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기기의 세계에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집의 기둥이 뿌리째 뽑힌다는 말이 있다. 남자의 취미 중에서 가장 고가이면서 동시에 가장 고약한 것이 바로 음향기기이기도 하다.
시계도 비싸고 자동차도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골프도 또한 라운딩 회수뿐만 아니라 장비에 대한 욕심이 끝 모르게 되면 상당한 돈을 쏟아붓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취미는 음향기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음향기기는 장비대가 상상을 초월하는 데다가 그런 장비가 제 성능을 발휘하려면 그에 걸맞는 환경 자체를 갖춰야 할 정도로 부대비용이 만만치 않다. 만일 내가 운이 좋아 재벌가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코르크나무로 모든 벽을 틀어막고 음악 감상을 위해 모든 장비를 가장 비싼 걸로 채워 넣었을지도 모를 만큼 음향장비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취향이 있다.
이런 최상의 장비로 들었을 때 가장 감미로우면서도 극단적인 몰입감에 빠질 수 있는 분야가 바로 클래식이다. 누군가는 클래식을 죽은 세계라고 하기도 주장했지만 그가 비록 남들이 인정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그는 그저 클래식을 감상할 줄 모르는 문외한이었을 뿐이었다.
물론 나도 클래식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100% 즐기고 있지는 않다. 그저 누구나 들어본 음악으로 즐기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내게는 클래식을 즐기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다. 그것이 비록 낭만주의적 색채를 물씬 풍기고 있을지 몰라도 음악을 그 자체로 즐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음악이 선사하는 그 세계, 다시 말해 작곡가가 음계를 떠올릴 때 받았던 천상의 계시에 한 발자국 다가서도록 멜로디가 그려내는 미의 세계에 스스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시간의 흐름에서 자유로워지는 그것이다.
청각이라는 감각은 시각과 마찬가지로 감각의 예민함이 감상의 폭과 깊이를 결정한다. 그래서 음향장치에 따라 감동의 깊이와 상상의 세계가 그려내는 그림이 확연히 달라지곤 한다.
물론 제목과 같이 편의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블루투스 이어폰이라는 장치에 대해서는 굳이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굴어야 하느냐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편리함이 최고의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음악 감상에 있어서는 편리함을 넘어서는 가치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가치의 세계는 최대값이 측정의 단위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주 장대비 같은 비가 내린 어느 날 노래를 들으며 을지로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우산을 접고 음식점에 들어가려고 귀에서 이어폰을 꺼내다가 그만 한쪽을 구정물에 빠트리고 말았다. 그래서 별 수 없이 새로운 이어폰을 사야 할 운명에 처해 버렸다.
수년간 BOSE의 블루투스 이어폰과 SONY의 헤드폰으로 음악을 즐겨오던 터라 자연스레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도 했었다. 특히 BOSE의 블루투스 이어폰을 쓰면서 음질에는 굉장히 만족했으나 연결성은 현격히 떨어지는 터라 불만이 상당했었다.
이에 반해 소니 헤드폰에 대해 음질이라든가 연결성에 있어서 상당히 만족해 온 만큼 소니 제품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니 제품에 대한 후기를 검색하던 도중에 꽤 흥미진진한 주장이 담긴 글을 읽게 되었다.
그 글의 작성자는 삼성의 버즈 3 프로가 예상외로 소니보다 좋은 음질을 들려준다는 것이었다. 그 나름대로의 전문성 혹은 객관성을 증명하려는 듯이 여러 가지 실측 데이터를 각종 그래프와 함께 제공하기도 했다.
음향 쪽의 과학적 실측 자료에 관해서는 까막눈이어서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저자의 말에 의하면 삼성 버즈 3 프로의 음질이 굉장히 만족스럽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래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새로운 브랜드를 한 번 사용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덜컥 결제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막상 사용해 본 결과 음질이 실망스러웠다. 특히 저음이 정말 형편없었다.
물론 나는 오랫동안 보스의 제품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 수 있다. 보스 하면 바로 풍부한 저음이었을 정도로 저음을 처리하는 보스만의 방식은 웬만한 브랜드에서는 흉내도 내지 못한다.
물론 뱅앤울릅슨과 같은 고가의 장비는 청음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주관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의 제품에 대한 평가 중에서 저음부가 인위적이라는 평이 꽤 있다는 점을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 평가가 사실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삼성이나 소니 제품을 써 본 결과 그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에 의해 왜곡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나로 하여금 삼성 버즈를 사게 만든 문제의 그 글을 작성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이 자기 나름대로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견지하기 위해 그동안 사용해 번 이어폰의 목록을 밝혀 놓았었다. 그때도 눈여겨 보아 알고 있었던 점이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BOSE 계얄의 음향기기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는 그 평가자는 BOSE 제품의 저음이 얼마나 생동감 넘치게 재현되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당연히 버즈 3 프로의 저음부가 굉장히 훌륭하다는 평가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장르의 음악에선 저음부가 그저 드럼이라든가 베이스 기타의 음향이 얼마나 생동감 있게 전달되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반면에, 클래식에서는 저음을 담당하는 악기가 상당히 다양하고 음색의 영역이 꽤나 광범위한 편이다. 특히 교향곡과 같은 고음, 중음 그리고 저음을, 그것도 관악기, 현악기와 타악기처럼 소리를 내는 방식이 서로 다른 악기의 음향이 동시에 울려 퍼질 때 생생한 저음부를 재생해 내려면 음을 세밀하게 분리할 수 있어야 하면서 동시에 분리된 그 음에 맞게끔 하드웨어를 갖춰야 한다.
하드웨어가 약하다면 약간의 타협을 통해 소프트웨어로라도 해낼 수 있다면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만큼 반가운 것도 없다. 그런데 저음부가 인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보스의 이어폰이 바로 이 저음의 영역을 재생하는 데 있어서 탁월하다는 것을 버즈 3 프로에 대한 평가를 남긴 글 덕분에 잘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버즈 3 프로가 형편없는 건 아니긴 하다. 갤럭시 폰 사용자라면 이만큼 연결성이 좋은 이어폰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귀가 굉장히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장시간 사용하더라도 귀가 답답하다거나 불편한 증상을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빠져버린 저음 영역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편하게 사용할 수 있더라도 콘트라베이스가 묵직하게 저 아래에서 쿵쿵 쾅쾅 웅장한 소리로 밀어주는 그 음향을 즐기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다.
그래서 몰다우 강이 협곡을 지나면서 거친 물결이 급물살로 변해 급격히 휘어져 나가다가 고요한 하류에 이르러 물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들판을 그려내는 스메타나의 음악에서,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기차역에서 전쟁터로 떠나기 직전이 연인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두 사람이 얼어붙은 창가에서 따듯한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연인을 향한 뜨겁지만 혹독한 그리움을 침묵으로 그려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아쉬움을 삼키게 된다.
다시 또 보스의 세계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