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세밑을 코 앞에 둔 오늘 올 한 해 나를 이끌어 준 지적인 스승 세 명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헤르만 헤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뛰어난 작가들이 그렇듯이 그분들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이 남긴 조각 같은 글인 에세이를 읽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헤르만 헤세가 바로 그러한 작가 중 하나이다.
에릭 블레어의 진짜 목소리를 들으려면 "나는 왜 쓰는가"를 읽어야 하며, 마르셀 프루스트를 만나기 위해서는 "독서에 관하여"를 통해서 가능하다. 나쓰메 소세키를 마주 보려면 문학예술론을 읽어야만 비로소 그분과 차 한 잔 하면서 우에타이를 노래하며 하이쿠 한 수 읊을 자격을 갖춘다.
마찬가지로 헤르만 헤세는 그의 심도 깊은 에세이를 통해 헤세가 지녔던 사유의 빛을 조우할 수 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햇살과 같은 헤세의 따듯한 말 한마디에 위안을 얻기도 한다.
암울하고 어두웠던 2025년 초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를 읽게 된 것도 아마 나에겐 운명과 같은 사건이었다. 그를 통해 나는 표도르 도스토프옙스키라는 대문호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부러워하며 칭송하기 바빴던 헤르만 헤세마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 세계를 탐독하면서 성찰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니. 과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지적인 세계는 이토록 깊고도 방대했단 말인가? 나는 이렇게 한없는 세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헤르만 헤세의 안내에 따라 도스토옙스키의 세계로 접어들었다.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유럽인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은 백치부터 읽기 시작했다.
과연 므이쉬킨 공작은 예수의 화신과 다르지 않았다. 비록 그의 좌충우돌했던 행보가 많은 여자들에게 오해를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므이쉬킨 공작 그는 19세기 유럽 대륙에 혜성처럼 등장한 새로운 사랑의 시대를 열고자 했던 몽상가이자 행동하는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단숨에 백치를 읽고 뒤이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겪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라는 대작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나는 다시 그 작품의 첫 페이지로 돌아가기 바빴다.
미차와 그루센카의 비극적 운명, 아름답지만 단명하고 만 광채와 같은 일류샤, 조시마 장로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현실시계에서 만인에 대한 사랑의 화신이라는 무겁디 무거운 십자가를 졌던 알료샤의 순결함은 잊을 수 없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와 "우리는 모든 것에 관해 모든 사람에게 죄인이다"라는 문장은 나의 가슴에 못을 박은 것처럼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연거푸 그 작품을 두 번 읽고 난 뒤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5대 장편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죄와 벌, 악령 그리고 미성년에 이르기까지 독서 여정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또다시 내게는 한 명의 거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클라이브 스테이플 루이스였다.
피고석의 하나님, 천국과 지옥의 이혼, 네 가지 사랑, 순전한 기독교 그리고 나니아 연대기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까지 이러한 여정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와 클라이브 스테이플 루이스는 나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뒤집은 위인들이다. 그 두 사람이 나의 2025년을 완성했다.
이 두 사람을 만나기 전 내가 접촉했던 많은 작가들은 그저 연습이자 훈련과 다름없었다. 그들에게도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미련한 나를 여기까지 훈련시켜 준 덕분에 드디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처리해야 할 달갑지 얺은 일이 남아 있는 이 시간에도 나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이 글을 쓰는 동안 나 자신을 의식조차 하지 않으면서 2025년 마지막 송년회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그분 덕분이다. 그분의 은혜였다.
2026년에도 나를 이끌어 주실 그분께 감사한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