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시즌3: 투표에 관하여

민주주의로는 자본주의의 잔인함을 견제하지 못한다.

by 이각형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시즌3으로 지난주 금요일에 다시 찾아왔다. 성기훈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중간에 이야기를 멈춰버려 시청자들은 1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시즌1과 다르게 시즌2에서는 게임의 종류뿐만 아니라 진행 방법이 달라졌다. 각 게임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이 투표를 통해 다음 게임의 진행 여부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작가가 단순히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늘리기 위한 것도, 방송 분량을 늘리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투표가 진행될수록 이는 점점 분명해졌다.




오징어게임과 같은 구조와 질서를 설계할 정도로 통찰력을 갖춘 작가이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투표에 반영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만일 단순히 방송 분량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투표가 반복되는 동안 시청자들은 지루해지고 식상해졌을 텐데 작가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시즌2에서는 진행된 게임이 총 세 개에 불과했고 그래서 투표는 단 두 번만 했었다. 그래서 시즌2에서는 모든 단계에서의 투표가 단순히 새로운 변화로만 여겨질 정도로 작품 속에서 차지하는 의미로서의 비중이 적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새로운 시즌에서도 투표를 계속해서 보여준 것은 투표에 대해 작가가 심어놓은 메시지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투표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제도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봉건주의를 무너뜨린 절대다수가 얻어낸 가장 인간적인 권력구조이다.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을 통해 권력의 분배를 꾀하며 이를 통해 봉건주의에서 절대다수가 겪었던 정치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근절시킬 수 있었다. 대신에 왕권과 같은 절대권력의 빈자리를 자본가가 독식하게 되었다.




정치에서는 민주주의를 통해 절대다수가 주권을 되찾았지만, 먹고사는 문제인 경제에서는 자본주의가 여전히 절대왕권을 갖고 절대다수를 지배하고 있다.




초기 자본주의는 10세가 되지 않은 가난한 어린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변을 당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외에도 초기 자본주의는 참담한 비극을 양산했었다.




21세기를 열어젖힌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세상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는 음지에서는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수를 셀 수 없다. 그러한 21세기 전 세계 국가의 정치제도는 대부분 민주주의다.




주권을 되찾은 정치제도인 민주주의조차도 자본주의의 잔인함을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에서도 참가자들이 게임의 잔혹함을 절실하게 경험했고 투표를 통해 게임을 중단시킬 수 있었지만 게임이 진행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투표에서 X를 누른 사람들조차도 잔혹한 게임에 억지로 참가해 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지만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처한 서민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




중 상황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치제도가 민주적으로 운영된다고한들 경제의 분배구조가 왜곡되어 있다면 서민들은 여전히 먹고사는 걱정을 하며 피곤에 쩌든 몸을 눕히며 위로를 구하곤 한다.




투표가 반복되면서도 여전히 잔혹한 게임이 멈추지 않는 장면을 보면서 누군가는 분명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인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하지만 나는 돈처럼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또 다른 지배관념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 지배관념이 정신적 삶을 향유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인간의 삶은 지금과 매우 달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면 모든 문제는 돈이 아니라 다른 것, 마음과 의미에 더 가까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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