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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Aug 15. 2023

Elemental

두려움




원래 영화 감상평은 보고 난 뒤에 바로 쓰는 게 가장 생생한 현장 경험을 활자로 붙잡아 놓을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며칠이 지나서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게 되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나의 게으름을 첫 손으로 꼽을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상당히 게으른 인간으로 언제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내 글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여지 정도미련으로 남겨두고 싶다.

그리고 난 이 영화에서 받은 인상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미지가 하나 있는데, 바로 순수한 영혼의 눈물로 얼룩진 분홍빛 손수건만이 바로 그것이다. 그 향기로운 이미지 앞에서 나는 며칠을 두고 가슴이 먹먹한 상태로 삶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곤 했다. 그만큼 내게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나머지 한 가지 이유는 이 영화에서 받은 첫인상이자 일종의 교훈이 너무 식상한 나머지 당분간 이 영화에서 멀어지기로 했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팽배했었다. 그렇게 멀찌감치 떨어진 뒤 우주적 발견의 엄숙한 순간에 들어선 순간 하나의 깨달음이 배가 되어 내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또한 이른 아침 시를 음미하는 동안 내게 전해진 하나의 영감, 다른 이의 통찰이라든가 솔직한 고백이 자비로운 관용을 베풀어 나에게까지 따듯한 손길을 내밀어준 은혜에 힘입어 나는 하나의 관념을 스케치할 수 있게 되었다. 이토록 위대한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세계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거인의 도움을 받은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 글을 시작하게 된다.

당신은 배신당할 두려움이 없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배신당할 두려움 때문에 믿음이라는 미덕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냐고?

두려움이 미덕이 자라날 양분을 모조리 빼앗아 간 것이냐고?

나는 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물과 불이 섞이지 못한다는 건 분명한 과학적 사실이다. 물과 흙도 마찬가지이다. 불과 흙, 공기와 다른 물질들이 서로 섞일 수 없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불에 손을 대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잘 알고 있다. 깊은 수렁에 빠지는 일의 결과 또한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에게 크나큰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며 그러한 일들을 맞닥뜨리기를 주저한다.

하지만 과학은 물질과 물질의 운동법칙을 설명할 뿐, 물질이 우주라는 세계 내에서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만약 세계가 물질의 집합, 물질들의 총체적인 이합집산만으로 설명이 가능했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이성이라는 신비는 그 빛을 발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서로 섞여서는 안 된다는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서로 용해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도덕의 세계에서는 비도덕이 아니라 사악한 도덕이 가장 위협적인 것처럼 실제적으로 우리의 행동을 제한하고 억제하는 것들은 악덕 그 자체가 아니라 미덕을 가장한 악덕이다.

우리의 믿음을 억제하는 요소도 마찬가지이다. 불신이 믿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우리가 기대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기피하려는 두려움이 우리의 믿음을 방해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조금 더 살펴보자. 불을 만져 데이는 건 실제적 고통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적 위협이라고 단죄하며 불을 피한다.

하지만 어떤 두려움은 사회적 동의를 그 힘의 원천으로 삼아 우리를 사회적 편견으로 내몰게 된다. 이러한 편견들은 역사적인 비극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 선입관은 논리, 윤리와 미학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이 세상을 살아간 위대한 사람들이 갈고닦아 놓은 논리, 윤리와 미학에 힘입어 미신을 타파하고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어둠의 세력에 지배를 당할 바에야 차라리 밝은 빛이 찬란한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도 마더 테레사가 엎드린 바로 그 자리 옆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리라.

그와 함께 기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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