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집안에 갇혀 지내야 했을 때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시간을 잊게 만들었던 오징어게임이 어느덧 시즌3 발표를 앞두고 있다. 작년에 시즌 2를 보고 난 뒤 나는 딱 2개의 단어로 시리즈를 요약했었다.
두 개의 단어로 간단히 비평을 남기고자 했었으나 뭔가 섣부른 마무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했었다. 비평, 아니 내 의견을 발표하기 위해서라면 적어도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스스로 의구심이 없어야만 했다.
그렇게 의구심을 떨쳐내기 위해 시간을 기다렸고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가버려 1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더욱이 다음 작품의 발표가 2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이르러서야 갈무리가 가능해졌다.
내 나름대로는 다음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속을 비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떨쳐내지 못했던 의구심의 끝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즌 2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시즌 2의 첫 화에서 역시 첫눈에 들어온 건 색깔이었다. 그것도 일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현란한 색깔이었다.
시즌 1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오징어게임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건 자본주의다.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물속에 있는 줄 모르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는 우리들도 별도로 시간을 내지 않는 이상 자본주의라는 지배관념에 관해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
그런데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매순간 버겁다. 출근하려고 아침 일찍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점심시간이 끝나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는 때와 저녁이 되어 집을 향해 발걸음을 뗄 때조차도 우리네 인생은 버겁다.
그토록 힘들다면 우리는 어느 순간 달리고 있던 발걸음을 멈춰 세운 채 세계를 향해 이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이렇게 힘든 게 고작 인생이란 말인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이 그토록 고달픈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말인가?
이러한 사실을 일찍이 깨달았던 칼 마르크스는 후대를 위해 이러한 말을 남기고 떠났다.
"어느 시대든 지배관념은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이념 아래 살아가고 있다면, 그 이념은 다름 아니라 지배관념이다. 모든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관념은 반드시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상관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우리는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어떤 하나의 관념이 말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관념의 중요한 본질이 있다. 관념이란 실제적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아닌 가상의 무엇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생각이 있다는 뜻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것은 바로 돈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결단코 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돈을 어떻게 나눠 갖는지에 관한 것이다.
바로 분배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 인류의 역사는 항상 지배계층을 향해 투쟁해 왔고 대립을 이어왔다.
멀게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있었으며 - 비록 공산주의는 실패로 끝났지만 - 가깝게는 신자유주의와 반 세계주의가 있었다. 또 현재는 보호무역과 자유무역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을 일컫는 지루한 표어, 정치권에서 주로 꺼내드는 말이자 신문사에서 자신들이 불리해질 때마다 논쟁에 불을 지피는 데 이용하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색깔론이다.
20세기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전 세계인들이 혐오하는 색은 단연코 빨간색이다. 공산당이 빨간색 깃발을 게양하기 시작한 뒤로 인민을 구원한다는 명목하에 살육을 일삼았던 그들의 만행을 향해 전 세계인은 빨갱이라는 말로 공산당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한 혐오감은 정치권에서 항상 자신의 편으로 돌아서게 만드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대중 결집력의 가장 큰 동력이었다. 더군다나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는 팍팍한 시대가 도래할 때마다 고루한 정신을 가진 정치인들은 필연적으로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가게 만들겠다면서 보수세력의 지배를 정당화하곤 했었다.
그리고 분배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볼 때 보수는 골고루 나눠 갖는 것이 아니라 부의 편향성이 대표적인 색깔이었다. 반면에 인구의 90%가 먹고살기 힘들어져서 더 이상 물러설 때가 없어지게 되면 이러한 절대다수의 동력을 등에 업은 정치인들이 무대 위로 등장하면서 고른 분배를 강조하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을 선동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선택한 가장 쉬운 방법은 깃발의 색깔이었다. 다만 그 색깔은 정치인들의 진정한 목적이 국민들 눈에 보이지 않도록 표면의 뒤편인 이면에 숨길 수 있는 색깔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과거로 퇴보하고자 하는 나약한 보수는 강렬한 색깔인 빨간색을, 기약 없는 미래로 향하고자 하는 탐욕의 진보세력은 청렴을 상징하는 푸른색을 선택하곤 했다. 이러한 이면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면 평소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았더라도 시대적으로 아주 중요한 국면에 국운이 걸려 있는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자본주의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을 주제로 한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필연적으로 색깔론을 꺼내들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징어게임이라는 드라마는 영상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의도에서 현란한 색상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분홍색 옷을 입고 총을 들고 있는 사람, 형형 색깔의 게임 배경은 그러한 의도에서 계획적으로 의도된 무대장치이다.
그저 이 드라마에서 붉은 피가 튀고 낭자될 때의 잔혹함을 상쇄하기 위해 분홍색과 다른 총 천역색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즌 2에서 연출가는 그러한 작품의 의도, 색깔론에 불을 지피고자 했던 그 의도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천명한다.
그래서 시즌 2 첫 화의 첫 장면에서 연출자는 핑크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보여준다. 그것도 바로 전 세계로 통하는 길목인 공항에서.
그래서 이 드라마는 단지 오락이 아니다. 혈흔이 얼굴 위로 튀는 잔인함에 말초적 쾌감을 느끼는 시청자에게는 안될 말이겠지만 실상은 그랬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