번 물으셨지만.

그냥 할머니한테 내 모든 일들을 털어놓는 게 좋았다.


나의 말에 경청해 주고, 늘 언제나 내 편이었던 우리 할머니.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은, 맛있었고, 따뜻했다.

외롭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건, 할머니와 함께였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을까?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다시 할머니를 뵈었을 땐, 예전의 할머니가 아니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고, 속상했다. 나는 이렇게 컸는데, 할머니는 너무 쇠약해져 있으셨다.

더는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을 수 없는 것도,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드라마를 볼 수도 없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할머니를 자주 찾아뵐 수 없어서 더 죄송스러웠다.

일이 끝나고 동료들과 함께 술 한잔 마시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띵,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했다.


장례식장에서 아빠보다, 고모들보다 다른 사촌언니오빠들보다 내가 더 많이 울었을 정도로

할머니는 나에게 너무나 각별하고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할머니가 이제 더는 내 곁에 없다는 사실에 슬프고 외로웠다. 사무치게-

믹스커피를 좋아하셔서, 늘 식후엔 커피 한잔씩 타드시던 할머니.

그 옆에서 한입 얻어먹으려고 꼭 붙어 앉아있던 내가 눈에 아른거렸다.

집에 오면, 햇살이 비추는 베란다에 앉아 성경책을 읽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렸고,

식탁 위엔 늘 맛있고 건강한 간식들이 상다리가 휘어지게 놓여 있던 게 아른거렸다.

할머니와 함께였기에 추억이 많았는데,

그 추억들을 이제는 기억 속에만 간직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할머니 살아계실 때 더 많이 찾아뵐 걸 후회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래서였을까? 할머니가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셨기에, 내가 드라마 작가를 꿈꾸게 된 걸까?

어린 나이였지만, 드라마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구나, 알아서였을까?

할머니와 함께 본 드라마, 그 기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서였을까?

나는, 드라마가 너무 좋다. 너무 재미있고, 좋은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할머니와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나는 드라마 작가로 살다왔노라고 할머니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고 싶다.

할머니 덕분에, 내가 드라마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할 거라고.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꼭 할머니 손녀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너무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