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이별하며 사는 일에 관하여

by 이각형



어차피 산다는 건 나와의 이별이다. 어제의 나와 이별하고 오늘 아침의 나에게서 멀어지는 일의 연속이다.

겨울에는 눈이나 비가 빙판으로 변해버릴지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걸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여름에는 발목까지 차오를 것처럼 쏟아지는 장댓비에 머리 위로 우산을 받쳐 들고 총총 뛰어가기 바쁘다.

그러다 어쩌다 겨울과 여름 사이에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면 잠시 마음을 놓다가도 영혼을 훔치는 꽃향기에 마음을 도둑맞는다. 이윽고 정신을 차리면 알록달록 불처럼 끝없이 타오를 줄만 알던 붉은 이파리가 차가운 바람을 타고 무기력하게 발등 위에 안착하는 그림 같은 순간에 쏜살같은 시간이 등 떠밀고 있었단 걸 깨닫는다.

그제야 뛰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이리저리 던지곤 한다. 태어나고 울고 웃고 지내던 아이가 잘 어울리지도 잘 맞지도 않은 정장을 입고 가면놀이의 한복판에 휩쓸려 들어온 현실을 자각하고 어깨가 축 처지고 만다.

우리는, 아니 나는 왜 이렇게 정신없이 뛰어온 걸까? 과연 나는 왜 남들은 관심 없는 것들을 더 많이 알고 싶어 했던 것일까?

아무리 잘 쳐줘도 기껏해야 호기심을 채우는 것에 그쳤을, 아무 쓸모없는 지식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아무리 도덕에 관해 고민하고 생각을 해 봐도 나는 도덕적 인간이 될 수 없음에도 나는 왜 그토록 도덕에 관한 가르침을 즐겼던 것인가?

그래봐야 나는 누가 비도덕인지를 알아낼 줄만 아는 것에 불과한 것을. 그래봐야 도덕의 도자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감히 평가와 재단을 당하고 무시와 천대만 받을 뿐인 것을.

그래봐야 그런 이들에게 도덕에 관해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그저 읽었던 것들을 내미는 정도에 불과한 것을. 나는 왜 그토록 살아온 것일까?

과연 내가 보낸 시간들은 나를 어디로 흐르게 하는 걸까?

그나마 100년 전에 남기고 난 선조들의 빛이 어둠 속에 서 있는 나의 다음 발걸음을 간신히 인도하고 있다는 현실에 감사할 뿐이다. 그만큼 나는 혼자선 무기력해지는 현실을 마주 보고 있다.


지금이라도 그분들이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오게 된다면 나는 그들의 바지춤을 붙잡고 제발 내게 가르침을 전수해 달라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나는 도대체 너무도 아는 게 없다며 불쌍히 봐달라고 읍소할 것이다. 나에겐 그러는 편이 훨씬 잘 어울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책을 읽지 않는 삶을 옹호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친절하게 고민해 봐도 타인의 지혜, 그것도 나로선 도무지 생각해 낼 수 없는 것들을 깨달은 이들이 남긴 지혜에 의존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시간을 상상할 수가 없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암흑 속에 있으면서도 그것이 온통 암흑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을 나를 상상하면 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그런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면 나는 외톨이가 되고 만다. 그저 오늘은 무엇을 먹을 건지, 어젠 무엇을 먹었는데 어땠더라는 얘기만 입에 올리는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그런 사소한 일상에서 배제되길 원하던 나는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이었던 건지 갑자기 길을 잃고 헤매고 만다.

특히 그들이 하나의 연대를 이루고 마치 이 세상의 모든 시름은 자신들을 보기 좋게 빗나갈 거라는 심산으로 온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존재인 것처럼 보일 때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나마 오늘의 나를 위로해 줄 보석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오늘을 살아낸 내게 가장 큰 위안이 된다. 세련됨이 하나의 미덕이 아니라는 점을 100년 전에 깨달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가장 큰 위로였다.


아마 이 말을 내가 가장 처음 했더라면 나는 철저하게 배척되고 사장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 정말 천만다행이다.

산다는 건 이처럼 너무도 허망하고 공허한 것이다. 만일 이런 우리 인생이 흙으로 돌아갈 뿐이라면 과연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는 걸까?

삶의 진정한 빛을 잃어버려 망상에 빠진 한 무리의 무의미한 몸짓인 이 모든 것이 기록되지도 않고 누군가에 의해서 기억되지도 않을 이 시간 속에서 나를 증명할 필요가 있을까.

절대자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아무리 전지전능하고 모든 능력을 갖춘 존재일지라도 광대한 우주에 자신밖에 없다면 그건 순전한 공의 상태일 것이다.

최악은 다른 데 있다. 나 혼자 잘 살겠다고 내가 바로 가장 잘났다고 경쟁심을 갖는 것이야말로 최악일 것이다.

어차피 영원하지 못할 우리끼리 가면놀이를 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냔 말이다.

철마다 축제와 잔치를 벌였던 우리의 선조들이 괜히 그랬던 건 아닐 것이다. 그저 먹고살려고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거라면 나는 지금 생을 마감해도 아무런 미련이 없다.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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