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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Apr 05. 2023

산문적인 인간을 위한 변명(1)

하늘을 보고 싶다.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듣다가 불현듯 창문 밖으로 보랏빛에 물든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학창 시절, 청명하고 높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느라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았던, 파랗고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데에 한없이 빠져 있던 젊은 친구가 나이가 들더니 하늘에서 멀어졌다.


20년 전 낙조가 싫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다가 갑자기 발밑을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꺼림칙해졌다. 도망치듯 달려가는 동안 낚아챌 듯 덮쳐오는 낙조가 두려웠다. 서해안의 해변을 물들이던 붉은 카페트에 등을 돌리고 나서 다신 서쪽을 찾아오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나이가 들더니 산문적인 인간이 되어 버렸다. 사회의 때가 묻은 건 아니었다. 그저 해야만 하는 일들 속에서 자신을 잊은 채 시간의 흐름을 타고 산문적인 인간이 되어 버렸다. 자신을 잃어버린 건 아니었는데 어느새 운문적인 인간에서 산문적인 인간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오르테가의 말처럼 나도 늘 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20년 전 광화문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시집을 하나 골라 집으로 발길을 돌렸던 그때의 젊은이는 어느새 낡은 채 사그라들었다.


흐르는 시간에 쫓기는 사람은 시를 읽을 수 없다. 그는 변명하듯이 산문적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낡은 사물에 애착을 가진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애틋한 마음에 동화된 나머지 낡은 자신이 부끄럽지 않았던 그런 날이 있었다.


길고 긴 하루를 보낸 오늘의 낡은 젊은이는 보랏빛에 물든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없다며 눈시울을 붉히고 무릎을 가슴께 끌어안은 채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다.


저 붉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도 내가 앉을 자리가 분명히 있을 거라며.


그리고 그런 날은 반드시 돌아올 거라며.

릴케의 시집을 들고 푸른 들판을 바라보는 날이 올 거라며.



-캄캄한 밤에, 나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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