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시즌 2: 구조와 질서

by 이각형


작은 벽돌을 높게 쌓아 건물을 지을 때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많은 벽돌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구조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반드시 일정한 질서 아래에 놓이게 된다.




인간 사회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시대는 그 시대의 구조를 이루는 근간이었던 질서가 있었다.




이러한 인간 사회는 건물을 올릴 때 아래에 쌓인 벽돌 위에 올릴 벽돌을 어떤 방법과 순서로 할 것인지 고안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배계층은 자신의 위치를 영원히 구축하기 위해 피지배계층을 설복시킬 질서를 구축해 왔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려면 그 생각 또한 반드시 구조적인 동시에 일정한 질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오징어게임에서도 무대 아래에 숨겨져 있었다.




시즌 1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의식적으로 미괄식 구조를 선택했다. 작가의 심오한 세계관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의 작품에게 향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의 전략은 적중했다. 사람들은 오징어게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어 오징어게임의 후속 편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한 작가가 후속 편을 쓰게 된다면 충분한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오징어게임 시즌2는 필연적으로 두괄식 구조를 선택하게 된다. 왜냐하면 훌륭한 원작의 후속편들은 대부분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너무 신경 쓴 나머지 실패작이 되곤 했다.




그래서 원작보다 나은 후속은 없다는 말이 영화 분야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후속작품이 원작처럼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청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한다.




원작의 성공요인이었던 작가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대중은 심오한 사상이나 이념은 질색한다.




따라서 너무 심오해서도 안 되고 너무 가벼워서도 안 된다. 적정선을 지키기 위해 오징어게임 시즌 2는 전략적으로 두괄식 구조를 택하고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오징어게임 시즌2의 첫 화는 시즌 전체를 이끌어 나가는 하나의 범주를 암시하는 의미 있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중에서 가장 강렬한 의미를 내포한 장면을 파헤쳐 보자.




첫 화의 소재는 러시안룰렛이었다. 러시안룰렛이 두 번씩이나 나왔던 만큼 소재가 러시안룰렛이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눈치가 빠른 시청자라면 이 정도는 감안하고 팔짱을 낀 채 전체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필요한 어떤 장치를 찾으려고 눈을 부릅 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대적 장치 사이에 두 인물이 대립할 때 극적인 효과를 자아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이다. 이러한 대립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작가가 시청자를 들었다 놓았다 하곤 한다.




권총 한 자루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두 눈을 부릅 뜨고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리고 있다. 두 남자는 오징어게임의 최종 우승자와 오징어게임에 참가자를 초대하는 야바위꾼이다.



정의와 올바른 가치를 상징하는 우승자와 게임이 진행되는 세계로의 초대장을 건네는 야바위꾼은 닫힌 세계를 대표한다. 두 세계가 권총 한 자루 사이에서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장면이 철학적 의미를 띨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중의 역설을 작가가 알게 모르게 설정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최종 우승자는 게임의 잔혹함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 때문에 그 게임을 파괴하고자 한다. 게임의 구조와 질서를 무사히 통과한 덕분에 먹고살 걱정이 없는 사람인 우승자는 자신의 부의 근간인 오징어게임을 인간에게 암적 존재라고 규정하고 이 세상에서 제거하려고 한다.




반면에 오징어게임이 지속되게 하려고 참여자들을 모으는 야바위꾼은 오징어게임이라는 구조를 목숨처럼 여기면서 지키고자 한다. 원래 야바위꾼은 사람들의 눈을 속임으로써 이익을 얻곤 하지만 오징어게임을 지켜야만 하는 야바위꾼은 필사적으로 파수꾼이 된다.




그래서 1/6이라는 확률로 러시안룰렛을 최종 우승자와 함께 생사를 건 게임을 벌이고 있다. 게임, 그래 바로 게임이다.




두 사람이 번걸아가며 머리에 총을 대고 자신의 운명을 손가락 하나에 걸기를 네 번쯤 했다. 그러나 여전히 두 사람은 모두 살아 있다.




마지막 두 번의 기회가 남았고 여전히 대립하고 있는 두 사람이 남아 있다. 다섯 번째 시도에서 방아쇠를 당길 차례는 우승자였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야바위꾼이 정직한 우승자를 유혹한다. 마치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하는 뱀처럼 교묘한 말로 양심을 흔들려고 시도한다.




"그 게임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왜요? 생각이 많아지셨나요? 이제 성기훈 씨가 죽을 확률은 2분의 1, 꽤 높은 확률이긴 합니다. 겁이 나고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하죠. 아마 지금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총은 내 손에 있어. 게임의 룰이고 뭐고 방아쇠를 한 번 아니면 두 번만 당기면 저놈의 면상을 날릴 수 있어.' 어때요? 맞죠? 성기훈 씨가 보고 싶어 하시는 그분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제 주머니에 있습니다. 지금 그 총으로 절 쏘시고 그걸 가져가시면 돼요. 다만 이거 하나만 인정하시면 됩니다. 너도 다른 놈들이랑 똑같은 쓰레기야. 운이 좋아서 겨우 폐기 처리를 면한 쓰레기"




이것이야말로 체제 전복자의 역설을 꼬집는 말이지 않을 수 없다. 속임수로 자연의 섭리를 비틀어 버리는 야바위꾼은 오히려 하나의 세계가 운영되는 질서를 지키고자 함과 동시에 성기훈에게 러시안룰렛 게임의 룰을 위반하는 대신에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면서 그가 꾀하고자 하는 일의 모순을 꼬집고 있다.




그리고 이 대결은 정직성과 홀연함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누가 더 큰 세계, 더 올바른 가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냐는 것에 관한 대결이었다.




철학적으로 두 사람의 대립을 놓고 본다면 범주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야바위꾼이 지키고자 하는 질서와 체제 전복자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서로 다른 범주의 문제로서 실질적으로 두 세계는 서로에 대해 배타적이다.



다른 사람을 죽여야만 자신에게 이익이 되돌아오는 세계를 전복시키려는 자와 사람들이 처한 상황의 약점을 역이용해 굴러가는 사회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원하는 바가 너무 다르다.




소수가 독점하는 젖과 꿀, 나만 잘 살면 된다라는 자본주의가 낳은 사생아인 이기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존엄성과 생명존중 사상을 조롱하며 그 앞에서 까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시청자가 바로 이러한 물음 앞에서, 이토록 범주가 다른 가치의 대결 앞에 놓여 있다.




과연 당신은 당신만 잘 살기를 바라는가? 아니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엄성을 인정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는가?




이것이 만약 인간의 본성을 그려낸 것이라면, 모든 인간이 지닌 동일한 본성일까? 과연 그런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악의적인 본성을 인간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악이 선을 이길 만큼 강했다면 인류는 이미 멸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인간이 절망적이었다면 반드시 절망적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절대선에 내맡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중적 역설을 설정함으로써, 대체적으로 참인 패러독스를 극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작가는 오징어게임 시즌2의 대문을 활짝 열어졎혔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주제의 실뭉치가 풀려나가는 실타래에 불과하다. 그래서 오징어게임 시즌2는 미완성으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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