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필요해-

미운오리새끼.

by 코리안키위 제인

어려서부터 미운오리새끼라도 된 양, 나는 미움을 독차지하며 살았더랬다.

내 눈엔, 엄마는 오빠만 예뻐하는 것 같아 보였다.

엄마가 화장하고 예쁘게 꾸미는 걸 보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쁘고 멋져 보였다.

그런 엄마의 관심을 오빠에게 다 빼앗긴 것 같아 속상했다.

엄마의 관심은 둘째인 나보다, 첫째인 오빠에게 더 많이 향했다.

분명, 엄마는 남아선호사상임이 분명하다.




엄마는 늘 나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네가 태어났을 때, 00 이가 질투가 났는지,

널 꼬집고 때리고 그랬는데, 그래도 동생이라고 잘 챙겼어.

어디 나갈 때, 너 옷부터 해서 본인이 싹 코디해서는 부끄럽지 않게 데리고 나가고 그랬다고.

너랑 다르게, 00 이는 옷도 잘 입고, 꾸미는 걸 좋아했거든.

넌 맨날 뚱해서는. 치마 입히면, 울고불고 난리 나고, 하여튼 별종이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질투가 났는데, 꼬집고 때렸다고?

그걸 엄마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고?

어디 같이 나가더라도, 내가 동생인 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본인이 원하는 옷을 입혀서 데리고 나갔다고?

그럼 내 의지는? 나를 향한 존중은 하나도 없었단 말인가?

치마 입기 싫을 수도 있지, 그게 뭐가 별종이란 말인가!


사실, 이런 생각은 할 수조차도 없었다. 내가 나의 의견을 얘기하기라도 한다면,

내 말을 묵살이라도 하듯, 쓰읍- 하며 방울뱀 소리를 내고,

중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어른들 얘기하는데 끼어들기라도 하면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다.

그리곤, 눈을 부릅뜨고 무섭게 날 노려보던 엄마였다.

내가 뭘 하고자 할 땐, 습관처럼 입에서 나오는 말. "안 돼!"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딱 잘라 단호하게 하던 엄마의 말들이

나를 늘 외롭게 했고, 사무치게 만들었다.


그에 반해, 오빠가 뭘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오케이를 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분명, 나의 친엄마는 아닐 거야. 계모야, 계모!"

이렇게 생각이 들 정도로 엄마가 밉고 싫었다.

내가 불만을 얘기하노라면, 엄마의 입에선,

"남자잖아. 남자는 무엇이든 경험해 봐야, 단단하게 잘 사는 법이야. 기죽이면 안 돼."


그럼, 난 엄마의 딸인데 오빠는 기죽이면 안 되고, 난 기죽고 살아도 되는 것인가?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그렇게 나는 마음속에 불평이 쌓여만 갔고, 분노로 변하기 시작했다.




난 그저 사랑받고 싶고, 관심이 필요했던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나?

그래서 난 친구들에게 늘 얘기하고 다녔다. 우리 엄만 계모라고.

오빠만 예뻐하고, 난 미운오리새끼라고.


나중에 좀 더 커서 들은 얘기였다. 내가 어려서부터 별났던 건 맞았다.

내 기억에도 없는 내가 했던 행동들에 대해서-


나는, 누군가를 데리고 다니길 좋아했다고 한다.

뭔가 대장처럼 나서서 주도하길 좋아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주동자가 되어 4살인가, 5살 때쯤 동네 아파트 애들을 우르르 데리고

위험하게 신호등에서 길을 건넜다고 했다. 아파트 전체가 발칵 뒤집어진 일이었다.

그 이후로, 모든 엄마들에게 난 위험대상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 사고를 또 칠까 봐, 엄마는 나에게 유독 엄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죽을뻔한 고비가 있었다고 했다.

완전 아기였을 때, 기어 다니기 시작할 때였는데,

분유를 타고 나를 안자마자 애가 얼굴이 시꺼메져서는 숨을 못 쉬었다고 했다.

알고 보니, 50원짜리 동전을 삼켜 목에 걸린 것이었다.

엄마는 애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뛰는 사이에 내가 죽을까 봐

냅다 내 입을 벌려 손가락을 집어넣어 동전을 뺐다고 했다.

애 입이 찢어지든 말든, 그런 건 신경이 하나도 쓰이지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로, 죽을 뻔했던 고비가 있었는데, 애가 열이 펄펄 나는데,

해열제를 먹여도 그대로고, 열 내리려고 별 짓을 다 해봤음에도 열이 내리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외할머니한테 전화해 울면서 말했다고 한다.

애가 열이 안 떨어지는데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할머니가 홍역 아니냐면서 대처법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알려준 대로 했더니, 정말 내 온몸에 열꽃이 피었다고 했다. 심지어 흰자까지도.

그렇게 죽을뻔한 고비를 두 번이나 엄마는 나를 살렸다고 했다.


내 기억엔 서운하고 사무친 기억밖엔 없었는데,

사고뭉치인 나에게 엄마는 엄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이제야,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자신이 겪은 아픈 기억만 오래 기억하지,

좋았던 기억은 금방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앞으로는 좋은 기억만 오래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