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테랑은 1,341만 명에 이르는 관객몰이를 했을 정도로 대중에게서 상당한 반응을 이끌어 냈었다. 숨겨진 악과 싸우는 언더독의 이야기를 통해 값진 결과로 이어진 콘텐츠의 승리였다.
그렇기에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기대는 항상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는 대중의 면모가 있는 그대로 드러난 것이기도 했다.
전작에 대한 기대감은 "전작보다 나은 작품이 없다"는 말을 부메랑처럼 몰고 다니는 악동과도 같다. 아쉽게 배테랑2도 이러한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유로는 단순히 재미가 없는 줄거리 탓을 할 수는 없다. 만일 영화가 하나의 종합예술 분야로 우뚝 서야만 하고, 그리고 예술은 인간이 처한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구가 정당하다면, 배테랑2의 흥행실패를 단지 대중성이 떨어진 작품성에 찾게 된다면 이는 참된 이해가 아닐 것이다.
물론 전작에 비해 스토리가 주는 몰입감은 부족함에 틀림없다. 재벌이라는 골리앗의 도덕적 부패와 맞서 싸우는 다윗이라는 구도와 같은 구조의 부재를 첫 번째 문제로 꼽을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찬란한 광채로 이뤄진 라틴문화에 더 가깝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각적으로 호기심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대중의 환심을 사지 못하고 만다.
대신에 배테랑2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대결로 그 무대가 급격히 축소되었다. 그래서 아무리 권선징악이라고 해도 쾌감이 줄어들었다.
더군다나 더 큰 문제가 있다. 영화가 품고 있는 문제의식에 대중이 호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점이 가장 큰 실패의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꺼내든 문제의식은 상당히 중요한 얘기를 담고 있다. 지금처럼 정국이 시끄러울 때일수록 그 문제의식은 그것을 직감한 사람들에게 침묵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선 이 영화가 전작과 대비해서 흥행에 성공하기 힘들었던 이유에 대해서 의견을 나눠보고 싶다. 왜 선악의 대립구조가 개인과 개인의 대결로 축소되었다고 해서 예전만큼의 흥미를 유발하지 못하는 걸까?
보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가난의 원인을 나태와 게으름으로 보곤 한다. 반대로 막대한 부를 쌓는 것은 성실과 정직 등 온갖 미덕으로 포장하곤 한다.
다시 말해 재벌과 같은 인간들에게 국민 대다수는 암묵적으로 미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대통령과 같은 고위직 공무원이나 재벌 총수는 미덕의 맹아이자 결실로 여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대중이 가진 상류층에 대한 도덕적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그는 사회에서 매장당하고 척결 대상의 1순위로 등극하게 된다.
전작에서는 이러한 대중의 들끓는 분노를 아주 정확하게 포착하고 수면 위로 이끌어냈었다. 이것이 바로 배테랑 원작의 가장 큰 성공요인이었다.
그러나 후속작에서는 이러한 다윗과 골리앗의 갈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 더해 대중은 악인을 풀어준 공권력에 대해 더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반대로 대중은 공권력이 놓아버린 악인을 철저하게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에 대해 더욱 온건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감독도 이러한 대중심리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서 감독은 결말부를 매우 이상하게 비틀어버렸다. 선의의 피해자를 등장시킴으로써 대중에게 정의의 사도로 추앙받는 캐릭터를 악인의 이미지로 덮어버렸다.
이 지점에서 살짝 아연실색하는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대중성을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스토리가 재미없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재미가 없던 것이 아니라 감독의 연출 의도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적당히 타협한 결과가 전작의 후광효과만 본 실패작으로 남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감독이 제기한 문제의식 중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 숨겨져 있다.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대중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이후 점진적으로 곪아가기 시작한 사회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대중의 반역이라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한숨 돌리고 다음 글에서 이어나가기로 해야겠다.
밤이 깊었다. 한파주의보가 내린 밤길에는 날카로운 바람이 귓볼을 스치고 지나면서 무서운 소리를 내며 웅크리고 있다.
매서운 겨울밤을 길 위에서 견뎌야 하는 사람들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