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파묘

영화평론

by 이각형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한국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국영화의 특징이 신파극에 그치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으로 시간을 소비한다. 의미 있는 삶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신파극은 그저 감정에 치우친다. 이런 신파극을 통해 한민족의 한 문화가 표출되곤 한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의미를 숨겨놓고 모른 척하는 작품이 한국영화에서도 보이곤 한다. 그것은 연출자인 감독의 숨은 뜻을 발견해 줄 관람객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며, 관람객 입장에서는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감독에게서 받은 선물이다.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예술을 관람하는 방법 중에 가장 심도 깊은 것은 회화작품을 보고 있을 때 화가의 시선과 눈을 맞추려 노력할 때 일어나는 내적인 동요다.

다시 말해 그림을 보는 것은 화가의 시선과 마주칠 때라는 의미이다. 그림을 보고 있는데 그림의 맞은편에서 붓을 들고 있는 화가와 시선이 마주칠 때 비로소 그림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눈으로 그림을 보고 있는 것만큼 그 그림을 마음껏 감상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

이런 의미를 먼저 알려준 이가 마르셀 프루스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런 말을 남겼다.

문체란 화가의 색채와 마찬가지로 기술이 아니라 예술가의 시선을 반영한다.

문체는 영어로 stlye이다. 스타일, 패션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스타일은 시선이고 관점이자 세계관이다.

그런데 문제는 화가와 시선을 마주칠 때 화가는 기분이 상한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독창적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예술의 비밀은 바로 창의성에 숨어 있다. 창의적이지 않은 작품이 칭송받은 적이 있던가?

영화 파묘를 연출한 감독이 수줍어하며 영상 속에 숨겨둔 의미가 바로 자신만의 독창성에 있다. 영화 파묘는 무엇이 독창적인가?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얘기는 수없이 들어왔다.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의 우수성을 시기한 나머지 한반도의 정기를 끊어놓기 위해서 쇠말뚝을 박아 놓았다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다.

반면에 영화에서는 쇠말뚝이 아니라 일본 열도를 호령했던 에도 시대의 한 쇼군으로 한반도의 정기를 누그러뜨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 맞다. 쇠말뚝 대신에 죽음의 전령사의 영혼을 박아 놓았다.

강한 정신을 이기는 것은 그보다 더 강한 정신뿐이다. 그러니 쇼군의 기상으로 한반도의 숨통을 끊어 놓을 심산이었으리라.

그러나 조선인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저항한 것은 마찬가지로 정신이었다.

그래서 영화 파묘에서 일본 쇼군의 기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기대었다. 영화 후반부에 여러 종교인들이 저마다의 예복을 입고 근심에 찬 표정을 지으며 나타난다.

천주교와 기독교 그리고 불교가 대표했다. 마치 구원병처럼 불쑥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수심에 빠져 있을 뿐 쇼군을 극복할 방법은 아무도 제시하지 않았다. 고개를 떨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사태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았다. 자신감이 없는 모습으로 화면을 채우기만 했다.

이 장면과 대조되는 일이 곧이어 벌어진다. 음양오행설의 한반도의 정신이 쇼군을 물리친다.


그전에 극적인 효과를 자아내기 위해서 감독은 현실을 비틀었다. 바로 영혼이 물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설정을 해놓았다.


왜냐하면 물리적인 실체가 없다고 간주되는 영혼이 구천을 떠돌다가 골육의 인간에게 해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영향력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면 한반도의 문화가 귀신을 이겨낸다는 반전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텔방의 창문을 열어젖히기 위해서 귀신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 수 있다는 설정은 필수적이었다.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키려면 언제나 이런 식으로 다소 인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설정이 필요하다.

그 뒤에 음양오행설을 믿는 이가 혼자서 오로지 쇼군의 기상을 상대한다.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과도 같다.

그렇데 영화 파묘에서는 자주와 독립을 외치고 있다. 외세의 침략 앞에서 오천 년 간 한반도를 지켜낸 것이 바로 우리만의 정신이자 이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우리가 연출의 의도를 알아차렸더라도 조용히 감상해야만 한다. 그게 바로 연출자의 뜻이자 바람이었다.


한민족의 우수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라는 뜻이 바로 파묘라는 영화이다.


일제의 한반도 침탈을 극복한 21세기의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감독의 의도에 박수를 보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슬의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