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기술: 밀란 쿤테라

by 이각형



오늘 아침에 드디어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문체가 워낙 뛰어나서 몰입하게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 정도 탐독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니, 아주 재미있던 드라마가 끝나버린 것처럼 공허한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작품해설이라든가 역자가 남긴 평은 항상 챙겨서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 페이지가 더 남긴 했는데요.

작품해설이 아주 독특한 문제제기로 시작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을 언급하면서 말입니다.

밀란 쿤테라는 소설가와 작가를 구분했다고 합니다. 얼핏 보면 되게 엉뚱한 구별 같지만, 밀란 쿤테라라는 작가가 가진 글쓰기에 관한 철학적 관점이 물씬 묻어나는 것 같아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에세이에서 밀란 쿤테라는 작가와 소설가를 이렇게 구별했습니다.

"소설가들은 자신의 생각을 커다란 주제로 삼지 않는다. 그는 더듬거리며 실존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밝혀 보려고 애쓰는 발견자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에 매혹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형식에 매혹되며, 그의 꿈이 필요로 하는 요구에 부응하는 형식만이 그의 작품을 이룬다."

"작가는 그의 시대, 그의 나라의 정신적 지도 위에, 그리고 사상의 역사 위에 그 이름을 새긴다."

엄밀히 생각해 보면 밀란 쿤테라는 작가에 대해 아주 엄격하고 심오한 기준을 갖고 있던 게 틀림없습니다.

시대에 이름을 새기는 작가도 드물지만, 사상의 역사 위에 그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작가는 정말 몇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사상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작가로 손꼽을 만한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볼 수도 있을 정도로요.

밀란 쿤테라가 소설가들을 바라볼 때 소설을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글쓰기로 여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측면을 발견하는 발견자로서의 존재 의의도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면밀하게 보시면 요새 소설가들이 몰락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소설가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에 매혹되는 게 아니라 그가 추구하는 형식에 매혹된다는 부분에서 말입니다.

현재까지의 21세기는 유튜브, 즉 영상의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설가와 같은 직업이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습니다.

소설가적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소설보다 돈을 쉽게 벌거나 더 쉽게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는 다른 형식을 추구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아무튼 작품해설을 읽다가 이런 새로운 관점의 일부분을 발견해서 약간 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호 이런 책이 다 있었다니, 군침이 돌았습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바로 검색에 들어갔지만 2013년도 민음사에서 출간한 뒤로 절판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알라딘에서 헌책으로 검색을 했더니 글쎄 가격이 2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eBook으로 사서 볼 수는 있습니다. 그것도 헌책에 비해 삼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만 원 조금 넘는 저렴한 가격으로 말입니다.

문제는 제가 eBook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유가 깊은 글을 읽을 때에는 아직 저는 eBook보다는 종이책을 훨씬 선호하고 있습니다.

아는 분께서 eBook의 장점을 말씀해 주셔서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패드의 기능과 장점에 대해서 Chat GPT에게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Chat GPT조차도 깊이 사유해야 하는 글은 종이책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실토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eBook의 세 배가 넘는 금액으로 헌책을 사서 봐야 할지 아니면 eBook으로 봐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렇게 갈팡질팡 할 때 저는 보통 고민에서 쓱~ 빠져나와서 딴짓을 합니다. 이렇게 잡다한 글을 쓰면서 말입니다.

더구나 오늘 아침에 도스토옙스키의 중편 소설을 3권이나 구입한 터라 이미 도서 구입 지출을 한 상태입니다. 이 헌책까지 사게 된다면 오늘 하루 책에만 쓴 돈이.... 아무튼 좀 망설이고 있습니다.

이럴 때 놓치면 이 책은 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미 사놓은 책이 꽤 되기 때문에 헌책을 고가에 사게 되면 부담도 좀 됩니다.

비싸게 산 만큼 꼭 읽긴 하겠지만요.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 도서관을 한번 검색해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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