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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Aug 04. 2023

가오갤3 후기




마블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언젠가는 로켓의 이야기가 영화의 주제가 될 거라는 걸 예감하고 있었다. 마블의 세계관에서 로켓은 유일한 존재였다.

유일하게 자신과 동일한 종족의 인물이 나오지 않았으면서, 동시에 유일하게 자신의 사연이 드러나지 않은 채 Phase3가 일단락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로켓의 등장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로켓에 대한 인상은 그저 조금 괴팍하면서도 공격성과 폭력성을 강하게 표출하는 해적 같은 이미지의 너구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우주의 평화를 지키려는 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너구리의 과거 사연이 궁금했을 수밖에 없었다.

로켓은 친구를 도와주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친구를 떠나게 만든 과거를 숨기고 있었다. 그러한 과거 위에 쌓아 올린 거대한 탑과 같은 로켓의 무거운 자책감, 그러한 죄책감에 대한 반동 작용이 표출된 것이 바로 로켓의 폭력성과 공격성이었다.  

감정적 격류에 휩쓸렸던 로켓의 표면적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우리는 그가 감추고 있었던, 그의 내면에 내재된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렇게 순수하게 폭력성을 휘두르는 로켓을 바라보면서 우리들 마음에 서글픈 감정이 물들곤 했다.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폭력성이 밖으로 표출될 때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내면 속 깊이 잠재되어 있는 법이다. 폭력성은 심리적 기저의 반작용일 테니까.

로켓은 불의한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세상이 앗아간 친구들에 대한 상실감으로 얼룩진 그의 내면은 그러한 세상에 대해 반감과 저항심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물에는 표면이 있다. 다만 표면이 단지 표면으로써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드러난 것은 언제나 내면에 대한 반작용이다. 표면이 표면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심리적 기저 위에서 가능한 법이다.

사물의 표면은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창문이다. 사과의 단면을 잘게 잘라 그 심층을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매번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산만 보고 있을 뿐이다. 이 지구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거인이 자신의 구부정한 능선 아래에 숨기고 있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살펴보라. 산 위를 걷는다고 해서 산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오로지 예민한 감각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만이, 사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만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창작품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법이다. 비평가와 역사가 그리고 철학자들만이 시대의 작품을 탄생시킨 잠재된 합의와 체계를 탐구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일 뿐이다.

인간은 소유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성된다고 그가 말했다. 그래서 만일 어떤 이가 오랫동안 필사적인 노력으로 그가 지닌 지적 능력을 사용한다면, 단지 그가 그와 같은 능력을 소유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그에게 결핍되어 있는 그 무언가를 얻기 위해 그가 지닌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식론이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인간이 인식에 대해 느끼는 필요성과 그 필요성을 진정시키기 위해 인간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기능 사이에 놓인 부조화를 간과한 데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유일하게 플라톤만이 이러한 오류의 원인을, 인식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인간은 무언가를 결핍하고 있다는, 인간은 무지하다는 혹독한 사실에서 추측했을 뿐이라며.

결국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는 생명체이며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동시에 우리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는다.

이러한 인간은 자신이 본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통해, 말을 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적 갈망을 소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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