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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각형 Sep 04. 2023

F. 스콧 피츠제럴드 "부잣집 아이"

고전에 관하여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어떤 시대, 어떤 도시에 머무른다. 잠시 머무른 그곳에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 현실과의 간극이 작으면 작을수록 그 작품이 고전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때야말로 고전이 탄생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시대적 배경을 지울 수 있는 작가만의 관점이 우리의 시선을 인도하는 동안 작가가 발견한 인간적 문제가 전우주적 문제에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예술은 인간적 문제의 우주적 발견일 뿐,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만 한다.



100년 전 뉴욕의 길거리를 방황하던 주인공과 함께 길을 걷다가 눈을 돌려 어느덧 서울의 어느 한 곳에서 책을 읽고 있던 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이곳 이 시대의 배경이 낯설지가 않다.



세월의 모진 풍파 속에서 풍화되어 버린 사유였다면 진작에 책을 덮고 현실 속에서 내딛는 발걸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나를 몰아온 그 목소리의 입김은 10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따듯했다.



곁을 지키는 이도 책을 덮으며 놀라움을 쏟아냈다. 이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때가 언제인지를 물어보며 현대작가가 쓴 책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며 경이로움이 관통한 그녀의 마음을 들뜬 목소리로 내게 전해주었다.



이처럼 고전의 생명력은 시대적 간극에 따른 이질감을 지워버린다. 현대소설은 구체적인 사안으로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는 반면에 고전은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이 부둥켜안고 있는 문제를 찾아냄으로써 그림자처럼 우리의 뒤편에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고전작품의 목소리라든가 표현방법이 조금은 시대에 뒤처진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고전작품의 경우 길고 난해한 문장이 이어지면서 사유의 현란한 성토의 장으로 준비될 때가 많아 시간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는 그들의 문장이 상당히 낯설 때가 많다.



또한 현대인들은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를 상정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확실한 근거와 함께 제시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현대인들에게 고전이란 뒤를 돌아보아야만 볼 수 있는 그림자처럼 부드러운 소파에 앉아 편안한 시선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도 하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현대인들은 과거와 달리 나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라는 시대는 우리들만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들만의 소통 방식이 있다.



화법의 차이도 발생한다. 20세기의 문장은 문제의 핵심으로 바로 진입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 다윈의 종의 기원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모두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시도했던 최초의 노력이라든가 착안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문제적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선 멀고도 먼 여행을 떠냐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이러한 논리적 전개방식은 자신들의 위대한 발견을 마치 아무나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만 같다. 아니면 가벼운 마음가짐이라든가 겸손함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그러한 전개방식의 원인을 파악하는 일은 인문학 고전을 탐독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주고 우리는 고전에 대한 갈급함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도록 하자.



낭만주의 작가들은 고전주의 소설을 읽고 작품활동을 했다. 마찬가지로 현대작가들은 고전을 읽고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고 있다.



현대작가들이 이룩한 세계의 근간은 결국 고전에서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고전이 설계도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따라서 현대작가들이 그려놓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의 밑그림이었던 고전을 파헤쳐 보아야만 한다. 비록 고전작품이 첫 세상을 빛을 받을 때 영롱했던 그 색깔이 약간 바랬을지 모르더라도, 그래서 고대 유적지처럼 희미한 윤곽만 유지하고 있을지라도 현대작품을 대하는 자세로서 고전에 대한 이해가 선결조건일 때가 있다.



이를 두고 오르테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플라톤이라는 채석장에서는 새로운 발굴의 기회가 넘쳐나고 있다고.



만약 우리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부잣집 아이"를 고전의 반열에 놓을 수 있다면, 그건 바로 그의 작품에서 우리는 인간의 우주적 문제이자 진리를 발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 다음 글에서는 어쩌다 마주친 작가의 관점에 관해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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