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북한산 백운대 등정(?)을 끝으로 2025년의 산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28일 날씨는 대체로 흐린 가운데 오후에는 비 소식이 예보되어 있었다.
기온은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대략 영상 4도쯤 되었다.
사실 28일은 쉬어도 될 만한 날이었다. 그 전날 트레드 밀 위에서 하프 마라톤을 연습했기 때문에 운동량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쓸데없이 마음이 복잡해지는 걸 기피하는 습성 탓에 가만히 있질 못했다. 아침 느지막이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마치고 식기세척기를 돌려 뒷정리를 마무리하자마자 산행 채비를 서두르며 옷을 갈아입었다.
서두르는 마음이 너무 커서였을까, 지금까지 산행을 나서기 전에 단 한 번도 샤워를 하지 않고 나선 적이 없었던 나만의 금기사항을 깨고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마치 모든 심란한 일이 집안 구석구석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과 같았다.
대중교통을 타고 가도 될 일이지만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많아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차를 쓰고 있는 일상의 단편 속에서 차를 쓰는 일이 등산이라는 점을 떠올리며 씁쓸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집을 이사한 후로 북한산 도선사 코스를 주로 타고 있다. 아지트처럼 나만 알고 있던 산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비를 송금하고 가방을 메고 나오는 순간, 주차장 주인 할머니께서 반갑게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군고구마 좀 드세요. 지금 막 한 거라 따듯해요!"
참 인자한 인상의 할머니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키도 딱 외할머니 키 정도였다.
얼마 전 꿈속에서 그렇게 그리워하던 외할머니를 만났었다.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고 있었는데 내가 외할머니의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반갑게 웃어주면서 나를 품에 안아주셨었다.
예전 같았으면 꿈속에서 외할머니를 보고 꺼이꺼이 오열하며 깨어나곤 했는데 그날따라 따듯한 할머니 품에서 느꼈던 그 온기가 깨어날 때까지 나를 감싸주었었다. 그리운 할머니, 나는 우리 외할머니를 생각만 해도 눈물을 흘리곤 한다.
지금 이렇게 어제 있었던 일을 글로 옮기는 이 순간에도 나의 눈시울은 뜨거운 눈물을 떨구고 만다. 내 생이 마감하는 날, 드디어 나는 나를 사랑해 준,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 안기는 날이 된다.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유일한 나의 딸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품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날이 오면 모든 이들의 가슴에 평화가 깃들 것이다.
주차장 할머니께서 건네주시는 군고구마를 처음에는 사양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자애로운 마음이 순식간에 전해지는 바람에 나는 아무런 저항 없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말았다.
주차장 할마니께서 군고구마를 주신 건 생각해 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주차장 관리소 안에 앉아 계시면서 "조심히 다녀오세요"라고 말씀해 주시기만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군고구마를 주시기 위해 일부러 내 차 앞까지 오시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예상하지 못한 순간 앞에서는 순간적으로 정지되고 만다.
어리둥절하긴 했지만 따듯한 인심을 느끼면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아직 살 만한 세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이분소에서 트랭글 앱을 작동시켰다. 도선사 코스라고는 하지만 내 산행의 시작은 바로 우이분소에서부터였다.
우이분소에서 도선사까지는 대략 1.8km 정도 되는 둘레길 같은 길이다. 그리고 도선사에서 백운대까지는 대략 2.2km 정도 된다.
둘레길 같은 길이지만 경사가 꽤 높기 때문에 생각보다 힘든 코스다. 도선사에서 시작되는 본격적인 산길보다 이 코스가 더 힘들게 느껴질 정도이다.
도선사에서 하루재까지는 아주 평범한 산길이다. 북한산이 만일 이 정도 난이도의 산길로만 되어 있었다면 아마 더 많은 인파가 붐볐을지도 모른다.
하루재에 올라와 보니 온통 나뭇가지에 얼음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조금만 더 기온이 낮았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면 필시 상고대라고 불릴 만한 정도였다.
안 그래도 산행에 나서기 전, 지하 창고에서 아이젠을 하나 챙겨서 왔다. 그리고 하루재에 올라오기 전 지나가는 지긋하게 나이 든 등산객 손에 아이젠이 들려 있는 것을 보고서 물어봤었다.
"저 위에선 아이젠이 필요한가 봐요?"
"네. 얼음이 보이기 시작하면 차는 게 좋을 거예요. 그나저나 아이젠은 있어요?"
"네,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에서는 용감해진다고 해야 하나?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일이 한결 편하게 느껴진다.
하루재를 지나 인수암을 향해 가다 보니 분명 길바닥이 빙판이었다. 그러다가 등산객들의 안전을 고려해 설치한 난간의 계단이 눈앞에 이르자 가방에서 아이젠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새 거라 그런지 착용하는 데에 5분이 넘게 걸렸다. 역시 12월 이후부터 4월까지는 항상 아이젠을 들고 다녀야 한다.
아이젠을 차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지나가는 등산객 중에 운동화를 신고 온 외국인들이 자기들끼리 길이 미끄럽다, 위험하다 등등의 얘기를 나누는 곁을 지날 때에는 그들이 심히 걱정되기도 했었다.
북한산 도선사 코스는 백운대로 갈 수 있는 코스 중에 가장 짧다. 그리고 2.2km 산 길 중에서 험난하다고 할 수 있는 구간은 길어야 5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담감은 별로 없는 코스이긴 하다. 그런데 준비가 너무 소홀했던 탓일까 산 중턱을 오르던 중에 급격하게 허기가 느껴졌다.
분명 아침을 먹고 출발했는데도 속이 텅텅 비어버린 듯했다. 이런 상태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물론 집에서 나올 때 손바닥만 한 빵 하나를 들고 나오긴 했다. 그런데 추운 날씨에서 차가운 빵은 별로 당기지가 않았다.
그 순간 별안듯 군고구마가 생각났다. '아, 그렇지. 군고구마가 있었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백운대피소에 도착했다. 날이 춥고 고도가 높아 바람이 강해진 탓에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다.
군고구마를 꺼냈다. 아직까지 따듯해서 딱 먹기 좋았다. 군고무가 껍질을 까면서 원효 대사의 일화가 생각났다.
물론 군고구마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직접적인 비유로 적합하진 않았다. 그래도 원효 대사에게 귀한 물 한 모금이었던 것처럼, 내게도 귀한 먹거리였다는 점이 공통점이었다.
고구마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차 앞까지 나오신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난 그때만 해도 배가 든든한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고구마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더구나 이렇게 산을 타다가 급격하게 허기가 진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주차장 할머니가 마치 천사처럼 허기가 질 걸 미리 알고서 내게 군고구마를 건네주셨다.
살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많다. 내게는 이런 것들이 하나의 기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내게는 이렇게 기적 같은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고 있다. 하다못해 복잡한 쇼핑몰에 차를 몰고 가면서 살짝 기도를 드렸더니 수십대 차량이 대기하고 있을 때 바로 근처 차량이 출차하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우리네 삶에는 분명히 이런 기적 같은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할 뿐이다.
꿀맛 같은 고구마를 훨씬 더 맛있게 먹고 다시 정상으로 향했다. 날이 궂어서 그런지 등산객들이 별로 없었다.
좋은 날씨였다면 백운대에 오르기 위해 막판 300미터에서 꽤 오랜 시간을 잡아먹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한 번도 기다림 없이 단숨에 올라올 수 있었다.
이제 백운대에 올랐으니 마당바위에 자리를 깔고 따듯한 커피 한잔과 집에서 가져온 빵을 먹기로 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어서 믹스커피부터 꺼냈다.
그리고 빵을 꺼내 한 입 베어 먹고 바닥에 내려놓으려고 하던 순간 그만 빵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빵이 마당바위 위를 구르고 말았다.
순간 너무 당황했다. '아 이 빵까지 먹어야 하산할 때까지 배가 안 고플 텐데.'라는 한숨 섞인 자책과 함께 땅바닥에 떨궈진 빵을 바라보기만 했다.
땅에 떨어진 빵을 보면서 이걸 먹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마 등산화가 밟고 지나간 바닥에 떨어진 빵을 주어 먹을 순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단지 급작스러운 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가 정상에서 먹던 빵을 떨구는 일까지 예지하신 그분의 섬세한 손길이 군고구마 안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도 감사했다.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없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떨어진 빵을 보면서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이 정상적인 일은 분명히 아님에 틀림없다.
이런 일은 그저 사소한 일이 아니다. 모든 순간에는 다 뜻이 있다.
인생의 모든 순간에 그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알게 된다. 고구마라는 사소한 일은 내 삶에 두신 그분의 뜻을 알려주시기 위해 비유를 통해 넌지시 들려주신 일이었다.
잃어버린 빵 그리고 떠나버린 인연들, 그전에 미리 예지하시고 준비해 주시는 그분이 어디에서나 내 곁에 있다는 점을 알려주신 뜻이었다.
2025년의 마지막 산행이었던 12월 28일, 그날의 산행을 난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다시 2026년이 시작하고, 2026년의 산행이, 2026년의 마라톤이 시작할 것이다.
그래, 다시 시작이다. 준비되지 않은 나를 이미 준비된 세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