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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 나를 밀고 간다

by 이각형



10여 년 전 나는 깊은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잘못했기에 일이 이렇게 되었을까.


어떤 선택이 이 모든 결과를 불러온 것일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 결국 한 질문에 이르렀다.


"과연 옳은 선택이란 무엇인가?"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분명 책에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애써 읽은 페이지들 안에는 내게 결정적인 통찰을 주는 생각은 없었다. 모든 게 흐릿해졌고, 나의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한 문장을 만났다. 박웅현 작가의 책에 실린 문장이었다.


"이 세상에 옳은 선택은 없다. 다만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옳게 만드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이 문장은 절대적 진리는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강한 울림을 전해 준 유사진리였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우리는 사실 선택의 순간에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오직 이후의 과정에서 그 선택을 옳게 만들어갈 수 있을 뿐이다.


이 문장은 그러한 현실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옳은 선택"은 반드시 존재한다고도 생각했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할 뿐이다.


많은 경우 선택의 기준을 도덕이나 정의, 혹은 공공의 선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두기 때문에 판단은 왜곡될 뿐이다.


이를 테면, 한때 여당의 핵심인물이었던 정치인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검찰 수사를 받게 되었다. 그는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직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수사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상대적 조건에서 나온 말이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이었다면 문제 되지 않았을 일이라는 근거로 스스로의 선택이 옳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은 선택의 옳고 그름보다 그 선택 이후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삶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다.


드라마 미생에서 한석율이 장그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모든 선택이 쌓여 삶이 된다."


이 말이 정말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단순한 선택의 누적이 아니라, 선택 이후의 성실한 태도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블루칼라 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던 한석율이 지닌 삶에 대한 태도에서 중요한 가치는 바로 그 "성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택을 운명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한 번의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생각은 우리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오히려 선택은 노력하고 매진하게 만드는 능동적 요소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 모든 것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옳은 선택은 존재한다. 단지 그 판단의 기준이 정의, 도덕 그리고 도리에, 더 나아가 진선미를 향한 방향에 놓여 있어야 한다.


그러한 기준을 가질 때, 삶은 덜 흔들리고, 선택은 덜 후회된다.


나는 이제 바란다. 욕망이 아니라, 인간된 도리와 진선미를 향한 의지, 진리를 향한 갈망이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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