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적인 인간을 위한 변명(1)
하늘을 보고 싶다.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듣다가 불현듯 창문 밖으로 보랏빛에 물든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학창 시절, 청명하고 높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느라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았던, 파랗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데에 한없이 빠져 있던 젊은 친구가 나이가 들더니 하늘에서 멀어졌다.
20년 전 낙조가 싫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발밑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꺼림칙해졌다. 도망치듯 달려가는 동안 낚아챌 듯 덮쳐오는 낙조가 두려웠다. 서해안의 해변을 물들이던 붉은 카페트에 등을 돌리고 나서 다신 서쪽을 찾아오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나이가 들더니 산문적인 인간이 되어 버렸다. 사회의 때가 묻은 건 아니었다. 그저 해야만 하는 일들 속에서 자신을 잊은 채 시간의 흐름을 타고 산문적인 인간이 되어 버렸다. 자신을 잃어버린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운문적인 인간에서 산문적인 인간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오르테가의 말처럼 나도 늘 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20년 전 광화문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시집을 하나 골라 집으로 발길을 돌렸던 그때의 젊은이는 어느새 낡은 채 사그라들었다.
흐르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시를 읽을 수 없다. 그는 변명하듯이 산문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낡은 사물에 애착을 가진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애틋한 마음에 동화된 나머지 낡은 자신이 부끄럽지 않았던 그런 날이 있었다.
길고 긴 하루를 보낸 오늘의 낡은 젊은이는 보랏빛에 물든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히고 무릎을 가슴께 끌어안은 채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다.
저 붉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도 내가 앉을 자리가 분명히 있을 거라며.
그리고 그런 날은 반드시 돌아올 거라며.
릴케의 시집을 들고 푸른 들판을 바라보는 날이 올 거라며.
-캄캄한 밤에, 나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