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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한별 Jun 11. 2019

현대인의 마음의 병   


대구 촌년의 상경 이야기1.

현대인의 마음의 병에 관해


강사로 활동하는 나는 사실 교수라는 꿈을 갖고 대학원을 갔지만 석사 졸업 후 그야말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박사과정을 가자니 미국이나 일본 쯤은 다녀와야 할 것 같았고, 다니던 대구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자니 과연 4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인가란 고민에 빠졌다. 부모님께 부담을 줄 것이 뻔하고 부모님께 손벌리지 않으면 내가 직접 돈도 벌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했다. 무서웠다. 완벽주의에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 탓에 석사 과정도 쉽지 않았다. 몸무게가 39키로를 찍었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그런 과정을 또 4년간 해야 하는데 더불어 돈까지 벌어야 한다니.. 결국 현실의 벽을 핑계로 사회에 나가기로 했다. 


박사과정을 포기하고 나온 세상은 넘어야 할 산이 높기만 했고 험하기만 했다. 교수라는 꿈에서 조금 길을 바꿔 강사를 직업을 선택했다. 사내 강사가 아닌 프리랜서를 선택했다. 김미경 강사님 처럼 유명해지고 싶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언젠가는 꼭 그리 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이름없는 프리랜서에게 강사의 세계는 혹독하고 차갑고 매서웠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점점 자신감도 잃어갔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날 당시의 남자친구와 강원도 속초 바닷가를 갔다. 나는 원래 물을 좋아하고 놀이기구도 잘 타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속초 바닷가에 도착해 바닷가에 가까이 가질 못했다. 파도 한점 없이 잔잔한 바닷물이 마치 나를 덮쳐 올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당시에는 나도 남자친구도 내가 좀 '별나다'라고만 생각했다. 


그 이후 다양한 증상들을 경험했다. 놀이기구는 당연히 탈수가 없었고, 간혹 집이 무너질까 걱정되고, 도로를 달리던 차가 나를 덮칠까 염려 됐고, 지하철이 무너질까 두려웠다. 자주 빈번하게 내 일상에 엄청난 영향을 줄 만큼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기에 여전히 나는 내가 참 별난 사람으로 정의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지인에게 우스갯소리로 증상들을 이야기 했더니 병원을 가보라고 추천을 해주셨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이런 증상들이 내가 좀 별난 탓이 아니라 마음의 병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나의 증상들에 대해 털어놨다. 의사 선생님은 대단히 심각하게 말씀하지 않으셨고 마치 매일 티켓팅 하는 매표원 같은 반응이었다. 그래서 나 또한 쉽게 생각하고 병원을 더이상 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버티고 버티던 어느날이었다. 개인 사업을 시작하면서 여러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면서 증상들이 조금씩 진화하고 악화됐다. 어느 날은 숨도 못쉴 만큼 괴롭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한없이 우울감에 빠져 사람들의 눈을 쳐다보는 것 조차 힘들었다. 


시간은 절대 약이 되지 않았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복합적인 고통들이 나를 짓눌렀다. 가장 큰 고통은 우울하고 힘들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웃고 떠들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마일 증후군을 몸소 체험했다. 그냥 내 나름의 민간요법(?)으로 이겨내려 노력했다. 마인드 컨트롤도 해보고, 앵커링을 의식적으로 해보기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하면서 치유하려 노력했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듯 했지만 일시적이었다. 어떤 또 다른 역경이 찾아오면 다시 증상들이 폭발하곤 했다. 결국 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지경이 됐다. 자꾸만 삶의 의미를 의심했다. 나는 왜 태어났으며 나는 도대체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스스로 의심했다. 자존감은 세상 저 끝까지 추락했다. 어느날은 늦은 밤에도 썬글래스를 쓰고 나가곤 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이 싫어 내눈을 가려 버리는 것이다. 지하철 보다는 버스를 이용해야 마음이 덜 힘들었고 사람이 많은 곳 보다는 후미진 곳으로 다녔다. 하루 하루 그냥 시간에 기대어 버티는 중이었다. 


아직도 나는 나와의 싸움 중이다. 자존감을 끌어올리고 자기 효능감을 높여 의기소침하지 않게 노력하고 있고, 우울감을 잊기 위해 댄스학원도 다니고 스포츠 경기를 보러 다닌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증상이 심해진 시점부터 손을 놓게 된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루의 일을 되돌아보고 감사하기도 하며 반성하기도 하며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나라는 사람을 타인들을 그저 밝고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으로 인식하지만 사실 나는 보여지는 나와 내안의 나 사이에서 딜레마를 경험했다. 마음의 병을 숨기고 꺼내지 않으려 애쓴 것이 오히려 내 마음의 병을 키운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이제 내 마음의 병을 인정하고 그것을 조금씩 꺼내서 들여다 보고 쓰다듬고 닦아주며 빛을 비춰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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