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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Aug 08. 2023

도착,  문정희



삶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반드시 이러저러한 정답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여러 가지 답안지 중에서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태어난 세계라는 필연적인 운명 아래에서 성격이라는 마부가 자유의지라는 마차를 끌고 간다. 어찌 보면 성격은 마치 운명이라는 원목을 조각하는 끌과 같아서 우리는 마음껏 자신을 조탁할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런 약해빠진 끌 하나를 들고 이 삶에 초대된 우리들에게는 언제나 세상이 낯설기만 하다. 벗어날 수 없이 살아가도록 정해진 이 세계를 향해 우리는 끌을 들고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삶이라는 무대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하거나 아니면 하지 않거나.


나에겐 입버릇처럼 하고 다니는 말이 하나 있다. 사람마다 부지런한 분야가 다르다고. 이런 생각을 통해 나는 나의 게으른 분야에서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되고, 동시에 타인의 나태함을 용인하고 수용하기 위한 공고한 교각이라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나는 삶에 관해선 진지한 자세를 버릴 수가 없다. 먼지를 닦고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해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없도록 하는 데에는 나태를 넘어서 무심의 경지에 이르렀을 정도지만.


그러다 보니 나는 기질적으로 체념조의 글을 지양한다.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강조한다면, 체념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체념의 말투로 쓴 글을 기피한다.

체념보다는 동정심이, 동정심보다는 모험심이 더 빛난다.

글이란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이며 미래의 자신이 볼 때 체념했던 그 시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아무리 혼자 볼 요량으로 쓴 글이라고 할지라도 어두운 회색빛의 체념조보다는 밝은 빛의 현실 수용의 자세가 드러나는 것을 선호한다.


하물며 자신에게만 보여주는 글도 그러할진대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발표하는 글은 더더욱 체념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비록 글을 작성하던 당시에 실제로 체념하고 있을지 몰라도 체념을 자신의 방법대로 소화한 뒤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분발을 촉구하고 능동적인 적극성을 권유하는 것이 더 좋다.


홀로 태어나 홀로 떠나는 삶이 주어졌을 때 최소한 자신의 힘을 발휘해 사람들의 마음이 1mm라도 더 넓어져서 예전보다 살기 나아지도록 기여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선한 영향력일 것임에 틀림없다.


지는 법을 배우는 일조차도 그렇다. 세네카도 말했다. 강한 자만이 무릎을 꿇을 수 있다는 역설이다.


여린 잎 하나를 겨우 떨게 만드는 미풍 앞에 몸을 웅크리는 사람이 어떻게 강인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저항보다 강한 사람만이 저항을 수용하고 감내할 수 있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삶을 여유롭게 이끄는 지혜나 마찬가지이다. 그저 마음속에 여유라는 씨앗을 매일 심는다고 해서 여유로운 마음이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를 이기고자 하는 타인에게 기꺼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자가 진정한 강자다. 역사 속에서 누가 과연 그랬었냐며 지금 당신은 환상 속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날 선 비판을 던질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아우구스티누스를 그 사람 앞에 초대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말할 순 없다. 단 이것만 말할 수 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고.


하지만 우리는 범인이다. 평범한 인간이다. 홀로서기가 힘들 수 있다. 그렇다면 연합하여 합심하여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참다운 미덕을 향해 지그재그 걸어가자.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나조차도 심약한 분야가 따로 있다. 그런 때엔 늘 내게 필요한 조언을 해주시는 분을 찾아간다.


나의 선생님은 내 얘기를 묵묵히 들으신 뒤 내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신다. 용기를 잃지 말라고, 분명히 나를 위해 세우신 뜻이 있을 거라고 위로해 주신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자신을 증명하는 일은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고.


당신은 그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호오를 분명한 경계선으로 그어놓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다룰 때 자신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 길 위에 서서 세계를 직시하고 세계 속에 놓인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자신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만큼 우리에겐 거창한 일이란 필요 없다. 우리의 삶은 그저 우리로서 존재하면 되는 일이니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시인의 손길을 붙잡고 그를 일으켜 세워 앞으로 걸어가고 싶었다. 그의 눈길을 사로잡을 이 세상의 찬란한 광휘 속으로 그를 인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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